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보다 뚝배기맛’ 첨단경쟁
▲ 쿠쿠 네트워크쿠킹 밥솥 | ||
그러나 성장률도 정체되고 대기업도 떠나고 레드오션으로 치부되던 이 시장에 변화가 일고 있다. 밥솥 전문 중소업체들이 ‘진화’한 기능을 갖춘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없던 시장이 새로 열리고 성장률이 커지고 있다. 내솥을 황동으로 만들고 입체 가열을 통해 밥맛은 물론 밥짓는 속도를 단축시키는 등 전기밥솥 시장이 첨단기술의 경연장이 되고 있는 것. 이런 신기술이 선보이면서 최근 전기밥솥 시장은 연간 330만 대, 3400억 원 규모로 예전의 업종 전망이 무색하게 연 20%의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쿠쿠홈시스, 부방테크론, 웅진쿠첸 등이 전체 시장의 98%를 차지하고 있다. 3사 외에 삼성전자에 납품하던 노비타가 전기밥솥을 생산하고 있기는 하지만 할인매장 등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미하다.
전기밥솥 시장의 성장을 주도한 것은 2004년부터 나오기 시작한 프리미엄급 제품인 아이에이치(IH:Induction Heating)압력밥솥. IH압력밥솥은 기존의 열판 방식과 달리 자력선을 이용, 불꽃 없이 내솥 전체를 가열해 밥솥 내부에 고열의 대류를 일으켜 쌀을 골고루 익히는 방식이다. 기계식-전자식-압력밥솥에 이은 전기밥솥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IH압력밥솥은 대당 가격이 30만 원이 넘을 정도로 고가이지만 밥맛이 좋다는 입소문을 타고 판매가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판매된 전기밥솥 중 IH압력밥솥이 차지하는 비중이 46%에 이른다. 일반 전기밥솥은 41%에서 36%로 감소했다.
현재 쿠쿠홈시스 제품은 전체 전기밥솥 시장에서 70%, IH압력밥솥 시장에서 65∼67%의 시장점유율을 올리고 있다. 전체 전기밥솥에서는 부방테크론이 그 뒤를 이어 15∼18%, 웅진쿠첸이 12∼13%를 이어가고 있다.
부방과 웅진은 2위 자리를 놓고 자존심 대결을 벌이고 있는 상황. 웅진쿠첸은 IH밥솥에선 자사가 20%, 부방테크론이 15%로 웅진쿠첸이 높다고 주장하는 반면 부방테크론은 “웅진 측의 주장은 GFK(시장조사업체)의 데이터로 샘플만 뽑아서 조사한 것으로 실제론 우리가 2위”라고 맞서고 있다.
웅진쿠첸은 “2005년 하반기 전기밥솥 교체시기와 새로운 타입의 IH압력밥솥 출시가 맞물린 것이 최근 성장세의 원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최근 전기밥솥 시장의 부활에는 선두 업체인 쿠쿠홈시스가 큰 역할을 했다. 쿠쿠홈시스는 1978년 이후부터 20년간 대기업 납품을 해오다 1998년 자체브랜드인 ‘쿠쿠’로 판매를 시작했다. 당시 쿠쿠는 중소기업으로는 파격적인 비용을 쏟아부으며 전략적인 홍보·마케팅을 실시해 쿠쿠 브랜드를 알리는 데 주력했다.
“자체 브랜드로 시장에 진출한 지 1년 만에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해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했다”고 쿠쿠 측은 전하고 있다. 당시 잇달아 터진 LG전자의 전기압력밥솥의 폭발사고로 대기업 제품에 대한 불신이 전기밥솥 전문업체에 눈길을 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 웅진쿠첸 프리미엄 황동IH 밥솥(왼쪽), 부방 리홈 블랙 앨번 밥솥 | ||
IH압력밥솥 개발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한 이후 최근의 트렌드는 내솥의 고급화다. 초기 스테인리스 내솥에서 황동이나 황금을 코팅해 열 전도율을 더 높이고 있다. 업체마다 코팅 성분과 방식을 두고 최고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쿠쿠홈시스의 최근 제품은 ‘황금동’(黃金銅) 코팅을 한 제품이다. ‘구리+황금’의 이중 코팅으로 구리의 높은 열 전도율에 황금 코팅으로 열이 안으로 반사되는 원리라고 한다.
웅진쿠첸은 순도 99.9%의 순동으로 코팅한 기술을 자랑하는데, 동이 금보다 열 전도율이 1.3배나 높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10월 대대적인 홍보·마케팅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후 부방의 리홈(Lihom)도 열 전도율이 높은 황금을 2중으로 코팅한 제품을 출시했다.
최근 웅진쿠첸은 11분대에 취사가 가능한 제품을 내놓았다. 기존의 열판방식은 20분대, IH방식은 14분대로, 선두주자인 쿠쿠가 13분대에 밥짓기를 끝내 ‘최고속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여기에 웅진쿠첸이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속도전뿐 아니라 기술 경쟁도 치열하다. 쿠쿠홈시스는 금·동 코팅에 이어 천연곱돌로 내솥을 만들어 돌솥밥 기능이 있는 ‘일품석’을 출시했다. 또 인터넷과 밥솥을 연결해 새로운 요리법을 업데이트할 수 있도록 하는 네트워크 기능을 접목했다.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주고 받는 밥솥은 세계에서 유일하다는 것이 쿠쿠 측의 설명이다.
부방테크론은 지난해까지 ‘찰가마’라는 브랜드로 판매를 했지만 중국 등 수출시장에서 표기에 애를 먹으면서 올해 1월 리홈(Lihom)으로 브랜드를 바꾸었다. CF모델도 김지호에서 채시라로 바뀌었다. 리홈은 기능뿐 아니라 디자인에도 신경써 밥솥에는 금기시되던 블랙 컬러 제품을 출시하면서 기존 백색, 베이지색 제품과 차별화를 시도했다. 또한 쿠쿠에서 돌솥 제품이 나오자 부방에서는 맥반석으로 내솥 안쪽을 코팅한 제품을 내놓았다.
웅진쿠첸은 지난해 10월 정수기로 유명한 웅진코웨이에서 생활가전 부문을 분사해 전기밥솥 시장에 승부를 걸었다. 출시 초기부터 황동 도금한 내솥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남성 모델인 영화배우 최민식을 기용해 주부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 결과 웅진쿠첸은 짧은 기간에 IH압력밥솥 시장에서 점유율을 20%로 끌어올렸다.
갈수록 진화하는 전기밥솥을 보면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바꾸는 휴대전화기처럼 밥솥도 유행 따라 바꾸는 날이 오지 않을까 궁금해진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