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 오작동이 다른 오작동 유발하는 ‘물결 효과’ 초래…4일 이상 못 자면 우울증·불안장애 등 가능성 증가
잠을 제대로 못 자거나, 혹은 뜬눈으로 밤을 새워본 사람이라면 아마 다음날 얼마나 힘든지 잘 알 것이다. 이런 경우 머릿속이 뿌옇거나 정신이 혼미하거나 감정적이 된다. 마치 숙취 증상처럼 때로는 메스꺼움과 두통이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한 일이라곤 그저 잠을 자지 않았다는 것뿐인데 말이다.
전문가들은 잠을 자지 않고 오랜 시간 깨어있는 동안 뇌와 몸 안에서 어떤 해로운 일이 일어나는지 생각해보면 이런 증상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24시간을 깨어있든 아니면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깨어있든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은 이런 혼돈 상태를 가리켜 ‘물결 효과’라고 설명한다. 요컨대 하나의 오작동이 다른 오작동을 유발하고, 연이어 다른 오작동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실제 몇몇 연구에 따르면, 만성적인 수면 부족은 비만, 기억력 감퇴, 당뇨병, 심장병, 면역 반응 저하와 같은 다양한 질병의 위험을 증가시킨다. 또한 이로 인해 면역력이 약해질 수도 있다. 단지 하룻밤을 새울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이 경우에도 충분히 건강에 해로우며, 이는 수면이 호르몬을 조절하고, 세포조직을 치유하고, 건강하게 체중을 유지하는 등 거의 모든 신체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하루라도 잠을 늦게 자면 → 혈압이 높아진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잠을 안 자고 깨어있는 상태로 18시간이 지나면 몸 안에서 해로운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오전 8시에 기상한 후 새벽 2시까지 잠을 안 자는 경우다. 이때부터는 혈압이 상승하기 시작하고, 이로써 심장에 과부하가 일어나 부담이 가게 된다. 심장에 기저 질환이 있는 사람들의 경우, 심장마비나 뇌졸중의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또한 18시간 이상 깨어있으면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떨어진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가령 매일 밤 수면 시간이 5시간 이하인(혹은 19시간 동안 깨어있는) 상태가 일주일만 지나도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10~15% 감소한다. 반면, 일반적인 경우에는 1년에 1~2%씩이다.
수면은 호르몬 조절에 큰 역할을 하기 때문에 수면 부족인 상태가 지속되면 호르몬이 정상적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또한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와 싸우는 ‘전투 세포’, 즉 면역 체계의 기능이 저하돼 만성 질환과 관련된 염증성 단백질이 몸 안에 축적되기 시작한다. 이와 관련, 예일대 의과대학의 수면의학 전문가인 안드레이 진척 박사는 “나는 매 시간의 수면을 ‘수면 저축 계좌’에 돈을 넣는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 계좌가 고갈되거나 과도하게 인출됐다면, 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밤을 새우면 → 단것이 당기고 무의식 수면 상태가 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잠을 자지 않고 24시간을 보내면 와인이나 맥주 네 잔을 마시는 것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난다. 요컨대 반응 시간이 느려지고, 발음이 부정확해지고, 사고가 느려질 수 있다. 이 밖에 다른 증상으로는 신경이 예민해지고, 스트레스가 높아지며, 집중력이 저하되거나, 폭식을 하게 된다.
영국의 영양사인 캐롤린 윌리엄스 박사는 수면 부족이 건강한 식단을 선택하는 데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2015년의 한 연구에 따르면, 10대들의 경우 1시간씩 잠을 덜 잘 때마다 다음날 210칼로리를 더 먹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대부분 지방과 탄수화물을 먹는다는 데 있었다. 또한 규칙적인 수면을 하지 않는 10대들은 군것질을 할 확률이 더 높았다.
윌리엄스 박사는 수면 부족이 뇌 기능에 영향을 미치고, 먹고 싶은 음식이나 호르몬 조절, 음식을 소화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평소에는 잘 먹지 않던 음식을 더 먹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양질의 수면이 부족하면 뇌의 보상 센터가 음식에 더 많이 반응하게 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피곤한 사람들이 정크 푸드에 더 많이 반응하고 건강한 음식보다 몸에 안 좋은 음식에 돈을 더 많이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하고도 12시간을 더 깨어있을 경우, 즉 36시간 동안 잠을 안 잘 경우에는 위의 증상들이 더 악화된다. 여기에 더해 ‘마이크로슬립’이라고 불리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는 최대 30초까지 지속되는 무의식적인 수면 상태로, 깨어있는 것처럼 보이고 눈도 뜨고 있지만 뇌는 ‘꺼져’ 있는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는 뇌 활동이 느려져 정보를 처리하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잠을 못 자면 뇌가 스스로 회복할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하게 되고, 이로 인해 스트레스가 극심해지고 신체 기능이 저하될 수 있다. 또한 잠을 안 자고 36시간 동안 깨어있으면 뇌의 많은 부분들이 서로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는 기억, 학습, 의사결정 및 반응이 모두 어려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혈압과 심박수가 증가하고, 신진대사가 느려지며, 심장에 무리가 오게 된다.
#2일(48시간) 동안 잠을 안 자면 → 환각 증상이 나타난다
이틀을 꼬박 새우면 극도의 수면 부족 상태가 된다. 이로 인해 ‘마이크로슬립’이 나타나는 빈도 또한 높아지게 된다. 이때쯤이면 환각 증상이 나타나거나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지며, 이인증(자신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느낌)이 나타나고, 불안해지며,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지게 된다.
감정과 기억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뇌의 편도체와 실행 기능과 충동 조절을 담당하는 전두엽 피질 역시 모두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된다. 심리학자인 스콧 라이언스 박사는 이로써 스트레스나 불편한 상황에 대해 평소보다 60%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고 말했다.
3일(72시간) 내내 깨어 있으면 뇌는 심한 피로감을 느끼게 되고, 환각이나 망상 등 정신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태가 나타나게 된다.
#4일(96시간) 동안 잠을 안 자면 → 치명적일 수 있다
96시간의 수면부족 상태에서는 정신병의 위험이 크게 증가한다. 다시 말해 현실 감각에 문제가 생기고 망상이 나타나거나 심한 감정 변화를 겪을 수 있다. 보통 수면부족으로 나타나는 이런 증상은 충분한 수면을 취하면 다시 회복된다. 하지만 계속해서 반복될 경우에는 치명적일 수 있다. 수면 부족으로 나타나는 극심한 피로감은 직장에서 중대한 실수를 할 가능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교통사고의 주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가령 다섯 아이의 엄마인 제시카 타피아(29)는 10년 동안 거의 매일 4~5시간 정도만 잤다. 그래서인지 자주 짜증을 냈으며, 기분도 썩 좋지 않았다. 때로는 어지럼증을 호소하기도 했고, 늘 몽롱한 상태였으며, 무언가 결정을 내리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타피아는 “수면 부족은 정말 심각한 상태다. 어쩌면 사람을 미치게 만들 수도 있다”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아침에 일어나면 늘 머리가 어지럽고 혼미해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을 정도다. 가장 무서운 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내가 상황을 인지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라고 호소했다.
신체적 문제 외에 정신 건강도 수면의 질에 큰 역할을 미친다. 라이언스 박사는 양극성 성격장애, 우울증, 일반적인 불안 장애 등도 수면 패턴을 교란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반대로 수면 부족이 정신 건강 문제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심리치료를 받거나 약물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수면 전문가들은 수면 건강을 개선하기 위한 방법으로 일찍 잠자리에 들기, 오후에는 카페인을 섭취하지 않기, 침실 온도 낮추기, 잠들기 직전에는 전자기기 사용하지 말기 등을 추천한다. 신경방사선학과 전문의이자 인지치료 클리닉인 ‘재인지 건강’의 최고경영자 이머 맥스위니 박사는 “수면 부족은 신체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라고 말하면서 “수면 부족은 다양한 건강 문제와 질병과 관련이 있다. 질 좋은 수면은 기억, 언어 등 인지 기능을 돕는 데 필수적이다”라고 충고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