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한복판을 온몸으로, 광주아트패스로 편하게
보물을 찾듯 골목골목에 숨겨진 이야기를 발굴하고 발견하는 광주 골목여행이다. 듣기도 하고 보기도 하고 오감을 총동원해 체험도 한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거리의 외양은 바뀌어 가도 그 속에 사는 사람들 삶의 이야기는 켜켜이 쌓이는 골목의 매력. 아파트촌에 사는 도시인이라면 옛 정취를 간직한 골목을 자박자박 두 발로 누비는 것만으로 힐링이 된다.
#민족역사와 예술의 혼 담긴 보리밥골목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골목 여행을 할 수 있는 아뜨랑 골목투어 프로그램은 광주극장골목, 구성로골목, 구시청골목, 보리밥골목, 헌책방골목, 동명카페골목, 동명공방골목, 양림미술관골목 등으로 나뉘어져 운영된다. 각각의 골목마다 서로 다른 주제로 색다른 골목투어를 할 수 있다. 연말까지 광주 동구의 골목길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광주아트패스 아뜨랑 골목위크’가 이어진다.
오늘 걸어보는 일정은 보리밥골목이다. 지산동 당산나무에서 시작해 문병란 시인의 집을 거쳐 오지호 가옥과 이한열 열사 생가를 스쳐 걸어가다가 무등산 보리밥 거리에서 보리밥으로 점심을 먹고 지산유원지의 무등산 전망 리프트를 타고 무등산 일부를 맛보는 일정이다.
이어 무둥산 초입을 지나 걷기 쉬운 길로 산책을 하다가 의재미술관을 만나고 내려오는 길엔 30~40분가량 ‘시간의 숲, 무등’이라는 거리예술을 체험한다. 마지막 코스는 차생원 찻집에서의 말차 체험이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민족문학운동과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문병란 시인의 집으로 시인이 1980년부터 2015년까지 실제 거주했던 집으로 지금은 갤러리로 꾸며져 있다. 아늑한 2층 양옥집에 시인이 썼던 방이며 서재가 고스란히 모셔져 있는데 고요하고 편안한 분위기라 마음이 문득 차분해진다.
집안에는 문병란 시인의 일대기와 그의 작품이 가지런히 전시되어 있고 한켠에는 시인의 짧은 문구들을 활용해 자기만의 시를 창작해볼 수 있는 장소도 마련되어 있다. 시인의 집을 오가며 스쳐 지나게 되는 골목의 알록달록 시구들도 가슴을 몽글몽글하게 만든다.
자손들이 살고 있어 밖에서만 볼 수 있는 오지호 가옥도 잠시 들른다. 오지호 화백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인상주의 화가이자 민족주의자다. 호남지역 서양화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한옥과 근대양식이 오묘하게 어우러진 가옥은 오 화백의 화풍처럼 편안하면서도 아방가르드하다. 그의 그림을 여러 장 프린트 해온 도슨트의 성의 덕분에 잠시나마 골목에서 설명을 곁들인 그림 감상도 한다. 그림을 꼭 갤러리에서만 볼 필요는 없다.
보리밥골목 직전 번잡한 거리 한복판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다 세상을 떠난 이한열 열사의 생가도 스친다. 그의 어머니가 2022년까지 거주했다고 하니 광주에서라면 어디를 가든 여전히 민주화의 열정이 곳곳에 배어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이어 도착한 보리밥집에서 나물가득 보리밥 한상을 받는다. 흔한 상추나 깻잎이 아닌 열무청으로 보리밥을 싸먹는 맛이 이색적이다. 열무청이야 시레기로 말리거나 반찬으로 해먹을 줄만 알았지 이렇게 생으로 밥과 나물을 크게 한입 싸먹으니 신선한 열무의 향이 배가된다. 농가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소박하지만 따뜻한 고향이 맛이다.
이어 오르는 지산유원지 무등산 전망대. 두 다리 편하게 리프트를 타고 올라간다. 리프트는 땅에서 높지 않고 산속을 서서히 올라가게 되어 있어 산책을 하듯 편안하다. 공중에 뜬 산책이랄까. 산에 폭 파묻혀 산의 두 손이 거저 실어다주는 산책이다. 계절에 따라 다르게 속삭이는 숲의 소리를 듣는 것도 매력 있다.
#시간의 숲, 무등
슬렁슬렁 무등산 자락 초입을 편하게 걷다보면 의재미술관에 닿는다. 의재미술관에서 춘설차 한잔 마시며 창 너른 미술관 너머의 무등산을 바라본다. 갤러리 내부 전시도 전시지만 갤러리 통창을 통해 안에서 밖으로 보는 무등산 전경이 더 그림 같다.
차별이 없다는 뜻의 무등, 그 무등의 품에 포근히 안겨 마시는 춘설차는 그 이름답게 향기 그윽하다. 봄눈이 채 녹기 전에 돋아난 차나무의 여린 잎으로 만든 차라는 뜻의 춘설차는 남종화의 대가인 의재 허백련이 무등산 자락에서 길러내 보급시킨 차다. 그가 거주하며 그림 작업을 했던 무등산 자락 춘설헌에 손님이 찾아오면 대접하던 귀한 차라고 한다.
무등을 다과삼아 춘설차 한 잔에 몸과 마음을 녹이고 이제 내려갈 시간. 내려가는 길은 그냥 내려가는 길이 아니다. 내려가는 동안 거리 연극이 펼쳐진다. 이름하여 ‘시간의 숲, 무등’. 무등산에 안겨 꿈을 꾸었던 사람들이 모여 이루지 못한 꿈을 마저 꾸며 쉬고 있는 마을을 만난다는 콘셉트다. 거리 연극을 통해 맛보는 시간여행이다.
일제강점기 무등산에 기대어 독립을 꿈꾸던 청년들의 고난 했던 삶의 모습을 연극을 통해 눈 앞에서 만나는 산책길이다. 의재 허백련, 오방 최흥종, 석아 최원순, 최원순의 아내이자 광주 최초의 여의사였던 현덕신이 살아 돌아온 듯한 무대이자 길이다. 현덕신의 스토리텔링으로 길거리 무대는 더 생생해진다. 무등산 자락 내려오며 같이 숨 쉬고 말하고 손 맞잡으며 온몸으로 맛보는 연극이다.
막이 끝나면 해금 연주가 이어지고 관객들은 막과 막 사이를 배우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걷게 된다. 앉아서만 보던 연극을 걸으면서 본다. 각각의 관객은 한 명의 엑스트라가 되어 나도 모르게 연극에 참여하게 된다. 온몸으로 느끼는 예술이다.
#골목여행도 스마트하게
예술의 도시 광주에도 디지털 바람이 분다. 2024년 1월부터 광주아트패스 하나로 광주 곳곳에서 도슨트투어와 체험을 편리하게 이용 할 수 있다. 기차할인을 비롯해 식당과 카페 등의 할인권도 제공된다.
광주아트패스는 동구 관내의 문화예술·숙박·체험·카페·맛집 등을 연결해 안내하는 예술여행 스마트 플랫폼으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이용할 수 있는 일종의 관광패스다. QR코드로 결제할 수 있어 더 편리하다. 광주아트패스 앱을 이용하면 번거롭게 여행지를 일일이 검색할 필요 없이 관광지를 비롯해 상품과 행사정보까지 한 번에 확인하고 이용할 수 있다.
이송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