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변수는 신생아특례대출과 금리 인하…‘거래 빙하기’ 깨뜨릴지 주목
서울 강남권 아파트값 동향의 ‘지표’로 흔히 언급되는 잠실엘스아파트. 지난 6일 국민평형(전용84㎡) 매물이 22억 4000만 원에 거래됐는데 이는 한 달 전 실거래가 24억 6000만 원에서 2억 2000만 원(9%) 떨어진 가격이다. 반면 전세 시세는 뛰고 있다. 1년 전 8억~9억 원대를 기록했던 같은 평형 전세 가격은 약 3억 원 뛰어, 이달 들어서는 두 번이나 12억 원을 넘겨 거래됐다.
강북지역 대표 대단지인 미아동 SK북한산시티는 전용84㎡ 매물이 지난해 10월 약 7억 원에 거래됐는데 3개월 만인 지난 12일 이보다 약 8000만 원 떨어진 6억 1800만 원에 팔렸다. 직전 최고점 가격(8억 9000만 원) 기준 30% 하락한 가격선이다. 전세 흐름은 역시 반대다. 지난해 1월만 해도 3억 원 대 초반에 전세 거래가 이뤄졌는데 연말인 지난해 12월에는 40% 넘게 올라 4억 7000만 원 거래가 나왔다.
이러한 시장 상황은 서울과 수도권 대부분 지역, 지방 일부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18일 발표한 ‘1월 3주차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매매 가격은 0.04% 떨어지며 새해 3주 연속 하락을 기록했다. 서울(-0.04%)과 수도권(-0.06%), 지방(-0.03%) 모두 ‘동반’ 하락했다. 반면 전세 가격은 전국 평균 0.02% 뛰며 3주 연속 오름세를 이어갔다. 서울이 0.07%, 수도권이 0.05%의 상승률을 보였다. 서울에선 동대문, 구로, 노원, 은평구 등이 1주 새 0.1%를 웃도는 상승률로 전셋값 강세를 견인했다.
최근의 집값 하락세는 극도의 ‘거래 절벽’ 상황과 연동돼 있다. 서울의 경우 지난해 8월 3900건까지 올라섰던 아파트 매매 월거래량은 4개월 뒤인 지난달엔 약 1700건(1월 18일까지 신고분)에 머물러 있다. 이달 매매 거래량은 390건(18일까지 신고분)에 그친다. 수도권이나 지방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직 높은 대출 금리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여전하고, 재건축 예정 단지 등 구축 아파트에 대한 투자 심리도 저조해, 매수 수요자들의 전반적인 관망세가 장기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전세 시장은 매매 시장에서 이동해 온 수요 덕에 상대적으로 활기를 띈다. 특히 서울의 전세가 강세가 돋보인다. 이는 올해 서울의 신축 아파트 입주 물량이 매우 부족한 ‘수급 불균형’ 탓이다. 올해 서울의 입주 물량은 연평균 수요치 4만 8000여 호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만 9600호에 그친다.
이 같은 ‘신축 기근’은 꾸준한 ‘탈서울’ 행렬에도 더욱 불을 지피는 모양새다. 서울 보다 상대적으로 자금 부담이 적은 경기·인천 신도시에서 ‘내 집 마련’을 꾀하는 전략이다.
부동산빅데이터기업 ‘부동산지인’의 최신 집계를 보면 지난해 8월부터 11월까지 3개월간 서울의 인구가 약 1만 3300명 줄어든 반면 경기는 약 9400명, 인천은 1만 3700명이 늘었다. 검단신도시 입주가 활발한 ‘인천 서구’가 1만 4000명, 동탄2신도시를 품은 경기 화성시가 7600명, 옥정·회천신도시가 있는 양주시가 5900명 늘며 ‘인구 유입 파워’를 드러냈다. 홍흥표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인천서구지회장은 “서울에서는 주로 영등포구나 강서구, 양천구 등에서 검단신도시로 전입해 오는 편”이라면서 “김포공항 주변에 직장을 뒀지만 서울 마곡지구 등의 집값이 좀 비싸니, 비교적 직장에서 거리가 가까운 검단신도시로 넘어오는 수요가 있는 것 같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현재의 장세는 적어도 올여름까지 이어지다가 하반기에 금리 인하 조짐 등 변수를 만나며 하락세 기울기가 다소 완만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주택 수요자들의 집값 상승 기대 심리나 투자 심리가 모두 얼어붙어 있어, 실수요자만 제한적으로 매매 시장에 참여하는 상황이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다. 전세 시장은 서울은 강세, 수도권과 지방은 지역의 신축 입주 물량에 따라 상승·보합이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지방은 이미 쌓여있는 미분양 물량에 올해 신축 입주 물량까지 얹어지는 곳도 많아 전셋값 불안 정도가 제한적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같은 진단 속에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2024년 전국 주택 가격이 2% 상승, 전세 가격이 2%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올해 집값 변동률로 서울 2~3% 하락, 수도권 2~5% 하락, 지방 2~5% 하락을 예견했다. 전세가는 서울과 수도권 모두 2~5% 상승, 지방은 –2%~2% 구간 내에서 변동을 예상했다.
올해 집값 기울기에 영향을 줄 ‘대표 변수’로는 금리 인하 시점, 27조 원 규모의 신생아특례대출, 4월 총선 공약으로 힘이 실릴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 추가·연장안 등이 꼽힌다.
기준금리 인하는 올해 하반기부터 시작해 2~3차례 이뤄질 것으로 금융업계는 내다보는 상황. 이 시나리오대로라면 올해 집값 하락은 여름쯤부터 분위기 전환에 들어가고, 하락 폭도 지난해에 비해 완만할 것으로 예견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올해 집값 조정 기간을 6월 말까지로 내다본다. 박 위원은 '일요신문i'에 보낸 의견서에서 “집값이 지난해처럼 급락하거나 장기 하락으로 이어질 것으로 판단하지는 않는다”면서 “올해 3월까지 약세, 4월부터 6월 말까지 약보합세, 7월부터 보합세나 강보합세 전환을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고 밝혔다.
금리 인하가 시작되면 시장의 반응은 매매보다는 전세 시장에서 먼저 나타날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주택담보대출과 달리 전세자금대출은 ‘변동금리’ 대출이 많아 금리 동향에 맞춰 더 민감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풀이다.
이달 29일부터 시행이 시작되는 신생아특례대출이 겨울잠에 빠진 주택 매수 수요를 흔들어 깨울지도 관심이다. 지난해 40조 원 규모로 투입된 특례보금자리론이 거래량을 급격히 끌어올려 집값 반등을 이끈 전례를 볼 때 ‘27조 원 규모’ 신생아특례대출의 파급력에도 자연스레 이목이 집중된다. 이 대출 상품은 9억 원 이하 주택에 한해 이용할 수 있어 10억~20억 원대 고가 주택 비율이 높은 강남권이나 마포·용산·성동 등 서울 중심지역 보다는 상대적으로 외곽에 속하는 지역이나 수도권, 지방에서 그 영향력이 더 클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한편 4월 총선을 앞두고 각 지역에서 쏟아질 이른바 ‘개발 호재’ 공약들은 가라앉은 시장을 흔들어 깨울 만큼의 힘은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관심이 뜨거운 GTX-A·B·C노선 연장안, D·E·F 추가 노선안의 경우에도 이미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기본 수준의 구상안이 공유돼, 기대 심리가 상당 부분 시장 가격에 ‘선반영’ 됐을 것이라는 진단도 있다. 최근 정부가 노후 신도시 재건축 지원책이나 공공주택 ‘14만 호+a’ 공급대책 등을 담아 발표한 ‘1·10 부동산 대책’ 역시 시장 흐름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 한 점도 참고할 선례로 거론된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정부가 1.10부동산대책을 내놓긴 했지만 공급정책 측면에 치우쳐 있고, 매수 진작에 별다른 영향을 줄 만한 내용이 없었다”면서 “상반기에 총선이 있지만 현 정치권 분위기상 개발 공약을 남발하기도 어려운 상황으로 보여, 당분간 집값 반등 여력은 약해 보인다”고 총평했다. 그러면서 “금리 인하 등 변화가 있으면 매수세가 증가할 수 있겠지만 인하 가능성과 시기를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겠다”고 설명했다.
이강훈 기자 ygh@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