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선 “한류스타 친인척 연루” 수군
▲ 정낙진 전 워커힐카지노 사장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필리핀 현지에서 체포된 김 아무개 씨 등이 강남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으려고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
# 피해자는 정낙진 전 사장 아들
이번 사건이 더욱 세간의 화제를 불러 모은 까닭은 정낙진 워커카지노 전 사장의 아들이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정 전 사장은 지난 93년 ‘슬롯머신 대부’ 정덕진 씨, 전낙원 ㈜파라다이스 전 회장 등과 함께 90년대 초반까지 국내 카지노 업계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정 전 사장은 이번 사건 해결에서도 전면에 나섰다. 피해자인 아들 정 씨와 연락이 끊기자 직접 필리핀으로 출국한 정 전 사장은 한국 대사관과 필리핀 경찰청 납치범죄방지단을 찾아 수사를 촉구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베테랑 사설탐정까지 필리핀 현지로 데려와 아들의 행방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마닐라 교민들 사이에선 정 전 사장이 아들의 행방을 찾고 범인들을 검거하는 과정에 수억 원의 사비를 들였다고 알려져 있을 정도다.
이번 사건은 범행 일주일 전부터 철저히 계획된 범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 주식 선물·옵션 투자를 했던 피해자 정 씨는 2000년대 중반부터 한국과 필리핀을 오가며 다양한 사업을 벌여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부터는 카지노 관련 사업에도 손을 대면서 큰돈을 벌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정 전 사장을 비롯한 가족들은 마닐라에서의 사업은 안전이 걱정된다며 설득해 사업 주무대를 베트남으로 옮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마닐라 현지 사업은 정리 작업에 들어갔고 자금을 회수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피의자들이 정 씨가 자금을 회수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금고에 큰돈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고 보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피의자 가운데 김 씨 등 세 명은 피해자 정 씨와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고 한다. 문제는 피의자들이 앙겔레스 인접 지역의 C 호텔에서 도박으로 1억 원 넘게 돈을 탕진해 그 돈을 만회해야 했기 때문에 벌어졌다. 이에 피의자 정 아무개 씨가 피해자 정 씨에게 전화를 해 저녁식사 약속을 잡았고 마닐라 소재의 M 호텔 앞 노상에서 납치했다. 이후 정 씨는 피해자의 집으로 가서 금고에 있던 70만 페소(한화 약 1900만 원)와 홍콩달러 2만 4000달러(한화 약 350만 원)를 절취했다.
# 돌발 상황으로 인해…
정 씨가 피해자의 집에 가 있는 동안 김 씨와 윤 아무개 씨, 서 아무개 씨 등은 앙겔레스시 소재의 한 빌리지 주차장에서 정 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폭행을 당하며 “3억 원을 송금 받아 줄 테니 살려달라”고 제의했고 피의자들은 “5억 원을 주면 살려주겠다”고 요구했다.
문제는 현지 경비원이 이들에게 다가오면서 시작됐다. 당시 피의자들이 타고 있던 차는 해당 빌리지에 거주 중인 다른 한국인에게 빌린 차량이었다. 경비원은 입주민 차량에 다른 사람들이 타고 있자 의심을 갖고 접근해 총으로 이들을 위협했다. 이에 피의자들은 현지 사정에 밝은 송 아무개 씨를 불렀고 그가 따갈로그어(필리핀어)로 문제를 해결했다. 송 씨는 수사 과정에서 가장 마지막에 드러난 공범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피의자들은 피해자 정 씨를 조용히 시키기 위해 심하게 폭행하고 목을 조르고 입도 테이프로 막았다. 경찰은 당시 사망에 이를 정도의 폭행을 당한 정 씨가 결국 다른 곳으로 이동 중에 차량 안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피의자들이 피해자 정 씨의 사망을 확인한 시점은 김 씨와 송 씨가 함께 거주 중인 곳에 도착한 뒤라고 한다. 피해자의 사망을 확인한 뒤 이들은 사체 처리 방법을 모의했고 결국 같은 빌리지 내 인근 주택을 임차하기로 결정했다. 다음 날 아침 매장할 집을 물색한 뒤 장비를 구입한 피의자들은 마당에 2m가량의 구덩이를 판 뒤 그날 밤 9시경 시신을 시멘트와 섞어 암매장했다.
검거된 피의자들은 죽일 목적으로 납치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경찰은 면식범인 만큼 이런 주장에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피의자들은 정 씨가 정 전 사장의 아들인지는 몰랐다고 진술했다. 또한 평소 피해자의 성격을 봤을 때 강도를 당해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설사 신고를 할지라도 필리핀 경찰에게 뇌물을 주면 쉽게 풀려날 것이라 판단했다고 한다. 또한 한국 경찰이 필리핀까지 와서 수사를 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피해자의 부친 정 전 사장이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이들의 범죄 행각은 만천하에 드러났다. 필리핀에서는 18명의 한국인 실종사건이 있었지만 아직 사체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사건 역시 피해자의 가족이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면 미제사건이 됐을지도 모른다.
# 한류스타 논란은 왜?
한편 필리핀 현지에서는 피의자 가운데 한 명이 유명 한류스타 A 씨의 친인척이라고 알려져 사실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마닐라에 거주 중인 한 교포는 “아직 한국까진 알려지지 않은 모양인데 마닐라에선 피의자 가운데 한 명이 유명 연예인의 친인척이라는 얘기가 화제가 되고 있다”면서 “여기 거주하는 한인들 가운데 한 명이 A 씨의 가족 한 명과 친구 사이라 물어봤더니 맞다고 했다더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실제로 피의자 중 한 명이 유명 한류스타 A 씨의 친인척일까. 강남경찰서에 문의한 결과 수사를 담당하는 형사들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반응을 보였다. 네 명의 다른 피의자들 역시 잘 모르겠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A 씨의 소속사 역시 “가족과 관련된 일이라 잘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