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지대 ‘스몰텐트’ 규합 의사 내비쳐…‘낙준연대’ 가능성에는 신중한 입장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신당 창당 의지를 직접적으로 피력했다. 12월 13일 이 전 대표는 SBS ‘편상욱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신당 창당 진짜로 할 것이냐’는 질문에 “예”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절망하는 국민들에게 작은 희망이나마 드리고 말동무가 돼 드리겠다”고 했다. 창당 진행 단계와 관련해선 “실무 작업 초기 단계”라면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실무자들이) 많이 애를 쓰고 계실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 전 대표는 창당 시기를 연초로 특정했다. 구체적인 목표도 제시했다. 이 전 대표는 “욕심대로라면 (원내) 제1당이 돼야 할 것”이라는 각오를 밝혔다. 그러면서 “제3의 신당이 얼마나 약진할 것이냐가 제일 큰 변수”라고 총선을 전망했다. 이미 제3지대에 펼쳐져 있는 ‘스몰텐트’를 규합할 의사도 내비쳤다. 이 전 대표는 양향자 의원이 만든 ‘한국의희망’, 금태섭 의원을 중심으로 뭉친 ‘새로운준비’와 연대 가능성에 대해 “그렇게 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낙준연대’ 혹은 ‘낙석연대’라는 이름으로 정치권 시선을 한몸에 받았던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 전 대표는 “아직 거기(이준석 전 대표와 연대)까지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면서도 “현직 대통령과 맞서서 할 말을 다 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이준석 전 대표를 평가했다.
오랜 기간 이어져 온 친명계와 비명계 사이 내홍이 초대형 변곡점을 마주하고 있는 양상이다. 이 전 대표가 창당 가능성을 언급한 시점부터 민주당 내부에선 격렬한 비판론이 제기됐다. 김민석 민주당 의원이 띄운 ‘사쿠라 답습론’이 대표적이다.
12월 12일 김민석 민주당 의원은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이낙연 신당론은 결국 윤석열 검찰독재 공작 정치에 놀아나고 협력하는 사이비 야당 즉 ‘사쿠라 노선’이 될 것”이라고 비판 수위를 올렸다. 제5공화국 시절 민정당 2중대 격으로 활동했던 민한당을 연상시킨다는 의미로 ‘사쿠라’라는 표현을 활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의원은 “내일도 신당 얘기를 할 것이라면 오늘 당장 당을 나가라”고 했다.
이에 비명계 대표그룹 격인 ‘원칙과 상식’ 멤버들은 2002년 대선 과정서 김민석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해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 쪽으로 소속을 바꾼 이력과 ‘86 용퇴론’을 재차 언급하며 맞섰다. 이낙연 전 대표도 김민석 의원 ‘사쿠라 발언’과 관련해 “대꾸할 필요가 없다”고 응수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민주당에서 이 전 대표 신당 창당설을 두고 이처럼 강력하게 반응하는 건 ‘이낙연 신당’이 총선 판도에 미칠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라면서 “사실상 민주당이 친명당과 비명당으로 쪼개짐은 물론이거니와 총선에서 야권 지지 표심이 쪼개지면서 총선 결과 자체가 예상할 수 없는 안갯속으로 빨려들어갈 수 있다”고 바라봤다.
그는 “민주당이 우세를 점하고 있는 지역으로 분류되는 호남과 수도권에서 ‘이낙연 신당’이 얼마만큼 야권 표심을 흡수하느냐에 따라 여당인 국민의힘이 예상 밖 반사이익을 보는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당내 비판론이 강력하게 제기되는 양상”이라고 덧붙였다.
중도층과 무당층이 총선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는 정치지형에서 ‘이낙연 나비효과’는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여기다 동병상련 격인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이낙연 전 대표 사이 연대 가능성에도 불씨가 남아 있는 상황. 이낙연 전 대표가 3지대의 구심점으로 떠오르고 이준석 전 대표가 여기에 의기투합하는 그림이 그려진다면, 제3지대 파급력이 강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이준석 전 대표는 온라인상에서 강력한 파급력을 가진 정치인으로 공중전엔 강하지만, 실제로 인력이나 조직을 동원해야 하는 지상전에 약점이 있다는 평가가 있다”면서 “이낙연 전 대표는 점잖은 이미지를 바탕으로 참신함이나 톡 쏘는 한 방이 없다는 평가를 듣고 있는데, 정치적 이념을 떠나 서로가 캐릭터 특성을 상호보완할 수 있는 관계가 될 수는 있다”고 바라봤다.
이 관계자는 “다만 정치적 이념이 다른 두 전직 거대양당 대표가 만났을 때 중도층과 무당층을 비롯한 국민 대다수 민심이 어느 정도 제3지대로 모일 수 있는지는 미지수”라면서 “선거라는 단발적 이슈로 말미암아 의기투합하는 이합집산으로 비칠 경우 제3지대 파급력이 오히려 약해질 수 있는 리스크도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준석 전 대표와 달리 이낙연 전 대표는 확실한 지역 기반을 갖춘 정치인으로 꼽힌다. 민주당 핵심 지지층 비율이 높은 호남 지역이다. ‘호남 플러스알파’로 세 확장을 노릴 경우 이낙연발 제3지대가 다음 총선 승부를 가를 핵심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 야권 관계자는 “이낙연 전 대표 신당 창당이 사실상 분당이라는 평가를 듣는 이유도 그가 가진 확고한 지역 기반 덕택”이라면서 “호남에서 선전하고 비례대표 선거와 타지역구 선거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다면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 대결구도로 굳어져 가는 정치 판도에 대반전을 가져올 수 있다”고 바라봤다.
이 관계자는 “다만, 민주당 주류 핵심 지지층에서 이 전 대표가 배신자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점과 실제로 이 전 대표를 따라서 나갈 수 있는 현역 의원급 세력 크기가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큰 불안요소로 꼽힌다”면서 “이 전 대표 입장에선 정치 생명을 걸고 마지막 승부수를 던져야 하는 외통수에 몰린 셈”이라고 했다.
신당 창당 외에 별 다른 선택 여지가 없는 이 전 총리는 최근 ‘3총리 연대설’ 중심에 섰다. 김부겸 정세균 전 국무총리 등 문재인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냈던 인사들과 연대설이 정치권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각자의 메시지를 지닌 전직 총리들과 이 전 대표 신당 창당설이 한데 엮이는 데 부담스런 기류가 역력했다.
이제 이낙연 신당에 어떤 멤버가 합류할지 여부가 첫 번째 승부처다. 야권 일각에선 구체적인 숫자가 거론되며 신당 창당에 힘을 모을 비명계 응집력을 계산하는 모양새다. “최소 현역 의원 20~30명이 합류할 가능성이 있다”는 일각 주장도 흘러 나온다.
비명계 이탈에 불씨를 당길 수 있는 변수는 ‘공천학살 리스크’다. 공천 시계가 돌아가는 가운데, 비명 진영에선 대의원 권한 축소 등 내용이 담긴 당헌 개정 이후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에 따른 공천학살을 피하기 힘들다는 기류가 확산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비명계 의원 모임 원칙과상식에선 이 전 대표가 신당 창당 절차를 너무 서두르고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이원욱 의원은 12월 14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이 전 대표가 숨 고르기 없이 갑자기 링에 뛰어들며 100m를 질주하고 계시는 것 같다”면서 “당황스럽다”고 했다.
같은 날 조응천 의원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낙연 신당에) 손님이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상황”이라면서 “반 이재명이라는 가치만으로는 1당은 어림도 없다”고 지적했다. 비명계 현역 의원 모임에서도 ‘이낙연 신당’ 비토 기류를 표현하는 상황이다.
야권 내부 사정 및 호남 지역 정치권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재명 대표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탈당 등 당적을 바꾸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는 이른 바 ‘샤이 비명계’가 어떻게 움직일지가 최대 관건”이라면서 “이 전 대표 신당 창당에 시간과 공간 등 물리적 여력이 충분한지, 실제로 친문계와 비명계를 관통하는 세 모으기가 가능할지를 두고 ‘샤이 비명계’들이 주판알을 굴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아무리 이 전 대표가 신당을 창당하더라도 민주당을 지키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비명계 비율도 작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호남 지역을 무대로 하는 야권 정치인들의 경우엔 이런 인식이 더욱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그는 “11월과 12월 사이 ‘정중동’ 행보로 결기를 보이지 못했던 이 전 대표에게 미래를 맡길 수 있을지 여부를 두고 반신반의하는 시선도 있다”고 했다.
민주당이 섣불리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비례대표 선거방식과 관련해서도 이낙연 전 대표가 틈새를 공략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유지될 경우 제3지대 이낙연 신당이 반사이익을 볼 가능성이 제기되는 까닭이다. 병립형과 준연동형을 두고 저울질을 거듭하고 있는 민주당 입장에서 새롭게 꿈틀대는 이낙연 신당의 존재는 계산을 더욱 복잡하게 하는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헤어질 결심’과 극적인 대통합 사이 갈림길에 선 민주당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이낙연 전 대표는 12월 18일 다큐멘터리 영화 ‘길 위에 김대중’ 시사회에서 마주칠 전망이다. 김부겸 전 총리도 이날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이날 행사는 총선 판도를 둘러싼 야권 구도를 판가름할 마지막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국민들 사이에서 거대 양당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쌓인 상황에서 무당층이 30%”라면서 “비례대표 선거제도와 이준석 전 대표와 연대 가능성 등을 고려했을 때 제3지대서 지지세 극대화 효과를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 전 대표가 ‘원내 제1당’을 목표로 거론한 것과 관련해 채 교수는 “단순하게 소수 정당처럼 양당 주변에 어슬렁거리며 이삭줍기를 하겠다는 태도가 아니라, 현행 민주당을 대체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비친 것”이라고 평가했다. 채 교수는 “제3지대에서 3등을 하면 차기 대권 레이스 또한 노릴 수 없다”면서 “이삭줍기 제3정당 대신 ‘게임 체인저’ 역할을 자처하며 출사표를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바라봤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