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양도세 회피용 시장 왜곡 방지해야”…결손 세액 60조, 부자 감세 비판에 ‘신중’ 선회
#주식 양도세 대주주 기준 완화될까
12월 7일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SNS에 “주식 양도세 대주주 요건은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만으로 추진 가능하다”며 정부·여당에 신속한 조치를 촉구했다. 대주주 기준 변경은 정부 시행령 개정 사안이므로 국회 입법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연내 입법 예고, 국무회의 의결 등의 절차를 마치면 올 연말 이전에 시행될 가능성도 있다.
12월 10일에도 권 의원은 SNS에 “연말마다 주식 양도세 과잉 규제로 인한 대량 매도 물량이 쏟아지고, 이로 인한 비정상적 주가 하락 때문에 기업은 물론 다수의 개미투자자가 피해를 보고 있다”며 “대주주 기준 완화는 윤석열 정부 대선 공약이었다. 공약이 왜 이렇게 지체돼왔는지 이유를 밝혀야 한다. 만약 지킬 수 없다면 국민 앞에서 사과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성동 의원 측은 “대주주 기준 완화는 (권 의원의) 오래된 생각이다. 지난해엔 ‘금융투자세 유예촉구 긴급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고, 그 연속 선상에 있다”며 “(정부·여당과) 물밑 대화도 하고 있지만, 저희는 주장할 뿐이고 기획재정부에서 책임지고 해야 할 사안이다. 정부·여당이 올 연말 내로 주식 양도세 완화를 추진하지 않더라도 개의치 않고 계속 주장하겠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언젠가는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1월 대선 후보 시절 깜짝 공약한 ‘주식 양도세 전면 폐지’는 점차 후퇴해왔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거치면서 ‘전면 폐지’는 대주주 기준을 100억 원으로 상향하는 절충안으로 변경됐다. 2022년 12월 정부·여당은 100억 원 상향 내용을 2022년 세법개정안에 담아 추진하려고 했으나 야당 반대에 막혔다. 결국 여야는 금융투자소득에 대해 2년 유예를 하면서 현행 대주주 기준 10억 원을 2023년까지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여야 합의에도 불구하고 주식 양도세를 둘러싼 공방이 재점화됐다. 11월 10일 대통령실 관계자가 “투자자 요구에 전향적으로 (대주주 기준 완화를)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히면서다. 주식 양도세 과세를 피하고자 연말에 주식을 매도했다가 연초에 다시 사들이는 시장 왜곡을 방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대주주 기준을 50억 원 또는 100억 원으로 올리는 방안이 거론됐다.
야당에선 내년 총선용 졸속 정책이자 ‘부자 감세’라고 반발했다. 11월 14일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주식 양도세 부과 기준 완화는 선거를 약 150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충분한 사회적 논의 없이 선거용 졸속 정책이라는 비판과 함께 최악의 세수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국민적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며 “올해 세법 개정안에도 상당한 규모의 ‘부자 감세’ 방안이 담겼는데 또다시 감세를 추구하겠다는 것은 말로는 건전재정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세수 기반을 허물고 재정건전성을 더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2022년 11월 국회예산정책처는 주식 양도세 대주주 기준 상향에 대해서 “고액의 주식 투자자를 중심으로 세 부담을 완화하는 것은 최근까지 일관되게 유지되어 온 상장주식 양도차익 과세 기반의 확대 등의 정책적 흐름과는 상이한 방안”이라며 “개정안에 따라 상대적으로 고액의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를 중심으로 과세 완화가 이루어짐에 따라 과세 형평성이 약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2022년 10억 원 이상 보유해 주식 양도세를 신고한 대주주는 7045명으로 전체 투자자의 0.05%에 불과했다. 이들이 1년간 주식을 팔아서 챙긴 양도차익은 9조 1690억 원(1인당 13억 149만 원)에 달한다. 대주주 기준 완화가 ‘부자 감세’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주식 양도세는 삼성그룹 편법 승계 논란으로 인해 처음 도입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1994∼1995년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으로부터 증여받은 61억 원(증여세 납부 뒤 45억 원)으로 그룹의 비상장 계열사인 에스원과 삼성엔지니어링 주식 42억 원어치를 샀다. 3년 뒤 두 회사가 상장하면서 주식 매각으로 시세 차익 563억 원을 얻었다.
1999년 당국은 주식 100억 원 이상을 보유한 대주주에게 양도세를 부과하도록 법을 개정했다. 과세 실효성, 다른 자산과의 과세 형평성 제고 등을 목적으로 대주주 기준은 △2013년 50억 원 △2016년 25억 원 △2018년 15억 원을 거쳐 현행 10억 원까지 내려갔다. 이러한 정책 변화는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조세 원칙과 형평성 등을 추구하기 위해서다.
정부로선 주식 양도세 완화로 결손 세액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은 부담이다. 올해 세수 결손이 60조 원에 육박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기재부는 기업 실적 부진에 따른 법인세 감소, 부동산 거래 위축 등으로 인한 소득세 감소를 세수 부족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나라살림연구소는 대주주 기준을 100억 원으로 상향하면 주식 양도세가 약 50% 적게 걷힐 것으로 추정했다.
대주주 기준 완화 정책의 투자 유인 효과성이 명확히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22년 세법개정안 분석’에서 “최근과 같이 대내외 금리 인상 등으로 시중의 유동성이 줄어들고 수출 악화 등으로 국내 기업의 실적 둔화에 대한 우려가 증가하는 상황에서는 금융 수익률 악화와 투자 심리 위축이 발생할 수 있다”며 “만약 이러한 영향이 심화된다면 양도소득세 및 증권거래세 부담 완화의 효과에도 불구하고 신규 금융투자가 촉진될 가능성이 줄어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결국 정부·여당뿐만 아니라 대통령실까지 주식 양도세 과세 기준 완화에 대해 신중한 입장으로 선회하는 모양새다. 12월 8일 대통령실 관계자는 “대주주 완화 방침에 대해 결정된 바는 없다”고 밝혔다. 이날 유의동 국민의힘 정책위의장도 아직 당에서 논의한 바 없다고 말했다. 12월 12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현재 대주주 양도세 기준 완화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