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호 경영리더 승진 제외, 이경후 경영리더는 COO 겸직…CJ “아직 후계구도 논할 상황 아냐”
CJ그룹은 지난 2월 16일 정기 임원인사를 발표했다. CJ그룹은 이번 인사에서 19명을 신임 경영리더로 승진시켰다. 또 강신호 CJ대한통운 대표를 CJ제일제당 신임 대표에 내정하는 등 최고경영자(CEO)의 변화도 있었다. CJ대한통운 후임 대표로는 신영수 CJ대한통운 경영리더가 내정됐다.
재계에서는 이선호 경영리더가 이번 인사에서 승진하거나 역할을 확대할 것으로 예상했다. 구체적으로 이선호 경영리더가 조만간 미래성장 관련 업무를 담당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차기 회장 선임을 대비해 미래 전략에 대한 밑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다는 분석에서다. 하지만 이선호 경영리더는 이번 인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반면 이선호 경영리더의 누나 이경후 경영리더는 CJ ENM의 음악콘텐츠사업본부 최고운영책임자(COO·Chief Operating Officer)를 겸하게 됐다. 이선호 경영리더와 달리 이경후 경영리더의 역할은 확대된 셈이다. 또 이경후 경영리더의 남편 정종환 CJ(주) 글로벌 인티그레이션 실장은 CJ ENM 콘텐츠·글로벌 사업 총괄로 선임됐다.
이선호 경영리더는 올해 1월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제품 전시회 CES(Consumer Electronics Show)에 참석하지 않았다. 푸드테크는 최근 식품업계의 트렌드로 꼽힌다. 푸드테크란 다양한 기술을 활용해 식품 산업의 생산성, 효율성 등을 개선하는 기술을 뜻한다. 이 때문에 다른 식품 기업 오너 일가인 구지은 아워홈 부회장, 전병우 삼양라운드스퀘어그룹(옛 삼양식품그룹) 상무 등이 올해 CES에 참석했다. CJ제일제당도 2020년 CES에서 ‘비비고 존’을 운영한 바 있다. 자사 홍보가 아니더라도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해 CES를 찾는 오너 일가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이선호 경영리더의 CES 불참은 의외의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선호 경영리더를 둘러싼 환경도 녹록지 않다. 이선호 경영리더는 실적으로 본인의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 이선호 경영리더는 CJ제일제당의 해외 식품 사업을 맡고 있다. CJ제일제당 해외 식품 사업은 지난해 상반기까지 좋은 분위기를 이어갔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매출이 감소하고 있다. CJ제일제당 해외 식품 매출은 2022년 4분기 1조 4057억 원에서 2023년 4분기 1조 3866억 원으로 1.36% 감소했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 중국 법인 ‘지상쥐’를 매각했고, 수익성 중심 운영 기조에 따라 매출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해외 식품 사업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김경훈 한국기업평가 연구원은 “(CJ제일제당의 소재식품 사업은) 성숙기 진입으로 성장여력이 제한적이고, 저수익 거래처 구조조정 등으로 외형 및 이익 기여도가 하락하는 추세”라고 평가했다.
이경후 경영리더도 유사한 과제를 안고 있다. CJ ENM의 최근 실적도 좋지 않다. CJ ENM의 매출은 2022년 4조 7922억 원에서 2023년 4조 3684억 원으로 8.85% 감소했다. 또 CJ ENM은 2022년 1374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뒀지만 2023년에는 146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전환했다. 이는 CJ ENM이 야심차게 인수한 미국 할리우드 제작 스튜디오 피프스시즌(옛 엔데버콘텐트)이 미국 작가·배우 파업으로 예상치 못한 경영 위기를 겪었기 때문이다. CJ라이브시티 공사가 일시 중단된 것도 CJ ENM에 악영향을 미쳤다(관련기사 ‘거액 투자, 부메랑 되나’ CJ ENM 재무 우려 커지는 이유).
다만 CJ ENM의 올해 전망은 나쁘지 않다. 우선 미국 작가·배우 파업이 지난해 말 종료되면서 피프스시즌도 정상화 수순을 밟고 있다. 또 CJ ENM은 OTT(Over The Top·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티빙을 통해 국내 프로야구 중계권을 사들였다. 한국프로야구위원회(KBO)는 지난 1월 국내 프로야구 유무선 중계권 사업자 우선 협상 대상자로 티빙을 선정했다. 네이버 컨소시엄과 에이클라엔터테인먼트는 티빙과의 경쟁에서 밀렸다. 이에 따라 2024년부터 2026년까지 인터넷으로 프로야구를 시청하기 위해서는 티빙을 사용해야만 한다.
이현지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티빙은 3월부터 광고요금제(AVOD) 모델 도입 및 프로야구 경기 독점중계를 통해 광고 수익화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하며 광고요금제를 통해 최소 10% 이상의 매출 상승을 기대한다”며 “피프스시즌은 연내 25편 이상의 작품 딜리버리(공급)를 통해 수익성을 개선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CJ ENM의 실적이 개선되는 동안 CJ제일제당 해외 식품 사업부의 실적 부진이 이어지면 이선호 경영리더는 이경후 경영리더와 비교가 될 수밖에 없다. CJ그룹은 그간 후계구도에 대해 특별한 입장을 밝히지 않아왔다. 하지만 1985년생인 이경후 경영리더도 40대를 바라보고 있는 만큼 조만간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 재계 한 관계자는 “장남이 무조건 대를 이어야 한다는 인식은 사라진 지 오래”라면서 “보수적인 것으로 유명한 범 LG가에서도 아워홈처럼 여성이 최고경영자(CEO)를 맡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CJ그룹은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CJ그룹 관계자는 “이경후 경영리더의 경력이 이선호 경영리더보다 길고, 음악 콘텐츠 관련 부분에서 성과를 냈다보니 역할이 확대된 것”이라며 “당장 차기 회장을 정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므로 아직은 후계를 논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