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박민식 정진석 등 줄줄이 관람 후기 공개…나얼은 비판 댓글 쇄도에 인스타 댓글창 닫기도
‘1945년 해방 이후 남과 북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 왔다. 자유를 억압하고 인권을 탄압하는 공산주의 독재 국가 북한과 자유와 민주주의에 기초한 경제 번영과 선진국의 길로 들어선 대한민국. 두 나라는 같은 언어, 역사, 인종을 공유하면서 어떻게 극단적인 두 나라로 갈라졌을까? 지난 70년 역사를 통해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고 지켜내기 위해 노력했던 이승만 대통령과 건국1세대들의 희생과 투쟁을 조명한 작품.’
영화 ‘건국전쟁’의 작품 소개다. 어지간해선 흥행이 쉽지 않은 다큐멘터리 영화지만 개봉 9일 만에 10만 관객을 돌파하고 11일 만에 20만 관객을 돌파하더니 다시 하루 뒤인 12일째 30만 관객을 돌파했다. 설 연휴 대목을 타고 흥행세가 이어진 덕분이다. 2월 13일에는 누적 관객수가 38만 2154명을 기록하며 33만 관객의 ‘그대가 조국’을 넘어섰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흥행이 어려운 장르지만 그렇다고 흥행이 불가능한 장르도 아니다. ‘님아, 그강을 건너지 마오’가 480만 관객을 동원했고 ‘워낭소리’도 293만 명을 동원했다. 이 정도의 흥행까지는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아무래도 정치색이 짙은 다큐멘터리 영화인 까닭이다. 정치색이 짙은 영화는 같은 정치색을 가진 관객을 동원하는 데에는 유리하지만 반대의 정치색을 가진 관객까지 끌어들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선거판과 유사한 양상인데 다큐멘터리 영화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중간의 정치색을 가진 관객들까지 끌어 들여야 한다. 이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역시 ‘건국전쟁’의 흥행 동력도 정치권이 되고 있다. 집권 여당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SNS를 통한 관람 인증이 계속되면서 화제를 유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영화 ‘건국전쟁’에 대해 “우리나라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라고 얘기했다고 알려져 화제가 됐을 정도다.
설 연휴 마지막 날인 2월 12일에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유인촌 문화체육부 장관도 이 영화를 관람했다. 한 위원장은 ‘건국전쟁’ 출연진이기도 하다. 2023년 7월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한 위원장이 우리나라 경제 성장의 토대를 만든 대표적인 정부 정책으로 1950년 이승만 정부의 농지개혁을 꼽는 강연 장면이 영화에 삽입됐기 때문이다. 한 위원장 역시 ‘건국전쟁’ 관람 후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첫 반응이 “제가 나오던데요?”였다. 이어 한 위원장은 고 이승만 전 대통령을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오게 되는 데 굉장히 결정적인, 중요한 결정을 적시에 제대로 하신 분”이라고 밝히며 “한미상호방위조약과 농지개혁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한민국의 정치 지도자라면 외눈박이 역사관에 매몰되지 말고, 이승만의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객관적으로 바라보았으면 한다”는 글을 올렸고, 나경원 전 의원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번 영화를 통해 대한민국 영웅들에 대한 평가가 바로 서고 대한민국에 대한 자긍심을 공고히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 역시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4월 국회의원 선거야말로 ‘건국전쟁’이다. 대한민국의 체제 정통성과 헌법정신을 지키는 건곤일척의 승부처”라며 “4월 총선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국민의힘이 져서는 안 될 선거다. 성장이 멈춘 시대에서, 자본주의 4.0 시대로 가야할, 미래준비 패러다임의 건국전쟁”이라고 밝혔다
물론 반대의 흐름도 있다. 가수 나얼은 2월 12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건국전쟁’ 포스터 사진과 낡은 성경 사진을 게재하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그 안에 굳게 서고 다시는 속박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성경 구절을 적었다. 그렇지만 바로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나얼을 비판하는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나얼의 인스타그램에도 비판성 댓글이 이어졌다. 결국 나얼의 인스타그램 댓글창은 13일 오전에 닫혔다.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 가운데 ‘님아, 그강을 건너지 마오’와 ‘워낭소리’에 이은 흥행 3위는 정치 다큐멘터리 ‘노무현입니다’로 185만 관객을 동원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를 다룬 ‘그날, 바다’가 54만 관객을 동원했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갈등을 다룬 ‘그대가 조국’이 33만 관객을 동원했다. 이처럼 진보적인 색채의 정치 다큐멘터리 영화가 흥행에 성공을 거둬왔는데 이번엔 보수적인 색채의 ‘건국전쟁’이 흥행세를 타고 있다.
최근 흥행작으로는 2023년 5월 개봉해 11만 6959 관객을 동원한 ‘문재인입니다’와 2024년 1월 개봉해 12만 2768관객을 동원한 ‘길위에 김대중’ 등이 있다. 진보 정부를 이끈 문재인 전 대통령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다룬 정치 다큐멘터리 영화로 팬덤이 탄탄한 정치인을 다룬 영화다. 그리고 이번에는 고 이승만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건국전쟁’이 2월에 개봉해 이 두 영화를 압도하는 흥행 성적을 거두고 있다.
정진석 의원도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상영 열흘 만에 ‘건국전쟁’은 지난해 개봉된 ‘문재인입니다’, 지난달 개봉된 ‘길 위에 김대중’의 관객 수를 훌쩍 넘어섰다”고 의미를 부여했을 정도다. 그리고 이제 박스오피스 조작 의혹에 휘말려 경찰 수사 대상이 되기도 했던 ‘그대가 조국’까지 넘어 ‘그날, 바다’의 흥행 기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사실 정치색만으로 영화가 흥행할 순 없다. 영화 자체가 갖는 힘이 없다면 단지 정치색만으로 티켓을 끊는 관객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치색이 짙은 다큐멘터리 영화, 팬덤이 탄탄한 정치인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일지라도 흥행 성적은 1만 관객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7년 개봉한 ‘노무현입니다’는 185만 관객을 동원했지만 2019년 개봉한 ‘노무현과 바보들’은 2만 3371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