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 가압류당한 테라 CFO 한창준 ‘입’ 열면 공동창업자 신현성 재판에도 영향 미칠 전망
일요신문 취재 결과, 서울남부지방법원은 2023년 12월 12일 한 씨 재산을 추징보전해 달라는 검찰 청구를 받아들였다. 추징보전액은 약 1924억 원이다. 추징보전은 피의자가 범죄로 얻은 것으로 의심되는 수익을 재판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임의로 처분하지 못하게 하는 조치다. 한 씨는 테라·루나 발행과 관련해 자본시장법 위반과 사기, 배임 등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한 씨 재산 추적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추징보전 결정문에 적시된 한 씨 재산은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에 있는 아파트가 유일했다. 한 씨는 권 씨와 함께 루나 폭락 사태 이후 해외 도피를 하던 중 이 아파트에 거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씨와 권 씨는 2023년 3월 세르비아 인접 국가인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 공항에서 아랍에미리트로 출국하려다가 위조 여권이 적발돼 현지 경찰에 체포됐다. 이후 한 씨는 여권 위조 혐의로 몬테네그로에서 징역 4월형에 처해졌다. 한 씨는 복역을 마친 뒤 지난 2월 6일 국내 송환됐다. 한 씨는 권 씨와 달리 미국에서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하지 않아 국내 송환이 먼저 결정됐다.
한 씨는 국내로 송환된 2월 6일 외교부를 상대로 제기했던 여권 반납 명령 처분 취소 소를 취하한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외교부는 해외에 머물며 수사에 불응한 권 씨, 한 씨 등 테라폼랩스 관계자에게 2022년 9월 여권 반납 명령을 내렸다. 이후 권 씨, 한 씨 등은 여권을 반납하지 않으면서 2022년 10월 여권 효력이 상실됐다. 그러자 한 씨는 같은 달 외교부를 상대로 여권 반납 명령 처분 취소 소를 제기했다. 집행 정지도 신청했다. 집행 정지 신청은 항고를 거쳐 2022년 11월 기각됐다.
한 씨는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지난 2월 8일 구속됐다. 검찰은 기소 전 최대 구속기간인 20일 이내에 한 씨를 기소할 전망이다. 테라·루나 관계자 중 검찰 구속영장 청구가 받아들여진 건 한 씨가 처음이다. 앞서 검찰은 2022~2023년 테라폼랩스 공동창업자 신현성 씨, 업무총괄팀장 유 아무개 씨 등 테라·루나 사태와 관련한 10여 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법원에 청구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검찰이 루나 폭락 사태 핵심 피의자인 한 씨 신병을 확보하면서 이미 진행 중인 신현성 씨 등에 대한 재판도 새로운 국면을 맞을지 주목된다. 신 씨 등에 대한 재판은 증인 신문 절차가 시작됐다. 하지만 증인들이 검찰 조사 때 핵심 진술을 번복하는 등 검찰 입장에선 혐의 입증에 난항을 겪고 있다.
한 씨 진술 내용에 주목하는 이유는 또 있다. 테라폼랩스 공동창업자 신현성 씨는 자신의 혐의는 부인하면서 권 씨, 한 씨 등은 루나 폭락에 책임이 있다는 입장이다. 자칫 한 씨가 '혼자 죽을 수 없다'는 식으로 신 씨에 대한 폭로전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특히 2018년 9월 지구전자결제(현 차이코퍼레이션) 설립에 관한 한 씨 진술에 관심이 모인다. 검찰은 테라 프로젝트 팀이 애초 구상했던 암호화폐를 결제 수단으로 하는 사업이 금융당국 규제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대안으로 시중은행 계좌 기반 간편결제 서비스 '차이'를 운영하기 위해 지구전자결제를 설립했다고 보고 있다.
또 검찰은 테라 프로젝트 팀이 차이 서비스에 암호화폐 테라가 활용되는 것처럼 허위 홍보해 투자자를 속였다고 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금융당국 규제 리스크를 피하고자 지구전자결제 대표이사나 주주로 권 씨나 신 씨가 아닌 한 씨를 내세웠다는 입장이다. 한 씨는 지구전자결제 설립 당시 1인 주주이자 대표이사였다.
반면 신현성 씨 등은 암호화폐를 이용한 결제 사업을 금지한 금융당국 규제가 없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프로젝트 초창기부터 암호화폐를 결제 수단으로 하는 사업 외에도 여러 방향성을 함께 검토했다는 입장이다. 허위 홍보 혐의 역시 전면 부인하고 있다.
지난 2월 5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진행된 테라 프로젝트 개발팀 출신 이 아무개 씨 증인 신문 과정에서도 지구전자결제 설립 과정이 쟁점이 됐다. 이날 이 씨는 한창준 씨가 지구전자결제 대표가 된 이유에 대해 "어느 날 보니 그렇게 돼 있었다"며 "가상자산과 관련되지 않은 사람을 내세우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생각된다"고 진술했다.
그러면서 이 씨는 지구전자결제가 전자금융업 등록 심사를 받을 당시 상황과 관련해 "블록체인의 '블'자도 꺼내지 말라는 주의령이 전체 직원에게 내려졌다"며 "심사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까 어디 가서도 언급하지 말라는 취지였다"고 증언했다.
또 이 씨는 "법률상으로 코인으로 결제하는 건 불가능하고 코인에 '코'자만 나와도 금융감독원 관련해서 모든 게 정지됐다는 이야기가 (내부에)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검찰이 "직원들은 어떻게 반응했나"라고 묻자 이 씨는 "상심했다. 원래 목표가 그거(코인 결제)였으니까"라며 "그러고는 해결책을 알아보자고 해서 많은 논의가 있었다"고 답했다.
그런데 이 씨는 검찰 조서상 핵심 진술을 번복하기도 했다. 이날 검찰은 차이코퍼레이션 모회사 투자 유치 자료에 담긴 내용에 대해 이 씨가 "명백히 거짓"이라고 진술한 조서를 제시했다. 테라 블록체인을 활용해 차이 이용자에게 할인 혜택을 제공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씨는 "그렇게 표현한 기억이 없다"며 "자료상으론 거짓이 아니다"라고 진술을 바꿨다.
또 이 씨는 "권도형, 신현성은 공동창업자로서 사업 모델을 이해했기 때문에 테라를 활용한 결제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검찰 조서 진술도 번복했다. 이날 이 씨는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다"며 "오히려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앞서 테라 홍보를 대가로 루나를 받아 배임수재 혐의로 기소된 티몬 전 대표 유 아무개 씨 재판에서도 증인이 검찰 조서상 핵심 진술을 번복했다. 지난 1월 26일 유 씨 재판 증인으로 나온 전 테라 홍보팀장 권 아무개 씨는 "차이는 테라가 활용될 수 없는, 전혀 관계없는 결제 시스템이었다는 것을 신현성과 권도형이 인식하고 있었다" "권도형, 신현성은 루나 가격이 떨어지면 호재가 되는 언론 보도를 하자고 말했다"는 검찰 조서상 진술을 번복했다.
권 씨는 "조사받을 당시 심적 압박이 심했다. 조사받는 내내 무서웠다"며 "지인들이 조언이 (검찰에) 협조해서 (조사를) 빨리 끝내라는 거여서 (검찰이) 제시한 많은 것들에 동조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검찰은 "변호인 동석 하에 조사했다. 증인(권 씨)이 피로하다고 호소하면 조사를 즉시 종료했다"며 "그렇게(동조를 구하는 식으로) 질문한 게 아니다. 증인이 직접 진술했다"고 반박했다.
'테라 사태' 권도형 송환국, 송환일정 모두 ‘오리무중’
테라·루나 폭락 사태에서 가장 핵심 피의자인 테라폼랩스 대표 권도형 씨가 언제 국내로 송환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2023년 12월까지만 해도 권 씨 송환은 임박한 분위기였다. 12월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은 권 씨 범죄인 인도를 승인하는 판결을 내렸다. 송환국을 특정하지는 않았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도 권 씨에 대한 범죄인 인도를 청구한 상황이었다.
이후 권 씨 송환국은 미국이 유력하다는 외신 보도가 이어졌다. 안드레이 밀로비치 몬테네그로 법무부 장관이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권 씨와 관련한 질문에 "미국은 우리의 주요 외교 정책 파트너"라고 말했다. 밀로비치 장관이 몬테네그로 주재 미국 대사를 만나 권 씨를 미국으로 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는 외신 보도도 있었다. 다만 권 씨 본인은 한국 송환을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 씨 송환 일정은 최근 다시 오리무중이 됐다. 지난 2월 8일 몬테네그로 항소법원이 권 씨에 대한 범죄인 인도 승인 판결을 파기환송하면서다. 항소법원은 "고등법원은 판결 과정에서 형사소송법을 위반했다"며 "범죄인 인도를 여러 나라에서 청구했을 때 송환국을 결정하는 기준 중 하나인 청구 순서를 법원이 판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권 씨 구금 기간은 2월 15일까지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권 씨 범죄인 인도 승인 판결은 이날까지 다시 나올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현지시간으로 2월 16일 오전까지 몬테네그로 법원은 권 씨와 관련해 아무런 발표를 하지 않았다.
몬테네그로 일각에선 루나 사태와 별개로 밀로이코 스파이치 총리 불법 정치차금 의혹과 관련해 권 씨를 조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몬테네그로 특별검찰청은 스파이치 총리가 암호화폐 친화 정책을 대가로 권 씨 등 암호화폐 관계자들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을 수사 중이다.
스파이치 총리는 2020년 12월부터 2022년 4월까지 몬테네그로 재무부 장관을 지냈다. 권 씨가 몬테네그로에서 붙잡힌 이후인 2023년 6월 몬테네그로 총선에서 스파이치 총리가 이끄는 '지금유럽'은 원내 1당으로 올라섰다. 이후 스파이치 총리는 2023년 10월 총리에 취임했다.
남경식 기자 ng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