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회 해체 ‘YS 프로젝트’ 육영수 저격 ‘암살자들’ 제작 눈길…다큐 ‘길 위의 김대중’ 후속편 기획 공표
현대사의 주요 사건을 정공법으로 다루면서 1300만 관객 흥행에 성공한 ‘서울의 봄’이 대중문화 콘텐츠 흐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알고 있지만 사실은 잘 모르는 현대사의 주요 순간에 주목해 이를 극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잇따른다. ‘서울의 봄’처럼 역사적인 사건을 파고드는 영화부터 미스터리로 남은 사건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시도도 이어진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시대를 바꾼 현대사의 순간을 담으려는 기획도 있다. 모두 ‘서울의 봄’ 성공이 만들어낸 열기다.
#‘서울의 봄’ 제작사 차기작은?
현대사를 다룬 작품들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영화는 ‘YS 프로젝트’(가제)다. 1993년 김영삼(YS) 정부가 군부 사조직인 하나회를 전격적으로 해체한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이다. ‘서울의 봄’을 만든 제작사인 영화사 하이브미디어코프의 차기작으로, ‘서울의 봄’에서 이어지는 시대를 다루는 만큼 일정 부분 후속편의 성격도 지닌다.
전두환이 이끈 하나회는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이후부터 이듬해 봄까지 형성된 민주화에 대한 기대감을 짓밟고 정권을 탈취했다. 하나회를 통해 전두환은 11대 대통령에 취임하고, 그 권력은 1987년 노태우의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진다. 불법으로 권력을 찬탈한 이들이 이후로도 권세를 누린 이 같은 결과는 ‘서울의 봄’을 본 관객들이 가장 큰 분노를 드러낸 대목이다. 관객의 분노를 ‘YS 프로젝트’가 일정 부분 해소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영화는 막강한 힘을 과시한 하나회 세력을 대통령 취임 직후 일거에 해체한 김영삼 정부의 이야기를 다룬다. 다만 널리 알려진 역사적인 사실보다 실제로 하나회 해체 작전을 기민하게 주도한 ‘보이지 않은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시나리오는 ‘서울의 봄’ 초고를 쓴 홍인표 작가가 집필하고 있다.
육영수 여사의 저격 사건을 다룬 영화도 나온다. ‘암살자들’이라는 제목의 작품이다. 10·26 사태, 5·18 민주화운동이 비교적 자주 영화와 드라마로 다뤄진 반면 육영수 여사의 저격을 극화된 작품은 지금까지 없었다는 점에서 희소성을 갖는다. 재일교포 2세인 문세광이 1974년 8월 15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린 광복절 행사에서 영부인을 저격한 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으로 알려졌다.
‘암살자들’은 문세광을 둘러싼 풀리지 않은 의혹도 꺼낸다. 저격 당시 문세광은 4발을 발사했지만 현장 주변에서는 4발 이상의 총성이 들렸다는 증언과 기록들이 남아있다. 영화는 이에 대한 의문을 함께 제기한다. 연출은 ‘천문’ ‘봄날은 간다’의 허진호 감독이 맡았다.
#‘역사가 스포일러’ 제약 넘어라
현대사를 다루는 작품들은 모두 ‘역사가 스포일러’라는 제약을 마주하게 된다. 역사를 통해 이미 알려진 사실들, 그 이후의 일들까지 전부 공개된 내용을 극화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접근과 시선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1979년 12·12 군사반란을 다룬 ‘서울의 봄’이 뜨겁게 사랑받은 이유 역시 비슷하다. 널리 알려진 역사를 다루면서도 작품의 시간적 배경을 하룻밤으로 제한하고 사건이 일어난 상황을 긴박하게 그린 시도가 성공의 기폭제가 됐다. 이를 통해 ‘역사가 스포일러’라는 한계를 가뿐하게 뛰어넘었다.
때문에 제작진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그 인물을 통해 현대사와 그에 얽힌 실존 인물들을 바라보도록 설계하고 이에 자연스럽게 관객이 몰입도록 하는 방식이다. 현대사 소재 작품들의 공통된 특징이기도 하다.
‘광해, 왕이 된 남자’, ‘7년의 밤’의 추창민 감독이 연출한 영화 ‘행복의 나라’도 마찬가지다. 1979년 10·26 사태 이후의 상황을 그린 이 영화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그를 변호한 변호사의 이야기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김재규 부장도 주요한 인물로 등장하지만, 이야기를 주도하는 화자는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변호사다. 배우 조정석이 연기했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나 제작 방향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전두환의 언론 탄압 정책인 ‘K공작 계획’도 영화화가 진행 중이다. 전두환이 1980년 시행한 언론 회유 정책에 휘말린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이다.
송강호와 변요한이 주연한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삼식이 삼촌’ 역시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를 다룬 시대극이다. ‘서울의 봄’이나 ‘행복의 나라’처럼 특정한 현대사의 주요 사건을 다루지 않지만, 이승만 정권의 부패와 이어진 부정선거의 혼란기를 지나 5·16 군사정변에 이르는 시대상을 배경으로 그에 얽힌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1950년대부터 1960년대 격변기 한국 사회를 다루면서 당시 일어난 주요한 사건들로부터 주인공들이 어떤 영향을 받는지 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큐멘터리는 영화나 드라마보다 직접적으로 현대사의 생생한 순간을 담는다. 1월 10일 개봉해 10만 관객을 동원한 다큐멘터리 영화 ‘길위에 김대중’이 대표적이다. ‘서울의 봄’이 촉발한 현대사 영화를 향한 관심이 ‘길위에 김대중’으로 옮겨 붙으면서 다큐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개봉 보름 만에 10만 명을 돌파했다. 눈에 띄는 성과다.
영화는 전남 신안 출신으로 목포상고를 나와 사업을 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치에 뜻을 품고 상경해 군사독재에 항거한 정치 역정을 다루고 있다. 12·12부터 5·18을 거쳐 1987년 6·29 선언이 나오기까지, 현대사를 관통한 김대중의 삶을 조명하면서 그 자체로 ‘현대사 교과서’의 역할까지 한다.
관객의 관심이 고조되자 제작진은 후속편 기획도 일찌감치 공표했다. 연출을 맡은 민환기 감독은 “1987년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치인으로 어떤 일을 하고, 대통령이 되기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후속편에서 본격적으로 다룰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