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열린 판도라…비자금 의혹만 삐죽
▲ 이건희 회장과 이맹희 전 회장. 이번 공판에선 특검 자료가 처음으로 공개됐지만 어느 편으로도 힘을 실어주지 못한 모양새다. 일요신문 DB |
# 이학수 진술 결정적 증거 될까
삼성특검 자료의 공개를 앞두고 이맹희 전 회장과 이건희 회장 측은 팽팽한 신경전을 벌인 바 있다. 이맹희 전 회장 측 변론을 맡고 있는 법무법인 화우 관계자는 공판 전 <일요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특검 자료의 공개 목록에 대한 합의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신경전이 벌어졌던 게 사실”이라면서 “그 양이 방대한 만큼 검찰에서도 어느 선까지 공개할지를 두고 많은 검토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5차 공판에서 양측 변호인과 재판부가 검토한 삼성특검 기록은 3000쪽가량의 방대한 내용이다. 같은 수사 기록을 두고도 양측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해석을 내놓으며 공방을 벌였다. 삼성특검 수사기록은 이맹희 전 회장 측에서 소송 초반부터 줄기차게 공개를 요청해왔던 만큼 기록이 공개될 경우 이 전 회장에게 유리할 것으로 전망된 바 있다.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차명 주식이 고 이병철 선대회장의 상속재산과 동일한지를 입증해야 하는 이 전 회장으로서 삼성특검의 수사기록이 결정적 증거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
이날 공방의 핵심이 된 것은 1998년 12월 삼성에버랜드가 매입한 삼성생명 주식 344만 7600주였다. 이맹희 전 회장 측이 반격의 카드로 준비했던 대목은 특검 수사 당시 이건희 회장의 최측근이었던 이학수 전 구조조정본부장(부회장)의 진술 내용이었다. 특검 수사 당시 이학수 전 부회장의 진술 조서에 기록된 “에버랜드가 매수한 삼성생명 주식도 실제 현 소유주는 이건희 회장님”, “당시 회장님이 다 인수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에버랜드에 인수시켰으며 (구조조정본부) 재무팀에서 같은 날 거래한 것”이라는 대목을 증거로 인용한 것.
반면 이건희 회장 측은 “당시 이학수 부회장의 조서 내용은 이후 원래 진술 취지가 그것이 아니었던 것으로 드러나 이후 정정됐다. 김인주 사장의 진술에서는 법인의 차명은 있을 수 없다고 답했다”며 “삼성생명 주식의 실 소유자는 에버랜드이며 매수자금 역시 에버랜드가 지급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맹희 전 회장 측이 진술 내용 중 유리한 대목만을 발췌해 인용했다는 설명이다. 또한 차명주식과 상속재산의 동일성 여부는 특정인의 진술에 의존해서만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덧붙였다.
결국 이학수 전 부회장의 특검 진술 내용에 대해선 재판부에서도 ‘입증 자료로 부족하다’는 판단을 내려, 삼성생명 차명주식의 실소유주가 이건희 회장이었는지에 대해 이맹희 전 회장 측은 추가 입증 근거를 찾아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 차명재산 전체규모 4조 5000억 원?
이번 공판에서는 삼성 특검 당시 확인된 이건희 회장의 차명재산 총규모가 4조 5368억 원(차명주식 삼성생명 2조 3119억 원, 삼성전자 1조 4558억 원, 삼성화재 951억 원, 삼성전기 683억 원, 삼성증권 627억 원, 삼성물산 456억 원, 삼성SDI 321억 원, 에스원 89억 원 등 4조 988억 원과 예금·채권 및 수표 4357억 원)에 달한다는 사실도 공개됐다.
여기에 이맹희 전 회장 측은 미술품 307억 원, 상품권 52억 원 등도 차명재산 내역으로 추가했다. 이맹희 전 회장 측은 “전체 차명 재산 중 미술품과 상품권 구입 대금 등 모두 359억 원을 개인적으로 소비한 것이 새로 밝혀졌다”며 “전체 차명계좌 규모를 고려할 때 이건희 회장 측이 무단으로 소비한 상속재산은 삼성특검 수사에서 밝혀진 것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추가로 증거조사를 통해 유산소송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또한 이 전 회장 측은 “특검 당시 피고 이건희 회장 스스로가 차명주식의 운용 원칙에 대해 ‘현상유지’하는 것이었다고 명백하게 주장했고, 외견상으로는 주식의 처분이나 명의변경을 해왔으나 실질은 명의수탁자 변경에 불과할 뿐 실질주주가 변경되었다고 볼 수 없다”며 특검 당시 이건희 회장 측 답변 내용을 살펴봐도 이맹희 전 회장 측 주장과 동일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반해 이건회 회장 측은 삼성전자 및 삼성생명 주식이 수많은 유·무상 증자와 제3차 매매를 거쳤기 때문에 상속개시 당시의 주식과 동일하다고 볼 수 없다는 반복된 주장을 펼쳤다. 먼저 삼성생명 주식의 경우 “2008년 실명 전환된 것 중 상속개시 당시의 차명주식은 4만 2000주에 불과하다”며 “이에 대해서만 청구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 삼성전자의 경우에도 “공개시장에서 수많은 제3자 매각이 이뤄진 데다 유·무상 증자가 22회나 이뤄졌기 때문에 상속개시 당시 차명주식 내역을 특정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 회장 측은 또한 “상속재산의 동일성 문제는 ‘경제적 동일성’이 아닌 ‘법적 동일성’으로 판단해야 하며 기존의 차명주식이 매각된 경우나 유·무상 증자가 이뤄진 경우 기존 주식과 신규 취득 주식 사이에는 법적 동일성이 인정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결국 차명주식의 실소유주가 이건희 회장이었는지, 이 차명재산이 상속재산과 동일한지 등 핵심 쟁점에 대한 논란은 이날도 종지부를 찍지 못했다. 삼성특검 자료를 통해 이맹희 전 회장 측은 이건희 회장의 차명재산 총액만을 확인한 셈이다.
# 대상재산의 법리 적용 팽팽한 이견
지난 4차 공판에서 새로이 등장한 ‘대상재산’의 개념에 대한 법리적 공방은 이번 공판에서도 이어졌다. 대상재산이란 상속재산을 팔아서 취득한 재산을 일컫는 말. 이맹희 전 회장 측은 “상속재산이 매각, 수용 등으로 인해 변형되었거나 그 대가로 다른 재산을 취득한 대상재산은 상속재산과 동일하게 상속재산분할 및 상속회복 청구의 대상이 된다”고 주장했다. 즉 차명주식 형태로 관리돼 온 이병철 선대회장의 상속재산은 명의가 변경되거나 주식수가 달라져도 실질주주가 동일하고 대상재산에 해당되므로 ‘상속재산과의 동일성’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 측에서는 “이번 사건이 ‘상속재산분할’이 아닌 ‘상속회복청구’에 해당되기 때문에 상속재산분할에서 논의되는 ‘대상재산의 법리’가 적용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상속재산분할은 상속재산의 귀속이 확정된 상태에서 분할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므로 상속회복청구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설명. 이 회장 측은 “민법의 대원칙상 소유물이 제3자에게 처분된 경우에는 부당이득반환이나 불법행위책임만 물을 수 있을 뿐 그 처분대금으로 다시 취득한 재산에 대해 반환청구를 하는 것은 인정될 수 없고 이번 사건과 같은 상속회복청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는 주장을 폈다.
여기에 이 회장 측은 차명주식에 개인 재산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해, 이맹희 전 회장 측으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했다. 이 전 회장 측 김남근 변호사는 공판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이건희 회장이 개인 돈을 차명으로 관리했다면 비자금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이건희 회장 비자금’ 문제가 향후 공판에서 새로운 쟁점이 될 가능성을 예고했다. 이에 대해 이 회장 측 윤제윤 변호사는 “이익배당금과 같은 개인 돈을 투자한 것이므로 비자금과는 다르다”고 반박했다.
결국 이번 공판에서는 주목받던 삼성특검 자료가 처음으로 공개됐지만, 어느 편으로도 힘을 실어주지 못한 모양새다. 다만 이맹희 전 회장 측은 특검자료를 활용하고도 소송의 주도권을 가지고 오지 못했다는 점에서 다소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전 회장 역시 삼성특검 당시엔 차명주식이 상속재산이라고 주장했다가, 개인재산이 포함돼 있다고 말을 바꾼 셈이어서 비자금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논란거리를 제공했다.
또한 담당재판부는 다음 공판에서 상속개시 전후인 1986년 말~1987년 말 사이의 삼성전자 주식거래 내역과 특검 당시 삼성 전략기획실 최진원·김상규 부장의 진술 기록을 추가 증거로 제출할 것을 요청했다.
두 사람은 이건희 회장의 재산을 관리한 전용배 전략기획실 상무의 지시를 받아 차명계좌 관리를 담당한 관재파트의 실무자들. 차명재산의 실제 관리를 했던 이들인 만큼 두 사람의 진술기록이 공개될 경우 새로운 논란을 낳을 가능성도 높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
삼성특검 기록 송부 실랑이
‘이학수 진술’이 뭐기에…
5차 공판에서도 양측 변호인들 사이의 신경전이 만만치 않았다. 양측의 언쟁으로 법정은 잠시 소란스러워지기도 했다.
먼저 이건희 회장 측은 검찰에서 보낸 특검기록에 신청하지 않았던 이학수 전 부회장의 진술조서가 포함되어 있는 것에 대해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이 회장 측은 “소송 촉진을 위해 원고들의 삼성특검 기록 문서송부촉탁신청에 대해 광범위하게 동의해 주었음에도 이학수 부회장의 피의자신문조서뿐 아니라 우리가 동의하지 않은 수사 자료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며 “이에 대해 검찰에 항의하고 재판부에도 사정을 알렸지만 원고는 이 자료들을 마치 대단한 증거라도 새로 나온 것인 양 주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신청하지도 않은 자료인데다 원고가 원하는 유리한 조서(이학수 전 부회장의 진술)가 포함되어 있는 게 우연이라고 보기엔 놀랍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맹희 전 회장 측은 “피고 측은 이미 특검기록을 다 갖고 있으면서 없다고 얘기한다. 피고는 검찰에서 보내지 않는 조서 내용을 증거로 냈다”며 “(이학수 전 부회장 진술 부분은) 당연히 신청을 했고 피고 측이 동의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해 검찰이 판단해 보낸 것”이라고 맞받았다. 매 공판마다 되풀이되는 언쟁에 담당 재판부 서창원 부장판사의 중재가 계속 이어지는 광경이 연출되고 있다. [조]
‘이학수 진술’이 뭐기에…
▲ 이학수 |
먼저 이건희 회장 측은 검찰에서 보낸 특검기록에 신청하지 않았던 이학수 전 부회장의 진술조서가 포함되어 있는 것에 대해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이 회장 측은 “소송 촉진을 위해 원고들의 삼성특검 기록 문서송부촉탁신청에 대해 광범위하게 동의해 주었음에도 이학수 부회장의 피의자신문조서뿐 아니라 우리가 동의하지 않은 수사 자료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며 “이에 대해 검찰에 항의하고 재판부에도 사정을 알렸지만 원고는 이 자료들을 마치 대단한 증거라도 새로 나온 것인 양 주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신청하지도 않은 자료인데다 원고가 원하는 유리한 조서(이학수 전 부회장의 진술)가 포함되어 있는 게 우연이라고 보기엔 놀랍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맹희 전 회장 측은 “피고 측은 이미 특검기록을 다 갖고 있으면서 없다고 얘기한다. 피고는 검찰에서 보내지 않는 조서 내용을 증거로 냈다”며 “(이학수 전 부회장 진술 부분은) 당연히 신청을 했고 피고 측이 동의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해 검찰이 판단해 보낸 것”이라고 맞받았다. 매 공판마다 되풀이되는 언쟁에 담당 재판부 서창원 부장판사의 중재가 계속 이어지는 광경이 연출되고 있다.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