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주’ 하기도 전에 카레 국물에 흠뻑
▲ 여보, 때가 어느 땐데…최근 자민당 경선에서 총재로 당선된 아베 신조. 주변국에서는 강경파 보수 우익인 그가 다시 총리직에 오를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
지난 2009년 무려 54년 만에 첫 정권교체를 이룬 일본 민주당이 소비세 인상안으로 민심을 크게 잃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은 지지율이 18%로 급락한 가운데 자민당은 36%까지 치솟아 올랐다.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은 내년 총선거에서 자민당이 승리하면 아베 총재가 총리로 다시 등극하게 된다.
하지만 아베 총재 개인에 대한 지지도는 좀처럼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아베 총재한테 기대한다는 응답이 과반에 못 미치는 40%에 머물고 있는 것.
한 정치평론가는 “잘 뛰지도 못하는 경주마를 마구간에서 불러내는 꼴”이라며 혹평을 던졌다. 아베 총재가 스포트라이트를 한껏 받고 있지만 과거 총리로 재임하던 당시 국정운영이 형편없었다는 지적이다.
아베 총재는 2006년 총리에 올랐을 때 52세에 불과한 일본 최연소 총리로 촉망받는 정치가였다. 대대로 인기 정치가를 배출한 명문가 집안 자제란 점도 기대감을 갖게 했다. 자민당을 만들고 총리를 지낸 외조부, 역대 총리 중 재임기간이 가장 긴 작은 외조부, 중의원을 지낸 조부, 외무대신을 지낸 아버지를 둔 가문에서 태어났다. 소위 ‘세습정치가’로 탄탄한 정치기반을 갖춰 별명이 ‘일본정계의 순종 마(馬)’라 불릴 정도였다.
그러나 총리가 되고 1년도 채 되지 않아 각료의 정치자금 스캔들이 터졌고 자질 논란에 휩싸였다. 그러자 얼마 되지 않아 “지병인 궤양성대장염이 악화됐다”며 총리직을 내놓았다. 그 무렵에는 얼굴이 몹시 핼쑥하여 한눈에도 건강이 나빠 보였지만 동정여론은 없었다. 일본 국회에서 앞으로 총리직을 열심히 수행하겠다는 소신을 표명한 뒤 이틀 만에 병을 이유로 사의를 표명했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나약한 ‘부잣집 도련님’이란 꼬리표를 달게 됐다.
이 때문에 자민당 안팎에서는 아베 총재가 도련님이란 이미지를 벗어나야 선거에 이길 수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아베 총재는 “궤양성대장염은 신약을 먹어 깨끗이 나았다”며 대중 앞에 나서는 가두연설이나 강연회 횟수를 늘이는 등 건강하고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주려 애쓰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아베 총재가 도련님 캐릭터를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일례로 요사이 일본에서 난데없이 화제가 된 ‘돈가스 카레덮밥’ 사건을 들 수 있다. 아베 총재가 자민당 총재 경선 직전 밥 위에 돈가스와 카레를 듬뿍 얹는 돈가스 카레덮밥을 호텔식당에서 시켜 먹었는데 값이 3500엔(약 5만 원)으로 알려지면서 도마 위에 오르게 된 것.
그도 그럴 것이 일반 돈가스 카레덮밥 가격의 4~5배에 이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아베 총재가 일부러 기름기가 많은 돈가스 카레덮밥을 먹어 지병이 완치된 것을 보여줄 요량이라 분석했으나 네티즌들은 ‘아직도 서민의 삶을 모른다’며 비난했다. 아베 총재가 먹은 돈가스 카레덮밥은 ‘고급카레’, ‘호화카레’로 불리며 각종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 아베 총재가 자민당 경선 직전 5만 원 상당의 고급 카레를 먹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구설에 올랐다. 2006년 총리 재임 당시 방미 중인 아베 부부. 2007년 9월 지병악화 이유로 총리직을 사퇴했을 당시 모습. 사진출처=아사히신문ㆍ일본 블로그 |
그런데 요사이 별안간 부부 갈등의 씨앗이 된 것이 있다. 다름 아닌 원전이다. 지난해 일본의 원전사고 이후 아키에 부인은 원전 가동 중지를 아예 대놓고 외치는 ‘탈원전파’로 변신했다. 하지만 남편 아베 총재는 여태까지 원전을 국책으로 삼아온 자민당의 중심인물. 자민당에는 원전을 추진하는 의원들이 대거 포진해있다. 원전 반대 시위가 거센 요즘에도 자민당은 “3년 안에 원전에 대해 결론을 내리도록 한다”며 원전 관련 공식입장을 내놓기를 차일피일 미루는 상태다.
이런 와중에 아키에 부인이 ‘요즘 남편보다 더 친한 것 아니냐’는 평판을 듣게 된 이가 있다. 탈원전의 선봉장이라 일컬어지는 환경학자 이이다 데쓰나리(53)다. 탈원전에 심취한 아키에 부인은 이이다에게 직접 메일로 ‘강연회에 가고 싶다’고 연락한 후 급속도로 가까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이다는 재일동포 3세 기업인 손정의가 설립한 자연에너지 재단의 이사로 활약하다 올여름 일본 남부 야마구치현 지사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떨어진 바 있다.
아키에 부인은 2011년 6월부터 지금까지 3번씩이나 이이다 씨와 야마구치 현에 동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연에너지로 전력을 100% 만들어 쓰는 섬을 시찰한다는 명목이었다. 첫 동행 직후인 2011년 7월에는 이이다를 남편과 만나게 한 후 사진을 찍어 자신의 공식 블로그에 올렸다. 아울러 이이다가 역설하는 자연에너지에 대해 ‘남편이 꽤 이해하는 듯했다’는 감상도 써 넣었다.
아키에 부인은 올 8월 이이다와 야마구치현을 재차 방문한 뒤 “남편도 이번에는 잘 다녀오라 흔쾌히 말하지는 않았다”고 밝혔지만 “앞으로도 이이다 씨와 자민당을 연결하는 파이프 역할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간현대> 보도에 따르면 야마구치 현에서는 아키에 부인과 이이다가 돌아다니면서 마치 오래된 부부처럼 호흡이 척척 맞았다는 목격담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아키에 부인을 두고 자민당 내부에서는 “남편 발목을 잡는다”며 “제발 남편 입장도 좀 생각해줬으면 좋겠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아베 총재의 총리 행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는 이제 그만 참아달라는 뜻이다. 항간에는 아베 총재가 궤양성대장염으로 앓던 복통이 다 낫고 나니 이제 부인으로 인해 두통에 시달리게 됐다는 우스갯소리가 떠돌고 있다.
조승미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