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 하락 속 잠실 아파트 한 달 만에 2억 내리기도…지방은 매매가·전세가 동반 약세, 역월세 재등장 조짐
#불안한 시장…매수자도 매도자도 관망 중
1월 30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1월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 건수는 1142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달(1413건) 대비 약 20% 줄어든 수치다. 전세의 경우 8016건으로 지난해 같은 달(1만 2282건) 대비 약 35% 감소했다.
전체 매매 거래량은 5개월째 떨어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통계에 따르면 전국의 주택 매매 건수는 2023년 8월 5만 1578건을 기록했다가 9월 4만 9448건, 10월 4만 7799건, 11월 4만 5415건, 12월에 3만 8036건으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아직 1월 통계가 나오지 않았지만 최근 부동산 경기가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고려하면 1월 거래량도 낮을 확률이 높다.
거래가도 매주 하락하는 추세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하는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1월 넷째 주(22일 기준)의 전주 대비 서울 아파트 가격은 0.03% 떨어지며 8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이른바 강남 3구로 불리는 송파구(-0.06%)와 서초구(-0.04%) 모두 하락했고 강북권 역시 노원구(-0.04%)·도봉구(-0.05%)·성북구(-0.07%) 등 전 지역이 하락했다.
실제로 서울 주요 대단지 아파트들이 2023년 말과 2024년 초 두드러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전용면적 84㎡는 2023년 12월 20억 7000만 원에 거래되었으나 2024년 1월 10일 19억 원에 거래됐다. 잠실동 리센츠의 경우 1월 5일, 11일, 19일에 전용면적 84㎡가 각각 22억 2500만 원, 23억 원, 23억 3500만 원에 거래됐다. 당장 2023년 12월까지만 해도 같은 면적이 최대 22억~24억 6000만 원에 거래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불과 한 달 새 최대 2억 3500만 원이나 내려간 셈이다.
거래 절벽의 배경엔 부동산 경기 침체 영향이 크다. 현장 관계자들은 “시장이 얼어붙었다”고 표현했다. 1월 30일 서초구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부동산 시장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관망세가 짙어졌다”며 “아파트 가격이 계속 떨어지는 추세라 매수자들은 값이 더 떨어지길 기대하고 매도자들은 정부 대책 발표 이후 가격이 오를 걸 기대하면서 물건을 내놓지 않는다. 얼마 전에도 매수자가 계약금까지 지급했지만 매도자가 계약금을 물고 매물을 거둬들인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인근의 또 다른 관계자는 “자녀 학업 문제 등으로 급하게 처분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물건이 많지 않다”며 “경기가 어려워 이사 자체를 하지 않는 것 같다. 문의 전화도 많이 줄었다. 요즘엔 손님보다 영상 찍겠다며 자문하러 오는 부동산 유튜버들이 더 많다”고 했다.
한편 전셋값의 경우 수도권(0.05%→0.05%)과 서울(0.07%→0.07%)에서 상승폭을 유지했다. 3월 신학기를 앞두고 학군과 역세권이 양호한 단지 위주로 매물부족 현상이 발생해 상승거래가 이뤄진 것으로 분석된다.
#지방에선 역월세 다시 등장
지방의 경우 상황이 조금 다르다. 수도권보다 시장이 더욱 침체된 지방에서는 매매가 하락폭도 크고 특히 전셋값도 2주 연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1월 넷째 주 지방 아파트 전세 가격은 전주 대비 0.01% 하락했다. 지방 전셋값은 2023년 8월 둘째 주 이후 22주 만인 1월 셋째 주(-0.01%)에 하락세로 전환한 뒤 2주 연속 내림세다. 지역별로는 세종(-0.15%)이 가장 많이 떨어졌고, 대구(–0.06%)와 부산(–0.06%)을 포함한 5대 광역시(-0.02%)도 하락했다. 매매가 역시 -0.03%에서 -0.04%로 하락폭이 확대됐다.
실제로 1월 19일 세종시 고운동 ‘가락3단지베르디움’ 전용면적 84㎡ 전세는 연초보다 3000만 원 낮은 1억 9000만 원에 거래됐다. 1월 26일 기준 같은 면적 전세 호가는 1억 8000만 원까지 내려간 상황이다.
전셋값 하락의 가장 큰 요인으로는 줄어든 가구수와 늘어난 입주물량이 꼽힌다. 부동산 정보제공업체 아실에 따르면 세종의 2023년 4분기 입주물량은 1324가구로 458가구였던 3분기보다 2.8배가량 증가했다. 대구의 입주물량은 2023년 3분기 6617가구에서 4분기 1만 3213가구로 크게 늘었다. 반면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대구 지역의 인구는 2023년 8월부터 매달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업계에서 공급과잉을 우려하는 이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방에선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돈을 주는 이른바 ‘역월세’가 다시 등장할 조짐을 보인다. 매매가와 전셋값이 함께 떨어지면서 과거 고점에서 계약을 맺은 집주인들이 보증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자 낮아진 전셋값만큼 세입자들에게 월세를 주는 방식으로 세입자를 붙잡는 것이다. 예컨대 계약 만기가 도래한 세입자가 시세에 맞춰 전세금을 조정해 재계약을 요구했을 시 집주인이 차액을 주는 대신 은행 이자 수준의 월세를 매달 세입자에게 주고 계약을 연장한다. 이때 집주인과 세입자 간 종전의 전세보증금은 유지된다.
이런 형식의 역월세는 아파트뿐만 아니라 직장인들이 거주하는 오피스텔이나 다세대주택 및 연립주택에서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세종의 한 오피스텔에 거주 중인 한 직장인은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보증금이 더 싼 곳으로 이사를 알아보고 있던 와중에 집주인으로부터 당장 자금 마련이 어렵다며 매달 돈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큰돈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 일단 묶어두고 매달 돈을 받는 것이 더 좋을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부동산 침체가 장기화될 경우다. 전셋값이 계속해서 떨어지면 집주인은 지금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세입자를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집주인에게 매달 받는 돈은 소득으로 잡혀 세금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전세가율을 계산해 이른바 ‘깡통전세’를 피하는 것도 중요하다. 전세가율이란 주택의 매매가격 대비 전세보증금의 비율을 뜻한다. 가령 주택의 매매가격이 10억 원이고 전세보증금이 9억 원이라면 전세가율은 90%다. 전세가율이 높을수록 매매가 하락 시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우려가 크다.
이런 이유로 전문가들은 역월세 제안을 신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송파구 마천동에 위치한 공인중개사는 “사회초년생 입장에선 매달 돈이 들어온다는 것이 솔깃한 제안이긴 하지만 오피스텔의 경우 갭투자가 특히 많다. 집주인이 전세금을 반환할 수 있는 여력이 되는지 따져보고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자칫하면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했다.
이미 계약을 했다면 전세반환보증에 가입하는 것을 권고한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 서울보증보험(SGI)의 ‘전세금보장신용보험’에 가입하면 설령 집이 경매에 넘어간다고 해도 HUG와 SGI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받을 수 있다.
한편 국토교통부는 30일 ‘1·10 부동산 대책’ 후속으로 위축된 주택 공급을 정상화하고 다양한 유형의 주택 공급을 활성화하기 위한 11개 법령과 행정규칙을 행정예고한다고 밝혔다.
후속 대책에 포함된 11개 법령과 행정규칙은 △도시정비법 시행령 △소규모주택정비법 시행령 △주택법 시행령 △주택건설기준규정 △국토계획법 시행령 △공공주택특별법 시행령 △민간임대주택특별법 시행령‧시행규칙 △오피스텔 건축기준 △피해주택 매입업무 처리지침 △공공주택 업무처리지침 등이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