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속 질풍노도 소년이 칠전팔기 ‘짱구’가 되기까지…“청춘에게 공감과 위로 되길”
배우 정우(45)는 이번 작품에서 각본과 연출, 주연을 모두 맡아 단역을 전전하며 수차례 오디션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던 자신의 무명 시절 도전의 역사를 들려준다. 도전은 계속 좌절되고, 사랑은 늘 어렵기만 한 그 시절 짱구가 마지막까지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이야기를 솔직하고 담담하게 풀어내면서도 코믹한 리듬을 잊지 않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이 시대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짱구의 공감대를 전달하고 싶다는 배우 겸 감독 정우를 만나 영화 ‘짱구’의 제작기를 들었다.

“예전부터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많이 주셨는데 아무래도 작품은 다 들어가는 때가 있는 것 같다. 이 작품도 분명 운명적인 어떤 때를 만난 게 아닌가 싶다. 이 작품을 보실 때 감독 정우가 연출했다기보다 배우 정우가 만든 작품으로 봐주시면 더 좋을 것 같다. 현장에서는 저를 ‘감독님’이라고 부르시는 분도 계셨고,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분도, ‘오빠, 형’ 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다들 그냥 편한 대로 부르셨다(웃음).”
―배우 정우는 연기에 매우 예민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예민함이 감독 정우에게도 있다고 보나.
“저도 제가 어떻게 (감독으로서) 작업할지 굉장히 궁금했는데, 이번 작업 과정은 힘든 것보다 즐거웠던 기억이 더 크다. 사실 제가 작품을 대하는 텐션이 좀 달라진 것 같기도 하다. 예전엔 좀 깊이 몰두하고, 섬세하게 접근했다면 지금은 그냥 그 과정 자체를 즐기려고 하는 식이다. 그 변화엔 아마 이번 작품 속 짱구 캐릭터의 영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유머가 있는 작품이다 보니 현장이 좀 더 릴랙스하고, 유쾌해야 보시는 분들도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연기가 나오지 않나. 함께 출연한 다른 배우들도 훌륭히 캐릭터를 소화해 내 주셔서 술술 잘 풀리는 현장이었다. 그 덕을 많이 봤다.”
―부산을 배경으로 한 20대 짱구의 이야기이다 보니, 짱구의 고등학교 시절을 그린 2009년 작품 ‘바람’이 생각날 수밖에 없다. 둘 다 성장을 그리는데 어떤 차이점을 두고자 했나.
“저도 요즘도 TV 채널 돌리다가 ‘바람’이 방송되고 있으면 또 보게 되더라(웃음). 그 영화를 보고 있자면 제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난다. 제 마음을 두드리는 게 아버지라는 단어다. 이번 영화에서 과연 괜찮은 어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데, 지금은 아빠가 된 제게 ‘아빠’라는 단어는 맞는 거 같지만 ‘아버지’라는 단어가 과연 어울리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차이가 진짜 ‘어른’이란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 같다. 주민등록증만 나왔다고 어른일까? 성인이 됐다고 해서 곧 어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많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작품도 어떤 결과물 자체가 아닌, 그것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더 의미 있게 생각하자고 접근했다.”

“‘바람’과 다른 역할로 특별 출연을 제안을 드린 게 있었는데 성사되지 못했다. 사실 ‘바람’ 캐릭터를 답습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도 있다. 그냥 반복적으로 출연한다고 느낄 만한 캐릭터의 연장선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정수정 배우가 연기한 민희는 짱구의 여자친구로, 그에게 큰 상처를 주면서도 동시에 인간으로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다. 관객들이 민희를 어떻게 바라보길 바라며 설정했는지.
“모두가 공감할 만한 캐릭터를 만들되, 그 캐릭터에 대한 해석의 여지를 열어두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누군가의 ‘엑스’(전 연인)인데 그조차도 짱구의 시선으로 바라보니까 베일에 싸인 느낌이 있다. 반면 민희의 시선으로 바라봤을 때는 분명히 민희에게도 자신만의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개인적인 사정이나 그 시기에 겪어야 했던 청춘의 고민 같은 것들. 그런 시점의 차이를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 속 ‘짱구’와 새내기 배우였던 정우는 모두 많은 도전과 탈락의 과정을 겪어야 했다. 그랬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작품을 만들고 출연할 배우를 선택할 수 있게 됐다. 그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제가 배우 분들을 모실 수 있는 입장이 됐지만 모든 배우들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소위 말해서 인지도나 스타성 같은 것에 치우치는 게 아니라 이 캐릭터와 얼마나 부합하는지가 가장 중요했다. 그래서 캐스팅을 고려할 때 제일 첫 번째는 연기력이었다. 저희 작품에 출연하는 단역 배우들도 오디션을 1차부터 4차까지 봤다. 연출부와 함께 배우 프로필을 한 4000장 정도 봤는데, 캐릭터에 배우를 맞추는 게 아니라 이 캐릭터에 잘 맞는 배우 분들을 모시고자 했다. 현봉식 배우와 신승호 배우, 정수정 배우 등 모두가 그런 바람에 잘 맞춰서 아주 훌륭히 잘 소화해 내 주셨다.”
―극 중 짱구가 몇 번이고 오디션에서 고배를 마시는 장면에는 실패를 거듭할수록 점점 위축돼 가는 청춘들의 모습이 덧씌워져 보인다. 먼저 이 길을 걸어본 선배로서, 그 시절을 되짚어 보며 지금의 ‘짱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도 실제로 오디션 현장에서 ‘당신은 왜 연기를 합니까’라는 질문을 꽤 받은 적이 있다. 사실 그 시절 저는 막연히 배우를 꿈꾸면서 단순하게 ‘그냥 좋아서, 이 일이 하고 싶어서’ 라는 답 외에 구체적으로 어떤 사연이 있다는 명확하고도 분명한 설명을 하기 쉽지 않았다. 10년 무명 생활 동안 무수히 많은 오디션을 보면서 상처받은 적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배우라는 직업은 마지막이 해피엔딩일지, 새드엔딩일지 아무도 모르지 않나. 미래를 알 수 없는 길을 걸어가며 상처도 많이 받고 억울하고 서럽기도 했지만 그런 게 잘 쌓여서 배우 생활의 자양분이 되는 것 같다. 어렵고 곤란한 상황이 생긴다더라도 뭐 어떡하나. 거기서 좌절하면 지는 거니까 잘 헤쳐 나가야지(웃음). 그런 것들을 통해 ‘난 이랬던 적이 있었어. 이걸 보시는 관객분들은 어떤가요?’라고 공감하고 또 위로해주고 싶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