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변수’ 금리 인하는 하반기 유력…연말까지 시장 냉각 전망
중견 건설사인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소식과 함께 시작한 새해 건설 시장은 그야말로 ‘폭풍전야’다. 태풍급 PF(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 사태가 터질 수 있다는 공포감이 퍼지며 온갖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 ‘노후 신도시 재건축 지원책' 등 4월 총선을 앞두고 쏟아질 각종 개발 정책 이슈, 새해 서울 신축 아파트 입주 물량 부족에 따른 전셋값 상승 전망 등이 주목할 포인트로 꼽히지만 이미 업계를 집어삼킨 ‘금융 부문 리스크’에 밀려 주변적 변수에 그칠 가능성이 제기된다.
현재 건설업계에 가해진 ‘PF 부실’ 폭발 압력은 최고조에 달해 있다. 태영건설 워크아웃이 올해 건설사 줄도산의 뇌관을 건드렸다는 불안 심리가 팽배하다. 미분양에 따른 시행사들의 부도로 ‘PF우발채무’를 대신 떠안은 건설사들이 자금난에 줄줄이 채무불이행 대열에 오를 수 있다는 우려다. 국내 건설기업의 PF보증 규모는 지난해 9월 말 기준 28조 3000억 원으로, 2021년 21조 9000억 원에서 30% 가까이 폭등한 상태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자기 자본 대비 부채 비율이 2배 이상 높고,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해 PF우발채무가 많은 건설사는 태형건설 말고도 많다”며 “이들 건설사들의 유동성 위기가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을 경우 돈을 빌려준 중소형 증권사나 저축은행 등 금융사들에 위험이 전이돼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건설·금융사가 줄도산한 상황이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기준 전국 종합건설업체 폐업 신고는 총 366건으로 1년 전 대비 71% 늘어났다. 전문건설업체 폐업 건도 같은 시기 1729건으로 1년 전 대비 21% 증가했다.
건설사 폐업·부도 사태가 올해도 이어진다면 이는 지방 도시에 무리하게 아파트를 지었거나 최근 2~3년새 오피스텔·지식산업센터·생활형숙박시설·물류센터 등 이른바 ‘비아파트 부문’ 사업을 벌인 건설사들에서 주로 나올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시장 호황기에 벌인 사업들이 일제히 '분양 기근' 상황을 만나 대부분 공사 대금 회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움츠러든 경기에 주요 연구기관이 내놓은 새해 건설 수주·투자 전망치는 ‘마이너스’를 가리켰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지난해 17.3% 감소한 국내 건설수주량이 올해도 1.5% 줄어 187조 3000억 원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공공부문 건설 수주량은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공사와 부산 가덕도 신공항 사업 등 대형 토목 사업의 영향으로 지난해 대비 4.6% 증가할 전망이지만, 민간 부문의 토목·건축사업이 크게 부진해 수주량이 지난해 대비 4%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건설투자 전망치도 전년 대비 0.3% 줄어든 260조 7000억 원 규모에 그쳤다. 2022년과 2023년에 걸쳐 건축 착공량이 감소한 탓에 올해 주거용과 비주거용 건축공사 모두 부진할 것이란 설명이다. 박철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고금리 상황이 장기화되고, 금리 인하 시기가 불확실한 탓에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건설기업의 자금조달 어려움이 지속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의 전망은 더 부정적이다. 올해 건설투자 규모를 지난해보다 2.4% 감소한 257조 원으로 예측했다. 연구원은 “2022년 이후 부진했던 건설 선행지표의 시차효과가 올해 본격적으로 반영되고, 여기에 금융시장 불안과 생산요소 수급 차질, 공사비 상승 등 부정적 요인이 더 커질 경우 건설경기 침체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며 올해와 내년 사이가 건설 경기의 ‘저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건설업계 시선은 일제히 정부가 쏟아내는 대응책에 쏠린다. 금융시장 안정화와 인프라 투자 확대를 위해 얼마나 파격적 수위의 예산과 지원책을 마련할지 '기대반 우려반'이다.
우선 정부는 태영건설 워크아웃을 계기로 새해 초부터 ‘건설산업 신속대응반’을 가동한 데 이어 4일 PF부실 사태 확산을 막기 위한 지원책을 발표했다. 건설업계에 85조 원 수준의 유동성을 공급하고, 건설공제조합 등을 통해 '책임준공보증 가속화'에 6조 원, 비주택 PF 보증 신설에 4조 원, 건설사 특별융자에 4000억 원을 투입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사업성은 어느 정도 확보돼 있지만 일시적으로 유동성 어려움을 겪는 사업장에 대해선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매입해 정상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이와 별도로 금융당국은 현재 ‘PF 대주단 협약’을 통해 전국 152개 PF부실 사업장을 상대로 대출 만기 연장, 이자 상환 유예, 채무 조정 등의 조치를 이행 중이다.
업계 시선에선 이들 대책이 건설사들의 공사 중단을 즉각 막고, 미분양 부담을 해소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특히 준공 후에도 분양이 안 돼 회사가 이를 떠안는 ‘악성 미분양’이 최근 2개월 연속 1만 가구를 넘어서면서 대출이자 상환에 필요한 건설사들의 자금줄이 꽉 막혀있는 게 문제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 전국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1만 465가구로, 지난해 1월 대비 10개월 새 38.7%나 껑충 뛰었다.
전문가들은 누적된 미분양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PF대출 상환 연체율이 급상승해 2026년에는 만기가 도래하는 ‘본PF’ 부실률이 70%를 돌파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다올투자증권은 지난 3일 낸 보고서에서 “현재 미분양이 내년이 되기 전 해소되지 않을 경우 부실 사업장들의 만기 도래로 인한 ‘본PF 잠재부실율’이 올해 45%, 2025년 62%, 2026년 이후 71%로 급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에 대학주택건설협회 등 유관 단체들은 정부가 종합부동산세 합산 배제, 위축지역 신속 지정, 취득세·양도세 감면 등 미분양 해소 대책을 일제히 가동해 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올해 시장 상황의 최대 변수로 꼽히는 ‘금리 인하’ 시기는 하반기가 유력하다. 금융계는 한국은행이 올해 하반기부터 2~3차례 금리를 낮출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관건은 인하 ‘수위’인데, 물가안정 속도가 더딜 경우 인하 폭이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럴 경우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부채 부담이나 건설사들의 PF대출 부담이 연말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올해 상반기 내 조속한 금리 인하, 큰 폭의 금리 인하를 기대하기엔 제한적”이라며 “낮아진 금리의 도움을 받아 주택 유효 수요가 부동산 시장에 풍부하게 유입하는 것은 당분간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브릿지론을 포함해 PF대출 연체율이 저축은행은 5%, 중소증권사들은 13%를 넘는 경우도 있어, 당분간 PF사업장의 사업성 재구조화 차원에서 냉철한 평가에 따른 부실사업장 '옥석고르기'나 구조조정이 지속될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이강훈 기자 ygh@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