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신당 결단 예정, 28일 ‘김건희 특검법’ 표결 유력…일각선 ‘이준석에 한방 먹이려 그 날짜 정해’ 시각도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10월부터 독자행보에 나서는 구체적 시점을 ‘12월 27일’로 못 박았다. 이 전 대표는 12월 11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오는 12월 27일 탈당하는 게 맞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어 “언론에서 자꾸 신당 창당이 아니라 탈당한다는 표현으로 후퇴했다고 하는데, 기술적으로 탈당하지 않고 창당할 수 없다”며 “탈당 직후 신당을 창당하겠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는 이 전 대표가 디데이를 ‘12월 27일’로 정한 것을 두고 해석이 분분했다. 이날은 이 전 대표에게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날이기도 하다. 12년 전인 2011년 12월 27일 발표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비대위원 인선안에 이 전 대표가 포함되며 정치에 입문한 날이다.
그때쯤이면 정치권의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될 거라 판단했을 수도 있다. △대통령실과 친윤계가 중심이 돼 이 전 대표를 탄압한 것으로 탈당의 명분도 쌓이고 △‘비례대표’ 선출 관련 선거제 개편도 정리가 되고 △‘낙하산 공천’ 및 공천 물갈이로 당 내홍이 극한으로 치닫고 △김건희 특검법 국회 통과로 ‘용산 리스크’가 본격화되는 시점이라는 계산이다.
실제 일부 사안은 벌써부터 본격화됐다. 국민의힘은 중진 의원들 불출마 및 험지 출마 등 공천개혁을 요구한 ‘인요한 혁신위’가 당 지도부와 중진들의 압력에 부딪혀 조기 해산하면서 내홍에 휩싸였다.
이에 따라 이미 서울 험지 출마를 선언한 하태경 의원은 김기현 대표를 향해 “쇄신 대상 1순위다. 불출마로 부족하고 사퇴만이 답”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진 서병수 의원도 “이 모양 이 꼴로 계속 가면 국민의힘은 총선 필패”라며 김 대표를 향해 “이제 결단할 때가 됐다”고 압박했다. 지도부의 적극적 희생을 강조해온 김병민 최고위원은 “이번 주가 사실상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지금까지 제기됐던 당의 문제를 한 번에 바꿔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때”라고 촉구했다.
반면 강민국 박성민 강대식 전봉민 이용 최춘식 등 친윤계 일부 초선 의원들은 김 대표를 압박하는 중진들을 향해 “자살 특공대가 불난 집에 부채질한다” “퇴출 대상자가 적반하장” “당 혁신의 걸림돌”이라고 맞섰다.
하지만 이 전 대표가 약속한 ‘12월 27일’ 행동에 나서기에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다. 12월 가장 중요한 정치 현안인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검법’이 그때까지 처리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21대 정기국회를 마친 여야는 12월 11일부터 임시국회에 돌입했다. 양당은 국회 본회의를 20일과 28일 열기로 합의했다. 이때 내년도 예산안과 민생법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김건희 특검법도 함께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김건희 특검법은 ‘대장동 50억클럽 특검법’과 함께 지난 4월 민주당 주도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 지난 10월 24일 본회의에 부의됐다. 하지만 국민의힘 반대로 안건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60일이 되는 오는 12월 22일까지 상정되지 않으면 그 후 열리는 첫 본회의에 자동 상정된다. 이에 따라 오는 28일 본회의 표결이 유력하다. 이 전 대표가 예고한 디데이의 다음 날이다.
윤 대통령과 용산 대통령실은 김건희 특검법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윤 대통령이 특검법 이탈표 관리를 위해 김 대표에게 당초 12월 중순 예고된 공천관리위원회 조기 구성을 12월 말로 최대한 미뤄 달라 당부했다는 말까지 전해졌다.
이처럼 김건희 특검법 표결이 어떻게 될지, 대통령실이 결과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이 전 대표가 전날 섣부르게 탈당 등 결단을 내릴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또한 김건희 특검법에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돼, 정작 이 전 대표의 결심은 오랜 예고에도 불구하고 본방송이 시들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 전 대표 탈당 결단에 현역 의원들도 동조해야 시너지를 낼 수 있다. ‘공천 물갈이’ 살생부가 아직 명확하게 나오지 않은 시점에 이 전 대표에 힘을 실어주면, 훗날 있을 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윤 대통령 거부권 행사 이후 무기명 재표결에서 이탈표가 생기면 ‘가결파’로 낙인이 찍힐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정치권 일각에서는 여야 지도부가 본회의 날짜를 28일로 잡은 게 이 전 대표에 대한 고려도 일부 있었던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는다. 야권 한 관계자는 “이 전 대표가 그동안 방송이나 SNS에서 본인이 정치를 가장 잘 알고, 모든 앞일을 다 꿰뚫고 있는 것처럼 얼마나 많은 말을 쏟아냈느냐. 하지만 중진들도 국회 안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치열하게 싸워왔다. 누구보다 많은 경험이 있다. 이 전 대표에 한 방 먹이려 본회의 날짜를 일부러 디데이 다음 날로 잡았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원내 지도부 관계자는 “28일로 정한 것은 특별한 의미가 없다. 원내대표 간에 협의를 통해 정한 것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국민의힘 관계자 역시 “연말에 연휴도 많고 해서 피하다 보니 28일로 정해진 것 아니겠느냐. 과도한 해석이다”라면서도 “어떻게 정국이 펼쳐질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 전 대표 입장에서는 결단을 내리기에 고민이 많을 것”이라고 전했다.
반면 이 전 대표가 오히려 승부수를 던질 수 있는 기회라는 반론도 있다. 여권 관계자는 “정치권 혼란이 정리될 때는 이 전 대표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자신의 거취에 결정을 내린다. 그럼 이 전 대표도 거기 포함돼 그저 그런 정치인이 되는 것”이라며 “국민의힘과 대통령실이 혼돈인 상황에 미리 결단을 내려야 보수 지지층의 동조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