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집 막내아들’부터 ‘내 남편과 결혼해줘’까지…주인공의 복수와 성공 이야기에 대리 희열
‘재벌집 막내아들’과 ‘어게인 마이 라이프’를 거쳐 최근에는 ‘완벽한 결혼의 정석’에 이어 tvN ‘내 남편과 결혼해줘’가 방송되고 있다. 회귀물이라는 점에서 분명 유사하지만, 이 작품들은 디테일에 변화를 주며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 시작은 JTBC ‘재벌집 막내아들’이었다. 재벌가의 하수인으로 살던 주인공이 재벌가의 막내아들로 다시 태어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이 작품은 시청자들의 절대적 지지를 얻으며 최고 시청률 26.9%를 기록했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재벌’이 배경인 터라, ‘돈’이 중요한 매개물이 된다. 과연 향후 벌어질 일을 알고 있다면 우린 얼마나 많은 돈을 벌 수 있을까. 이 드라마는 그 궁금증을 해소해준다.
이를 테면 주인공 도준(송중기 분)은 서울대학교 합격 선물로 할아버지에게 분당 땅을 요구한다. 맹지나 다름없던 곳에 신도시가 건립되고 도준은 돈방석에 앉는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한국이 역대 최초로 4강까지 진출한다는 사실을 활용해 대대적인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IMF 구제금융이나 9·11 테러를 앞두고는 이를 회피하는 전략을 쓴다. 당연히 도준은 승승장구한다.
그 패턴은 현재 방송 중인 tvN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에서도 반복된다. 누군가는 “또 회귀물이냐”며 심드렁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5.2%로 시작한 시청률이 어느덧 13.1%(닐슨코리아 전국기준)까지 치솟으며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인기의 비결은 바로 '새로운 무언가'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주된 소재가 ‘돈’이었던 반면, ‘내 남편과 결혼해줘’의 핵심은 ‘인생’이다. 위암 판정을 받은 주인공 강지원(박민영 분)은 믿었던 남편이 자신의 ‘절친’과 불륜 관계라는 사실을 알게 된 직후 죽게 된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10년 전 상황이었다. 소심하고 당하기만 하던 강지원은 자신의 삶에 변화를 주기 시작한다. 훗날 남편이 되는 못된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항상 자신을 질투하고 해코지하던 친구와 남자친구를 연결시킨다. 그래서 제목이 ‘내 남편과 결혼해줘’다. 또한 기억하고 있던 주식 정보를 이용해 부를 축적한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재벌집 막내아들’과 ‘내 남편과 결혼해줘’의 구성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여기에 차별화된 포인트를 둔다. 내가 정해진 운명을 피해갈 수는 있지만 인간사 운명의 총량은 같다고 설정한다. 그래서 나에게 벌어지지 않은 일은 결국 다른 이에게 벌어지게 된다. 강지원이 특정 주식을 사서 돈을 벌면, 누군가는 그만큼 해당 주식을 팔아서 손해를 본다. 또한 강지원의 팔에 있던 화상 흉터는 결국 남자 주인공 유지혁(나인우 분)에게서 발견된다.
또한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2회차 인생을 사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닐 수 있음에 방점을 찍는다. 남녀 주인공인 강지원, 유지혁 모두 죽음의 순간 10년 전으로 돌아와 깨어났다. 두 사람이 아직 발표되지 않은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노래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순간은 짜릿하다.
회귀물의 핵심은 ‘복수’다. 주인공의 1회차 인생은 대부분 비루했다. 도준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재벌집의 개로 살아야 했다. 몸 바쳐 일했지만 그 끝에는 비참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는 지원도 매한가지다. 지고지순하게 남편을 위하고, 회사에서는 성실하게 일했지만 돌아온 것은 배신과 멸시뿐이었다.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벌을 받는 억울한 인생이다. 결국 그들 모두 2회차 인생에서는 그렇게 살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회귀물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주인공의 각성이다. 굴종하고 참는 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통상 인생은 이를 알게 되는 순간, 후회 속에서 마감된다. 하지만 회귀물은 “그래 다시 시작이야”를 외친다. “나를 막 대하는 사람한테 잘해 줄 필요가 없다는 걸 배웠다”라는 지원이 거절 의사를 분명히 하고, 더 이상 당하지 않고 대거리할 때 대중은 환호한다.
물론 이는 판타지다. 실제로 2회차 인생을 살 순 없다. 하지만 회귀물은 알려준다. 굳이 다시 태어나지 않더라도, 지금까지의 기억과 경험을 자양분 삼아 스스로 변하라고. 지금 내가 변하면, 내 주변이 변하고, 결국 내 인생이 변한다. 회귀물이 주는 진짜 교훈이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