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합’ 노력 통했다 이제 ‘쇄신’을 보여줘
▲ 문재인 후보가 10월 5일 여의도에 위치한 동화빌딩에서 시민캠프 1차 회의를 전국에 화상대화로 연결해 진행하고 있다. 제공=문재인 |
특히 추석 연휴 뒤 쏟아지기 시작한 여론조사 결과를 분석하는 대목에선 한층 목소리도 커졌고 표정도 밝아졌다.
“여론조사 결과가 오늘도 발표됐지만 대체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정체됐다고 보며,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상승세가 멈춰지면서 미미한 하락세에 접어든 것으로 분석한다. 반면 문재인 후보는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고, 때문에 문 후보와 우리의 노력이 국민의 호응을 받기 시작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앞으로도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이런 흐름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범야권 지지자들의 관심의 대상으로 문 후보가 상당히 주목받고 있으며, 지지층 결집이 시작됐다고 본다.”
그가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에는 확신과 자신감이 넘쳤다. 우 의원은 “선거캠프 구성을 조속히 마무리하고 이제 본격적인 어젠다 세팅, 정책적인 차별화에 힘쓰겠다”는 말로 간담회를 마쳤다.
지난 1987년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 자격으로 6월 민주항쟁을 맞았던 우 의원은 이른바 ‘모태 낙관론자’다. 6월 항쟁 당시의 엄혹한 분위기 속에 ‘가투’에 나섰을 때에도 그는 다소 실없는 농담으로 동료들의 긴장을 풀어주곤 했다고 한다.
이런 천성은 정치권 입문 뒤에도 그대로 이어져, 정치부 고참 기자들은 초년병들에게 “우상호 의원의 정세분석과 전망은 곧이곧대로 들어선 안 된다”고 주의를 주곤 했다.
이런 우 의원이었지만, 이날만큼은 그의 정세분석과 판단을 ‘희망사항’으로 치부할 수 없었다. 실제 여론조사 결과가 그의 말대로 나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추석 전 ‘과거사 인식 논란’으로 지지율 추락을 거듭했던 박근혜 후보는 ‘과거사 사과’를 기점으로 하락세를 멈춘 것으로 나타났고, 9월 19일 출마선언 후 거센 상승세를 보였던 안철수 후보는 추석 직전 잇따른 검증 공세 속에 상승세가 꺾인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문재인 후보는 아직 박 후보와 안 후보에겐 밀리지만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차범위 이내이긴 하지만 심지어 박근혜 후보와의 가상 양자대결에서 문 후보가 앞서는 결과도 속출하고 있다. 아산정책연구원-리서치앤리서치 조사의 경우 추석 이전(9월25~27일 조사)에는 박 후보(47.6%)가 문 후보(42.4%)에 5.2%포인트 앞섰지만 추석 이후(9월29일~10월1일 조사)엔 문 후보가 3.6%포인트(문 후보 46.2%, 박 후보 42.6%)차로 뒤집은 것으로 나왔다. 한국일보-한국리서치 조사(10월2일 조사)에서도 문 후보(47.2%)가 박 후보(43.7%)를 3.5%포인트 앞섰고, 리얼미터 조사(10월2일 조사)에서도 문 후보(48.4%)가 박 후보(45.5%)를 2.9%포인트 앞섰다.
안철수 후보의 출마선언 이후 존재감이 약해지면서 ‘박근혜 대 안철수’의 2강 싸움을 지켜봐야 했던 문 후보가 상승세를 탄 가장 큰 이유는 범야권 내 경쟁자인 안 후보가 여권과 언론의 파상적인 검증 공세에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안 후보 본인과 부인의 다운계약서 작성 논란, 논문 재탕 논란 등이 이어지면서 그동안 잠복한 채 드러나지 않았던 ‘정치 신인 안철수에 대한 불안감’이 여론에 반영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정치평론가는 “불거진 의혹이 대단한 건 없지만 별로 문제의 소지가 없을 줄 알았던 안철수라는 인물도 털면 먼지가 나오는 사람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근혜 후보를 잡을 필승카드로 여겨졌던 안철수 후보가 ‘질 수도 있는 후보’로 여겨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는 추석 연휴 기간 동안 지역구에 머물렀던 호남 지역 민주당 의원들의 전언과도 맥을 같이 한다. 민주당 내에서 비문(비문재인) 진영으로 분류되는 전북 지역 한 의원은 “호남의 바닥 여론이 ‘안철수 8, 문재인 2’라는 얘기까지 들렸었는데, 이번에 막상 지역 인사들을 두루 만나보니 좀 다른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대체적으로 안 후보 지지자가 더 많은 게 사실이었지만, 그들도 얘기를 해 보면 ‘문재인으로 박근혜를 이길 수만 있다면 이왕이면 민주당 후보를 찍겠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며 “호남 민심이 안 후보 쪽으로 정리됐다기보다는 필승 카드를 찾다 보니 안 후보 지지율이 높게 나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 문재인 후보는 10월 4일 영화인과의 대화에 참석했다. 제공=문재인 |
문 후보가 ‘탕평 인사’, ‘용광로 선대위’ 등을 목표로 걸고 철저히 당내 통합을 추진한 게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추석을 앞두고 이희호 여사 예방, 도라산역 방문, 호남 방문 등 호남 민심을 얻기 위해 상당히 공을 들인 것도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 문재인 후보는 10월 3일 여성회원 카페에 참석했다. 제공=문재인 |
이는 이른바 ‘문재인 필패론’과 연결된다. 범야권 단일후보로 안 후보가 정해질 경우 문 후보 지지층 대부분이 안 후보를 지지할 것이지만, 반대로 문 후보가 단일후보가 될 경우 안 후보 지지층의 20%가량은 이탈할 것이라는 최근 여론조사 결과가 ‘문재인 필패론’의 중요한 근거다. 다시 말해 문 후보로는 중도 무당파층을 견인할 수 없다는 얘기.
안 후보의 힘이 빠지고 검증 공세가 문 후보를 향할 경우 문 후보 역시 험난한 사투를 벌여야 할 것이라는 전망도 필패론에 힘을 더한다. 노무현 정부 실정 책임론과 서청원 전 친박연대 대표 변호 논란, 아들의 취업 특혜 논란 등 문 후보도 시빗거리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여론조사에서 상승세를 타긴 했지만 문 후보 역시 이제부터가 ‘문재인의 힘’을 보여줘야 할 시점인 셈이다. 사공 많은 민주당이라는 배를 변화와 쇄신의 물결로 이끌면서 동시에 친노그룹의 폐쇄적인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높은 검증의 파도도 넘어야 하는 것이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