석달에 한번씩 극약처방…약발 뚝뚝
▲ 정부는 부동산 정책 남발로 시장의 신뢰감을 잃은지 오래다. 일요신문 DB |
시장은 벌써부터 ‘별 것 없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은 집값이 올라야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집값이 떨어지면 세금 기준이 되는 양도차익이 생기지 않아 아무런 혜택을 못 본다. 지금 주택값이 오를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양도세 혜택을 기대하고 집을 사는 사람들이 늘어날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소 박덕배 연구위원은 “실수요 차원에서 기존에 주택을 구입하기로 마음먹었던 사람들이 좀 서두르는 효과 외에 신규 주택수요 창출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물론 시장 상황은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평균 3개월에 한번 꼴로 내놓은 부동산 대책은 이미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 너무 자주 발표된 대책은 신뢰감을 주지 못했고 시장은 정반대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
여기서 부동산 투자의 가장 기본적인 통념이 깨진다. 부동산 시장에서 그동안 가장 절대적으로 믿어왔던 신념은 정부 정책에 따라 시장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정책·개발 특수 논리’는 부동산 투자 교과서의 ABC였다. 정부 정책을 아는 만큼 투자에 성공한다는 믿음이 확고했다. 국토부, 서울시 등 지자체의 도시개발 계획 등을 지침 삼아 개발 호재가 있는 지역을 찍는 게 투자의 시작이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이런 상식은 완전히 깨졌다. 대표적인 게 뉴타운, 한강르네상스로 불리는 한강변 초고층 개발이다. 정부가 지구지정을 하고 국회의원들이 너도나도 개발하겠다고 공약을 내걸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사업이 멈췄다. 서울시 내 뉴타운 재개발 재건축 구역 1300여 곳 가운데 절반가량이 사업을 아예 중단하는 출구전략을 검토하고 있을 정도다. 서울시는 오세훈 전 시장 때 추진한 압구정동, 여의도 등 한강변 개발 계획을 백지화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투모컨설팅 강공석 사장은 “정부와 지자체가 너무 의욕을 앞세운 장밋빛 전망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사람들이 더 이상 정부 정책을 믿지 않게 됐다”며 “과거엔 정부가 대책만 발표하면 집값이 뛰었지만 지금은 웬만해서는 꿈쩍도 하지 않고 그나마 착공을 해야 조금 움직인다”고 말했다.
정부 정책이 약발을 다한 가장 큰 원인은 지속적인 부동산 시장 하락 때문이다. 집값 상승 전망을 염두에 두고 나온 부동산 투자 공식은 이제 모두 깨졌다. 대표적인 게 ‘강남불패 신화’와 관련이 깊은 ‘뱃살이론’이다. 뱃살은 가장 쉽게 살이 붙는다. 그런데 살이 빠질 땐 얼굴 등 뱃살과 멀리 있는 곳부터 빠진다. 그래서 뱃살이론은 강남권 등 서울 중심부 집값이 가장 빨리 오르지만 가장 늦게 내리는 현상을 설명할 때 활용됐다.
이 논리는 이미 설득력을 잃었다. 2006년 말 고점을 찍은 이후 강남 집값은 전국에서 가장 많이 빠졌다. 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현 정부 출범 이후인 2008년 2월부터 올 8월까지 강남권 대표지역인 서울 강남구(-7.4%), 서초구(-3.2%), 송파구(-9.7%) 아파트값은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반면 이 기간 서울 전체로는 0.5% 정도 하락하는데 머물렀다. 강북권은 오히려 3.1% 상승했다.
수도권 집값 상승 패턴을 설명할 때 언급되던 ‘T자형 효과’도 깨졌다. 부동산 값이 서울 강남권과 수도권 남부 경부라인을 축으로 가장 크게 상승한다는 논리다. 목동, 여의도, 서초, 강남, 송파, 강동 등 강남권이 가로 축이고, 아래로 과천, 분당, 판교, 용인, 수원, 화성 동탄, 충남 연기군 세종신도시까지 뻗는 축이 ‘T’자 모양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T자 지역은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고속도로, 신도시 등 각종 개발사업이 활발해 최고의 투자지역으로 손꼽혀 왔다.
하지만 이들 지역은 강남권과 마찬가지로 최근 집값 하락폭이 가장 큰 곳이다. 2008년 2월부터 지난 8월까지 강남권은 물론 과천(-20.3%), 성남(-13.6%), 용인(-16.1%) 등 모두 하락했다. 같은 기간 수도권 아파트값은 평균 1.8% 하락하는 수준이었고, 의정부(1.8%), 양주(1.8%) 등으로 소폭 올랐다. 내외주건 김신조 사장은 “인구통계학적 변화와 정부의 보금자리주택 공급계획 등을 고려하면 강남권이 T자형으로 뛴다는 공식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 8월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 전세비율은 각각 52.6%, 54.4%로 2003년 하반기 이후 가장 높다. 주목할 점은 개별 아파트 별로 서울·수도권에서도 전세비율이 70% 이상인 곳이 꽤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시장이 실수요자 중심으로 바뀌면서 소형 선호현상이 강해진 점도 과거엔 나타나지 않는 이상 현상을 만든 원인이다. 실수요가 많이 찾는 소형 주택값은 오르고 투자수요가 많았던 대형은 값이 떨어지면서 소형 아파트값이 대형을 추월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예컨대 서울 서초구 반포자이의 3.3㎡(약 1평)당 매매가는 194㎡형이 3171만 원, 84㎡형은 4079만 원으로 소형이 1000만 원이나 더 비싸다.
국민은행 박원갑 수석부동산팀장은 “이명박 정부 들어 본격화한 집값 하락세에 따라 과거 고도 성장기에 먹혔던 부동산 투자공식이 모두 깨졌다”며 “정부 대책도 저상장 시대에 맞게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일한 중앙일보 조인스랜드 기자 jumpcut@joo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