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국기원 용인 건립’ 공약하며 용인갑 출사표…이동섭 원장 “선관위로부터 출마 가능 유권해석”
전직 국민의힘 국회의원 이동섭 국기원장은 2023년 12월 14일 총선 예비후보 등록 절차를 마친 뒤 본격적인 총선 레이스에 뛰어들었다. 그동안 활동했던 무대인 서울 노원 대신 경기 용인에서 새로운 정치 커리어를 쌓아가려는 모양새다. 이 원장은 용인갑 지역구에서 정치적 부활을 노린다. 하지만 현직 국기원장이 공공연하게 정치적 행보를 이어가는 것과 관련해 태권도계 내부 시선이 곱지 않다.
이 원장을 둘러싼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 논란’은 2021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한 차례 제기된 바 있다. 이 원장은 서울 노원을 지역구 당협위원장과 국기원장직을 겸하고 있을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 유세 지원활동을 했다. 이 원장은 당시 유세 현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이번 서울시장 선거와 부산시장 선거는 반드시 이겨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까지 우리 국민의힘 이름으로 당선시켜야 되겠다”라며 약 6분에 걸쳐 정치적 발언을 이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엔 서울시장 선거 유세 지원이었지만, 이번엔 직접 정치 출사표를 던지면서 논란은 더욱 클 전망이다. 그간 서울 노원 지역구 정치인으로 활동해 왔던 이 원장은 제22대 총선을 앞두고 용인에 새 둥지를 틀었다. 모교인 용인대학교가 위치한 용인갑 지역구 예비후보로 등록을 마쳤다.
한 태권도계 관계자는 “현역 국기원장이 특정 정당 간판을 달고 직접 선거에 나간다는 점은 앞으로도 굉장히 좋지 않은 선례로 남을 것”이라면서 “본인이 국기원을 세계 태권도 본부로 자부했는데, 세계 태권도 본부 수장인 국기원장직이 정치 생명을 이어가게 해주는 징검다리는 아니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국기원장 임기 초반에도 ‘국회로 돌아가려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 원장이 ‘국회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국기원 정관엔 임원에 대한 정치적 중립 의무가 명시돼 있다. 정관 제11조(임원의 직무) 6에 따르면 국기원 임원은 국기원 업무와 관련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 원장 행보가 국기원 업무와 연관이 있는지가 정관 위반 논란 핵심 쟁점이다.
익명의 제보자는 “이 원장이 취임 이후 거론했던 주요 목표가 용인에 제2국기원을 건립하겠다는 것”이라면서 “용인에서 정치 행보를 시작한 뒤에도 주요 공약으로 제2국기원 건립을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보자는 “국기원장 직위를 활용한 공약”이라면서 “국기원 업무와 관련해 정치적 중립을 위반했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제보자는 “그 뒤로 제2국기원과 관련해 오세훈 서울시장과 얘기했을 때는 ‘과천으로 간다, 도봉으로 간다’ 말이 많았다”면서 “이제는 또 자신이 출마하는 지역구에 제2국기원을 건립하겠다고 한다”고 했다. 그는 “제2국기원이 무슨 떴다방이냐”면서 “1만 평 부지에 약 1500억 원 규모 재정이 필요한 사업을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 자체도 정치적 행보”라고 지적했다.
태권도계 또 다른 관계자는 “이동섭 국기원장이 최근 용인갑 지역구에 총선 예비후보로 등록하면서 자신의 이력에 한 줄을 부연했다”면서 “‘제20대 대통령선거 국민의힘 중앙선대위 조직총괄본부 문화체육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직책”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국기원장 재임 시절 열린 대선에서 특정 정당 대선 캠프에 정식으로 위원장 직함을 받고 선거운동을 뛰었다는 말”이라면서 “이 이력 하나만으로도 정관 위반 및 해임 사유가 될 것”이라고 했다.
국기원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국기원은 법정 특수 법인이자 재단법인이고 비영리 기관”이라면서 “정관에서 명시한 대로 뽑힌 원장은 국기원 모든 행정업무를 총괄하는 풀타임 잡(상근직)”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국기원장 연봉은 억대고, 최고급 리무진과 운전기사가 고용될 뿐 아니라, 업무추진비도 따로 있다”면서 “즉, 태권도인과 국기 태권도에 책임을 지는 사람으로서 ‘풀타임’으로 태권도와 국기원만 위해 일하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이 원장이 출마 의사를 본격적으로 내비치면서부터는 국기원에 거의 출근하지 않았다”면서 “주변에서 말이 많으니 출퇴근할 때 업무 차량을 타고 와서 세워놓고, 개인 차량을 타고 밖으로 나간다”고 주장했다.
전남 고흥 출생 이동섭 국기원장은 고흥농고와 용인대학교 체육학과를 졸업했다. 민주당 노원병 지역위원장으로 정치 커리어를 시작했다. 제20대 총선에서 ‘친안철수계’로 분류되며 국민의당으로 적을 옮겼다. 국민의당 비례대표 12번으로 당선증을 거머쥐었다. 현역 의원 활동 당시엔 지자체장과 체육단체장 겸직을 금하는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기도 했다. 정치와 체육이 분리돼야 한다는 원칙 선봉에 섰던 셈이다.
이 원장은 제21대 총선에서 노원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우원식 민주당 의원에 패해 야인이 됐다. 그리고 2021년 1월 29일 국기원장으로 취임했다. 2022년 2월 27일 이 원장은 용인시 처인구 소재 웨딩홀에서 저서 ‘태권V 이동섭’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지역구 정치 행보에 시동을 걸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저서 출간 소회를 통해 이 원장은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를 용인에서 보냈다”면서 “20대 국회에서 용인갑 지역위원장을 맡아 용인을 위해 일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용인에 제2의 국기원 건립과 민속촌, 에버랜드, 처인성을 잇는 문화벨트·반도체특화도시·대학교를 한데 묶는 용인판 마로니에 문화공원 등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며 의욕을 내비쳤다.
2023년 12월 9일 총선 예비후보 등록기간 개시를 앞두고 이 원장은 모교인 용인대학교 무도대학 단호홀에서 다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이날 이 원장은 “태권도와 용인 발전은 내 삶과 정치활동의 지향점”이라면서 “이 책을 용인시민들과 함께 희망을 이야기하고 용인 미래를 설계하는 원동력으로 삼고 싶다”고 말했다.
한 태권도인은 이 원장 행보와 관련해 “현역 국기원장을 맡고 있는 사람이 국민의힘 예비후보로 총선 출사표를 던지면서 프로필 사진에 후원회 계좌를 올려놨다”면서 “이 원장이 태권도인들 손에 쫓겨나기 전에 스스로 사퇴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요신문은 1월 5일 이동섭 국기원장에게 정관상 정치적 중립 위반 논란 및 최근 정기적 출근 여부를 질의했다. 이 원장은 “나는 법학박사고 경찰과 검찰에서 20년 동안 특수수사를 했다”면서 “법을 위반하며 살겠느냐”고 해명했다. 이 원장은 “국기원 임원은 국기원 업무에 한해 정치적 중립을 지키게 돼 있다”면서 “현역 국회의원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했다. 이 원장은 “국기원에 출근해서 결재할 것 다 하고 나와서 남는 시간에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 원장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국기원장 직책을 가지고 출마할 수 있는지 유권해석을 의뢰했다”면서 “선관위로부터 공직자가 아니기 때문에 출마할 수 있다고 유권해석을 받았다”고 했다. ‘공천을 받게 되면 사퇴 의사가 있느냐’라고 묻자 이 원장은 “그럴 예정”이라고 답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