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 자국 우선주의로 ‘괴물’ 중국 맞대응…보조금 지원 등 정책 수정 탓 전체적 전기차 가격 인상 전망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전기차 등록 대수는 약 1377만 대로 예상된다. 이는 전년 대비 30.6% 상승했다. 2021년 약 109%, 2022년 약 57% 성장률에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국내 전기차 시장도 세계의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기 자동차 등록 대수는 2020년 13만 4962대, 2021년 23만 1443대, 2022년 38만 9855대, 2023년 11월까지 53만 1812대로 집계됐다. 2021년에는 전년 대비 약 71% 성장했으며, 2022년 약 68% 성장했다. 올해 성장률은 36% 수준에 그치고 있다. SNE리서치는 “고금리에 따른 경기침체 속에 높은 전기차 가격과 보조금 감축, 충전 인프라 부족이 맞물리며 전기차 구매에 대한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됐다”고 평가했다.
전기차 시장의 성장률 둔화는 내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 EU 등이 중국과 이차전지·전기차 패권을 놓고 정책 싸움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세계 여러 나라는 자국 친환경 정책 성공을 위해 공격적으로 전기차 보급 확대를 선언해왔다. EU는 2021년 탄소배출 감축 계획안인 ‘핏 포 55(Fit for 55)’를 발표하고 2030년 EU의 평균 탄소 배출량을 1990년의 55% 수준까지 줄이기로 했다. 이를 위해 2030년까지 친환경차 누적 판매량 목표를 3000만 대로 잡고, 2035년부터는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하기로 했다.
미국도 바이든 정부 들어 무공해차 전환을 대기오염 개선 및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수송부문 핵심 정책으로 설정했다. 국립환경과학원 교통환경연구소가 2022년 발간한 ‘미국의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자동차 환경정책 동향’에 따르면 미국은 2050년까지 100% 무공해차 전환을 목표로 설정했다. 무공해차 전환시 최대 7500달러 인센티브를 지원하고 내연기관차를 폐차하면 별도 보상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또 중대형 무공해차 투자세액 공제(30%), 친환경 트럭 소비세 면제(12%) 등 세제 혜택도 지원하기로 했다.
공격적인 정책에 혜택을 본 건 중국이다. SNE리서치의 중국 내수 시장을 제외한 올해 1~10월까지 글로벌 전기차용 이차전지 사용량 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국의 닝더스다이(CATL) 점유율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9%포인트 늘어난 27.6%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업계 1위인 LG에너지솔루션의 점유율은 오히려 1.1%포인트 하락했다. 두 기업 간 점유율 차이는 0.1%포인트에 불과하다.
중국 내수 전기차 시장 1위 업체인 비야디(BYD)도 이차전지 시장에서도 같은 기간 524.9% 성장하며 점유율을 0.5%에서 1.8%까지 늘렸다. 파라시스(FARASIS), 엔비전(AESC)도 점유율 8위와 9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동안 내수용이라 비난받던 중국의 전기차 제조업체들의 해외 시장 성장률도 눈에 띈다. 올해 1~10월 중국 시장을 제외한 글로벌 전기차 인도량 조사 결과 중국의 지리자동차(Geely)는 전년 같은 기간 대비 37.6% 성장하며 26만 2000여 대를 인도해 세계 8위 자리를 차지했다. 중국 상하이자동차(SAIC, 9위)는 10위권 내 업체 중 유일하게 세 자릿수 성장률(116%)을 기록하며 약 14만 9000대를 인도했다.
중국이 두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는 정부 차원에서 두 시장을 미래 신산업으로 선택하고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덕이다. 이차전지의 경우 중국은 니켈, 리튬, 코발트 등 이차전지 핵심 광물을 전략산업으로 인식하고 아프리카와 남미 등 해외광산 투자로 원료 광물을 확보해왔다. 기업에는 토지와 에너지를 지원하면서 광물을 제련·정제하는 과정에서 비용을 감축해 다른 나라보다 원가를 절감할 수 있었다.
중국은 2009년부터 전기차 보조금 정책을 운영해왔다. 전기차 구매 소비자에게 보조금을 주는 우리나라와 달리 중국은 전기차 제조업체에 보조금을 지급했다. 저렴한 중국산 이차전지까지 더해지며 중국산 전기차 출고가가 다른 나라 경쟁사보다 낮게 책정되면서 가격 면에서 우위를 점했다. 해당 보조금은 올해부터 폐지됐지만, 전기차 번호판 교부에 제한을 두지 않거나 취득세 10% 감면 등 전기차 친화적인 제도로 중국은 내수시장을 완벽하게 장악했고, 이제는 세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중이다.
전기차를 보급할수록 중국이 더 많은 이득을 보는 상황에 이르자 세계 각국의 전기차 보급 전략은 중국 견제를 위한 ‘자국 우선주의’ 정책으로 수정되고 있다. 중국을 향한 견제력이 가장 강력한 나라는 단연 미국이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8년부터 중국산 전기차에 25% 관세를 부과했다.
그 기조는 바이든 정부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미국은 2022년 8월 16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발효했다. 표면적으로는 기후 변화에 대응하고 의료비 지원, 법인세 인상 등을 통해 급등한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탄생했다. 하지만 이 법에는 전기차 제조 단계에서 중국 등 해외우려기관(FEOC·Foreign Entity of Concern)의 투자 비율을 일정률 이하로 낮춘 전기차 제조업체에만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기로 하면서, 미국이 전기차 가치사슬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 있다.
지난 1일(현지 시간)에는 미국 재무부와 에너지부가 FEOC의 구체적 기준을 발표하기도 했다. 중국 자본 지분율이 25% 이상인 이차전지 관련 업체에는 최대 7500달러에 달하는 친환경차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배터리 부품은 내년 1월부터, 양극재·음극재 등 핵심 광물 제조업체는 2025년 1월부터 적용된다.
일본도 자국 내에서 생산된 이차전지를 활용한 업체에 법인세를 감면해 주는 ‘일본판 IRA’를 내놨다. 일본 정부와 여당인 자민당은 2024년부터 세제를 개정해 전략 물자의 자국 내 생산량과 판매량에 비례해 기업의 법인세를 줄여주는 ‘전략 분야 국내 생산 촉진 세제’를 신설하기로 13일 확정했다. 전기차와 이차전지 제조업체들은 생산량에 비례해 법인세 20%를 10년까지 감면받을 수 있다.
유럽 시장에선 EU가 지난 9월 중국에 제기한 ‘불공정 조사’가 대표적이다. EU는 중국산 전기차가 막대한 자국 정부의 보조금으로 전기차 가격을 낮게 유지해 시장 혼란을 야기한다며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EU는 중국이 소득세 감면 및 면제, 국유은행 대출 우대, 수출입세 환급 등의 방식으로 자국 업체를 보조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당 주장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EU는 중국 전기차 제조업체에 상계 관세를 부과할 것으로 보인다. 상계 관세는 타국 수출 상품 가격 경쟁력이 높을 때 수입국이 국내 산업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매겨진다. EU는 2012년 중국이 자국 태양광 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며 3.5~11.4%의 상계관세를 부과한 바 있다.
유럽 국가 개별적으로도 중국산 전기차 보급에 제동을 걸고 있다. 프랑스는 제조, 소재, 유통 등 전 과정에 걸쳐 탄소 배출량을 추정화한 ‘환경 점수’를 충족한 4만 7000유로(약 6700만 원) 이하의 전기차만 5000~7000유로(약 710만~990만 원)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이 제도는 내년 1~6월 사이 유예기간을 거친 뒤 하반기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문제는 전기차를 선박으로 수출하는 경우도 탄소 배출량이 발생하는 것으로 계산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아시아 등 원거리 지역에서 생산돼 프랑스로 들어온 전기차는 사실상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 역시 프랑스와 비슷한 방식으로 전기차 보조금 제도를 손본다는 계획이다. 우리나라도 중국산 전기차를 규제하겠다는 움직임이 포착되기도 했다.
여러 나라의 표적이 된 중국은 수출 규제 등 보복으로 맞대응에 나섰다. 중국 정부는 1일부터 이차전지 제조에 사용되는 핵심 광물 중 하나인 흑연 수출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이는 지난 10월 중국 상무부가 발표한 ‘흑연 관련 항목 임시 수출 통제 조치의 개선 및 조정에 관한 공고’에 대한 후속 조치다. 흑연 관련 업체들은 수출 시 중국 당국에 선적 허가를 받아야 한다. 중국은 세계 1위 흑연 수출국이다. 이차전지 양극재에 활용되는 흑연의 90%를 정제하고 있다.
각국의 정책 수정으로 전체적인 전기차 가격 인상이 예상되고 있다. 현재 CATL 이차전지는 테슬라 Model 3/Y(중국산 유럽, 북미, 아시아 수출 물량)를 비롯해 BMW, 볼보(Volvo) 등 글로벌 완성차 OEM 차량에 탑재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차전지 원료인 리튬, 코발트, 흑연 등 핵심 광물의 80% 이상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고, 현대자동차의 신형 코나와 기아의 레이 전기차 모델에도 CATL의 배터리가 탑재됐다.
이에 따라 당분간 전기차 성장률 감소세가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미국, 일본 등의 소비자는 전기차 가격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나라 역시 차량 가격과 구매보조금 등 경제적 요소를 핵심 고려사항으로 선택하고 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은 “전기차(BEV),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 시장은 정부 정책에 많은 영향을 받는 특징이 있다. 내년 정책 변화로 인한 불확실성이 예상된다. 또 최근 유럽 내에서 중국 전기차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정책이 추진되면 전반적인 시장과 경쟁 구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