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안부 주관 사업 예산 국회통과 못 해…김동연 지사 “정부가 손놓은 책임 경기도가 시작하겠다”
어린 형제는 늘 배가 고팠다. 선감학원은 충분한 배급이 주어지지 않았다. 형제는 배가 고파 쥐와 뱀까지 잡아먹었다. 매일 아침 강제노역이 시작됐고 어두워지면 끝났다. 밤에는 폭력에 시달렸다. 결국 쌍둥이 형은 선감학원에 들어온 지 1년이 안 돼 숨졌다. 형은 배가 고파 담요를 뜯어먹다 죽었다.
부모나 연고자가 있는 소년이 3분의 2가량 됐지만 선감도를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소년들은 바다를 헤엄쳐 선감도에서 탈출하려다 물에 빠져 죽기도 했다.
선감학원은 일제강점기인 1942년부터 1982년까지 운영된 부랑아 수용시설이다. 선감학원은 부랑아 교화라는 명목으로 소년들을 수용하며 강제노역, 구타, 가혹행위 등을 저질렀다. 100명이 넘는 소년들이 폭행, 가혹행위 끝에 사망했고 암매장됐다.
폐원 이후에도 피해자들은 숨죽여 지냈다. 2000년대가 돼서야 방송을 통해 선감도의 참상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피해자들은 정부에 진상조사를 요청했고 폐원 40년이 지난 2022년 10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위)는 선감학원 사건을 ‘공권력에 의한 아동인권침해’로 결론 내렸다.
과거사위는 선감학원 운영 주체인 경기도와 위법적 부랑아 정책을 시행한 국가를 대상으로 선감학원 사건 피해자에 대한 지원 대책 마련, 희생자 유해발굴 등을 권고했다. 과거사위는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공동기자회견을 열어 선감학원의 핵심적인 주체인 국가가 유해발굴을 비롯한 진실규명을 주도하고 경기도는 협조하는 역할임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행정안전부가 주관하는 유해발굴 사업 예산이 지난해 말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는 등 국가 주도의 유해발굴이 진척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경기도는 직접 유해발굴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2월 13일 “경기도는 선감학원 희생자 유해 발굴을 직접 추진합니다. 정부가 손놓은 책임, 경기도가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김 지사는 “선감학원은 명백한 국가폭력이지만 정부는 진실화해위의 권고에도 그 책임을 방기했습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경기도가 나섭니다”라고 덧붙였다.
경기도는 13일 관련 예산 9억 원을 예비비로 긴급 편성했다고 밝혔다. 당장 오는 3월부터 약 1년 5개월간 발굴, 조사, 감식, 봉안 절차가 진행된다. 발굴 지역은 안산시 선감동 산37-1 총면적 2400㎡의 묘역이다. 약 114기의 선감학원 희생자 유해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과거사위는 2022년 9월과 2023년 10월 두 차례에 걸쳐 해당 묘역의 일부 분묘를 시굴해 희생자 유해로 추정되는 치아 278점과 고리, 단추 등 유품 33점을 발굴한 바 있다.
이외에도 경기도는 선감학원 사건 피해지원 대책으로 피해자 지원금과 의료지원을 포함해 선감학원 옛터 보존·활용 연구, 추모비 설치, 추모문화제 지원, 희생자 유해발굴 등에 예비비 포함 총 22억 5000만 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김동연 지사는 “희생자의 명예 회복과 상처 치유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전했다.
김창의 경인본부 기자 ilyo2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