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화두인 ‘다양성 확보’ 위해 우리 작가에 눈 돌려…‘한국 카테고리’ 형성되며 본격 소개
#조명받는 한국 작가들
서울에 지점을 운영하는 외국 갤러리들이 올해 첫 전시에서 일제히 한국 작가를 소개했다. 리만머핀과 타데우스 로팍, 페이스는 모두 한국 큐레이터가 기획한 한국 및 한국계 작가의 그룹전을, 페로탕은 이상남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지난해 개관한 화이트큐브도 개관전에 이진주 작품을 포함했으며, 에스터 쉬퍼도 지난해 서울과 베를린에서 한국 작가 그룹전을 동시에 개최했다. 리만머핀은 지난해 3월 성능경과 전속 계약을, 올해 1월에는 국제갤러리와 함께 김윤신의 공동 전속 계약 소식을 발표했다.
이들은 서울뿐 아니라 외국 지점에서도 한국 작가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페레스 프로젝트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베를린 본점에서 류예림과 이근민의 개인전을 각각 개최했다. 정희민은 6월 타데우스 로팍 런던, 윤종숙은 7월 마리안 굿맨 갤러리 LA, 성능경은 10월 리만머핀 뉴욕에서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외국 미술관에서도 한국 작가들의 개인전과 관련 기획전이 개최되고 있다. 블루칩 작가부터 중견, 신진 작가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분포돼 있는 등 한국 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 작가의 해외 진출 움직임
2000년대 한국 작가를 외국에 알리기 위해 국가 차원의 전시전 개최와 외국 주요 기관 순회, 영문 서적 출간, 웹사이트 제작, 번역 지원 사업 등이 다수 기획되었다. 하지만 대부분 한국 근현대 작가를 사조나 활동 영역으로 분류하는 등 대표적인 동시대 작가를 묶어 소개하는 데 그쳤다. 개인 차원에서 외국 미술계와 시장의 주목을 받게 된 시기는 2010년대 이후였다.
윤진섭이 기획한 ‘한국의 단색화’전이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국현)에서, ‘단색화의 예술’전이 2014년 국제갤러리에서 열렸다. 2015년 제56회 베니스비엔날레의 병행전시로 국제갤러리가 주최하고 이용우가 기획한 ‘단색화’전이 현지에서 개최되며 단색화가 미술사에서 재조명받고 이와 관련된 국내외 시장이 안정적으로 형성됐다. 이후 국현과 구겐하임이 공동 기획한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전이 열렸다(팬데믹으로 연기되어 지난해 5월 국현, 9월 구겐하임 뉴욕, 올해 2월 LA해머미술관에서 개최). 이를 앞두고 전위예술 및 실험미술 작가들이 주목받으며 주요 갤러리와 대거 전속 계약을 맺었다. 최근에는 어느 정도 경력을 쌓은 30~40대 한국 또는 한국계 작가를 갤러리에서 소속 작가 리스트에 포함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갤러리들의 새 키워드: ‘한국 작가’
이 같은 움직임은 지난해 9월 프리즈 서울 기간에 이들이 개최한 전시에 한국 작가가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던 것과 대비된다. 서울 미술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기간 소개하지 않았던 한국 작가들을 지난해 하반기부터 일제히 소개하는 이유는 연말 연초가 비수기라는 점도 있다. 하지만 자신들의 프로그램 카테고리에 점차 ‘한국 작가’를 포함하려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기도 하다.
갤러리들은 프로그램의 다양성을 중요시한다. 작가가 다루는 주제부터 그들의 국적을 비롯한 정체성에 이르기까지 다양성을 띤 프로그램을 통해 갤러리의 구력과 포용력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술계에서 다양성이라는 주제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 졌다. 이러한 주제를 다루는 비엔날레, 기획전, 개인전, 도서, 잡지의 특집 등에 갤러리들은 소속 작가 선정을 위해 세부 카테고리를 나눈다. 따라서 갤러리들은 점차 미술계 바깥의 창작자들에도 눈길을 돌리고 있다.
#한국 미술의 위상 변화
외국 갤러리들이 현지 국가의 작가나 기획자와 협업하는 이유는 프로그램 다양성 확보를 위한 방편인 한편, 이들의 가능성에 투자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한국 작가’라는 카테고리가 생기고 ‘한국’이 중요한 키워드가 되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은 시기상조일까. 외국 갤러리와 아트페어가 서울에 상륙해 지속적으로 한국 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하면 결국 한국 미술시장 부흥하고 아시아 미술시장의 허브이자 미술 중심지로 나아갈 것이다.
외국에 진출하는 한국 작가의 수가 한국 미술의 위상 변화를 전적으로 대변할 수는 없다. 작가들은 국가 대표도 아니고, 비엔날레나 아트페어가 올림픽도 월드컵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와 기획자, 갤러리, 미술관 등 미술계 주체들의 교류가 활발해지면 한국 작가와 한국 미술의 위상은 지금보다 더 높아질 것이라 믿는다.
이경민은 비영리 연구단체 미팅룸의 미술시장 연구팀 디렉터로, 국내외 미술시장과 미술산업 주체의 움직임에 주목하여 다양한 매체와 기관을 통해 글을 기고하고 강의하며, 주요 심의와 자문에 참여한다. 갤러리현대 전시기획팀에 근무했고, ‘월간미술’의 기자로 활동했다. 공저로 ‘셰어 미: 공유하는 미술, 반응하는 플랫폼’(스위밍꿀, 2019)과 ‘셰어 미: 재난 이후의 미술, 미래를 상상하기’(선드리프레스, 2021), ‘크래시-기술·속도·미술시장을 읽는 열 시간’(일민미술관, 미디어버스, 2023)이 있다.
이경민 미팅룸 미술시장 연구팀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