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말리는 팬들 사랑…난 MLS의 한류스타
▲ 이영표가 MLS에 한류 바람을 일으키며 ‘제2의 전성기’로 보내고 있다. 홍순국 사진전문기자 |
▲ 홍순국 사진전문기자 |
―어느새 시즌 막바지에 다다랐다. 밴쿠버 화이트캡스 선수들 중 가장 나이 많은 선수가 이영표 선수인데, 시즌 개막 후 27게임 연속 풀타임 출장을 했다. 체력적으로 힘든 시간들이었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28게임 출장을 앞두고 마틴 레니 감독이 열흘간 특별 휴가를 주셨다. 휴가 동안에는 훈련장에도 나오지 말고 미국으로 여행을 가든,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오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밴쿠버에서 가까운 휘슬러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감독이 나랑 한두 살밖에 나이 차이가 안 난다. 그래서인지 자주 대화를 나누려 하고 고참 선수에 대한 배려가 많다. 내가 감독 복이 많은 것 같다(웃음).
―MLS는 주로 미국 원정 경기로 이뤄지는데 그때마다 이영표 선수를 보려는 한인들이 경기장을 많이 찾는다고 들었다.
▲그래서 신이 나기도 하지만 체력적으로 힘들다. 그분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뛰어 다녔으니까. 미국에 온 이유는 축구를 하기보단 축구 시스템을 배우러 왔다. 그런데 막상 와 보니까 배우고 뭐고 할 여유가 없다. 플래카드 내걸고 내 이름을 불러주는 한인들 때문에 축구선수란 직업에 더 충실해야 한다.
―그래도 MLS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관심 있게 지켜봤을 것 같은데….
▲MLS는 메이저리그 야구, 농구, 미식축구 등에서 축적된 다양한 노하우들을 벤치마킹해서 MLS만의 장점을 부각시키는 데 탁월한 수완을 발휘하고 있다. 사실 야구, 농구 등에 막혀 축구는 스포츠 시장을 뚫고 들어가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더라. 한 가지 감동한 부분은 구단은 물론이고 MLS 사무국에서 시즌을 앞두고 구단을 방문하며 선수들에게 다양한 교육을 진행한다는 사실이다. 그중에는 선수들이 은퇴 후 어떤 직업을 택해야 하는지, 어떤 진로를 택할 수 있는지에 대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준다. 선수들의 은퇴 후 생활까지 책임지려는 MLS의 선수 사랑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지난 4월 콜럼버스전에서는 MLS 데뷔 8경기 만에 첫 골을 터트리기도 했다. 결국 그 골이 결승골이 돼 밴쿠버가 1-0으로 이기지 않았나.
▲내가 골과는 큰 인연이 없는 편인데, 운 좋게 프리킥이 성공하는 바람에 데뷔골을 넣을 수 있었다. 콜럼버스전에서의 골은 데뷔골이라는 의미보다 결승골이었다는 데 더 큰 기쁨이 있었다. 우리 팀이 올 시즌 창단 후 최초로 플레이오프 진출을 노리고 있기 때문에 승점 3점을 보태는 게 정말 중요했고, 그걸 내가 해냈다는 게 행복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성공시킨 골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골은 어떤 경기에서 넣은 골인가.
▲해외 생활 처음이었던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에서 최고 라이벌 아약스랑 맞붙었을 때 1골 1어시스트를 성공시켜 2-0 승리를 이끈 적이 있었다. 그 골이 왜 기억에 남느냐 하면 사실 그 전까지만 해도 난 팀 내에서 ‘왕따’나 마찬가지였다. (박)지성이랑 나를 에인트호벤 선수들이 동료로 인정해주지 않았고, 그저 ‘히딩크 감독이 데려 온 선수’라는 시선만 가질 뿐 공을 제대로 주지 않는 등 그들 세계에서 배제시키려 했다. 더욱이 난 팀에 합류하자마자 계속 출전을 하게 됐는데, 그로 인해 나랑 포지션이 겹친 선수들은 더더욱 나를 싫어했다. 그런데 그 경기 이후, 그 골 이후로, 선수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비로소 날, 내 실력을 인정해 준 것이다. 에인트호벤 입단 후 6개월 가량을 ‘왕따’로 생활하다가 아약스전 이후부터는 선수들이 나한테 말도 붙이고 패스도 잘해주는 등 마음의 문을 여는 걸 느꼈다.
―박지성은 어떤 편이었나.
▲지성이는 나보다 더 힘들었을 것이다. 난 그래도 게임을 계속 뛰었지만, 지성이는 경기에 나가지도 못하고 ‘왕따’였으니까. 히딩크 감독이 경기 중에 지성이를 교체 멤버로 쓰려고 워밍업을 시키면 관중들이 ‘우~’하는 소리를 내면서 벤치로 돌아가라고 소리쳤다. 우리가 거기서 생존하는 방법은 기회가 왔을 때 실력으로 증명해 보이는 것뿐이었다. 난 경기 때보다 훈련 중에 실수하지 않으려고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훈련 끝나면 탈진 상태가 될 정도로 긴장했고 흠 잡히지 않으려고 발버둥쳤다. 그렇게 훈련을 한 게 나중에는 내 실력이 부쩍 성장하게 된 원인으로 작용하더라.
―지금 소속돼 있는 화이트캡스 선수들이 이영표 선수를 ‘형’이라고 부른다고 들었다. 사실인가.
▲하하, 내 이름이 부르기 어려우니까 선수들이 나한테 뭐라고 부르는 게 좋으냐고 물어보더라. 그래서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그리고 그 ‘형’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설명해줬다. ‘respect’의 의미라고^^. 그런데 ‘형’도 발음이 어려우니까 ‘ ’이라고 부른다.
―혹시 런던올림픽이 진행되는 동안 올림픽축구대표팀 경기를 봤나?
▲‘당근’이다. 캐나다에선 중계 없이 화면만 나오는 채널이 있었다. 해설 없이 경기 장면만 봤는데, 압권은 영국팀과의 8강전이었다. 축구가 개인의 능력을 넘어서 조직력으로 승부를 볼 수 있다는 걸 한국대표팀이 증명해 보였다. 몸값만 놓고 보면 영국팀 선수들 자체는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페널티킥 2개를 주고도 우리가 이겼다. 한국이 올림픽 동안 뛰어난 경기력을 선보이는 데에는 2~3년 동안 긴 호흡을 갖고 조직력을 다지기 위해 홍명보 감독님을 비롯해 코칭스태프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홍명보 감독의 리더십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들었다. 어떤 부분이 그랬는지 궁금하다.
▲아무리 훈련을 잘하고 전술도 좋고 정신력이 강해도 그걸 이끌어 가는 사람의 리더십이 없다면 세 가지가 조화를 이루지 못할 것이다. 감독이 말할 때, 감독이 지시할 때 선수들이 그걸 믿고 따라갈 수 있게끔 만드는 게 리더십이다. 그런데 홍 감독님은 선수들을 그라운드에서 춤추게 만드셨다. 축구장을 ‘놀이터’로 만들어주고 선수들이 돋보이게끔 해줬다. 그런 리더십은 감독님이라고 다 갖추고 있는 게 아니다.
―현재 월드컵대표팀에는 이영표 선수를 대체할 만한 선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내 생각에는 국가대표로 뛸 정도의 선수라면 이미 실력은 뛰어난 선수다. 단, 오른쪽 풀백에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주변 포지션을 뛰는 선수들이 오른쪽 풀백에서 뛰는 선수를 도와주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 수비수들은 위치 선정이 굉장히 중요하다. 아무리 뛰어난 공격수라고 해도 상대 수비수들이 좋은 위치를 선점하고 있거나 수비수들을 서로 커버해주면서 방어한다면 그 벽을 뚫고 나오기가 힘들다. 지금 대표팀은 미드필더, 센터백, 심지어 윙 포지션의 선수들이 오른쪽 풀백 선수를 도와주지 못하는 문제가 심각하다.
―박지성이 맨유를 떠나 2부리그 강등을 걱정해야 하는 QPR로 이적했다. 박지성의 선택을 통해 느낀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박지성 답다고 생각했다. 밖에서 보는 박지성은 감히, 어느 누구도 (한국 선수들 중) 따라갈 수 없는 뛰어난 실력을 가진 선수다. 그런 선수가 하위권 팀을 선택했다는 게 무슨 문제가 되겠나. 그렇다고 해서 지성이의 명성에 흠이 가진 않는다. 어느 팀에서 뛰든 인정을 받고 있기 때문에. 난 지성이 다운 선택을 했다고 믿었다.
▲ 이영표가 16일 FC댈러스와의 경기를 마치고 상의를 탈의한 채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홍순국 사진전문기자 |
▲실제로는 1년+1년 옵션 계약이다. 즉 올 시즌이 끝나면 구단이, 또 내가 서로 원한다면 1년 더 머무를 수 있다. 당연히 팀에선 내년 시즌에도 뛰어줄 것을 원한다. 그런데 아직 내가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축구보다는 공부를 하고 싶고, 공부를 하려면 선수 생활을 그만둬야 제대로 된 과정을 밟을 수 있기에 지금도 고민 중이다. 정확히 표현해서 ‘50대50’이다. 아마도 시즌 끝나봐야 향후 진로를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FC댈러스 경기를 마치고 그라운드를 빠져나온 이영표 앞에는 200여 명의 팬들이 그의 사인을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대부분 한인들이었다. 이영표는 일일이 사인을 해주고 사진 촬영을 하며 자신을 보러 온 팬들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그 장면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사람이 옆에 서 있었다. 바로 화이트캡스 홍보담당자였다. 그는 이영표를 가리켜 ‘록스타’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댈러스=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