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현 감독, 풍수사·장의사 직접 만나 리얼리티 살려…독립운동가 이름 차용 등 ‘깨알 항일 코드’ 담아
장재현 감독이 연출하고 최민식, 유해진, 김고은, 이도현이 주연한 ‘파묘’(제작 쇼박스)가 파죽지세의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2월 22일 개봉해 첫날 33만 명의 관객을 모은 데 이어 상영 7일째인 28일 누적 330만 명을 동원했다. 일주일 만에 손익분기점인 330만 명을 넘어서면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파묘’의 돌풍은 2023년 11월 개봉해 누적 1300만 관객을 동원한 ‘서울의 봄’을 떠올리게 한다. 이미 개봉 첫 주 성적으로는 ‘서울의 봄’ 기록을 뛰어넘었다. 관객의 생생한 리뷰도 쏟아진다. ‘보고 나면 소금을 뿌려야 할 것 같다’, ‘두 번 보고 싶은데 기력이 달려서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반응이 줄을 잇는다.
관객은 왜 이토록 ‘파묘’에 열광하고 있을까. 토속 신앙에 중심을 두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영화는 중반부를 넘기면서 일본으로부터 오랫동안 핍박받은 우리 땅의 역사를 소환한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룬 오컬트 장르인 줄 알았더니 항일의 정신이 깃든 역사물이라는 반응이 쏟아진다. 덕분에 여러 해석까지 폭발하고 있다.
#묘 이장, 굿, 풍수까지… 호기심 자극하는 소재들
‘파묘’의 주인공은 국내 톱클래스로 꼽히는 젊은 무당 화림(김고은 분)과 그의 파트너이자 야구 선수 출신의 건장한 무당 봉길(이도현 분), 그리고 최고의 풍수사로 통하는 상덕(최민식 분)과 대통령의 염도 하는 실력 있는 장의사 영근(유해진 분)이다. 모두 무속과 토속 신앙을 상징하는 인물들이다.
이야기는 화림과 봉길이 미국의 한 부유한 한인 가족으로부터 묘 이장을 부탁받으면서 시작된다. 태어날 때부터 아주 많은 재산을 가진 것으로 묘사된 이 가족은 불운하게도 장남들에게만 내려오는 기이한 병을 앓고 있다. 화림은 그 원인이 조상의 묘에 있다고 보고, 상덕과 영근을 불러 파묘를 시작한다. 묘를 파내고 관을 들어내면서 이들에게는 기이한 일들이 벌어진다.
묘 이장과 굿, 무속 신앙과 장례에 이르기까지 ‘파묘’는 우리 삶 가까이에 자리한 토속적인 믿음과 그 믿음을 실현하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과학과 이성으론 설명할 수 없는 오컬트 장르의 영화이고, 판타지의 색채도 강하지만 개봉 직후 젊은층부터 6070세대 관객까지 아우르고 있다. 모두 소재가 지닌 힘이다.
장재현 감독은 ‘파묘’ 시나리오를 쓰면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 등을 직접 찾아가 깊은 관계를 맺고 그들로부터 얻은 전문적인 지식과 자료를 영화 곳곳에 녹여 넣었다. ‘파묘’가 이렇게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작품으로 완성된 건 감독의 이 같은 집요한 작업 과정 덕이었다.
감독이 ‘파묘’를 구상하면서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한국장례협회였다. 그곳에서 풍수지리사들을 소개받아 만났고, 그 사이사이 무속인들도 찾아다녔다. 감독은 자신과 오랫동안 인연을 맺은 무속인들에 대해 “클래식한 사람들”이라고 칭했다. 국내서 손꼽히는, 일명 ‘톱클래스 무속인들’로부터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일상을 관찰하면서 ‘파묘’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젊은 무당 화림 역의 김고은도 촬영 전 무속인들을 만나 그들의 삶을 가까이서 관찰했고 그렇게 체득한 분위기를 영화에서 아낌없이 표현했다. 묘 이장에 맞춰 진행하는 화제의 대살굿 장면은 김고은이 얼마나 오랜 기간 그 역할을 준비했는지 아낌없이 보여준다. 특히 높은 산에 올라 굿을 벌일 때 그가 신은 ‘컨버스 운동화’가 시선을 붙잡는다. 무속인에 갖는 대중의 고정관념을 일거에 부수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관객을 사로잡고 있다.
#주인공들 이름, 알고 보면 독립운동가의 이름
‘파묘’의 흥행 돌풍의 이유는 영화가 품고 있는 비밀스러운 이야기 때문이기도 하다. 처음 묘 이장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극이 진행되면서 뜻밖의 방향으로 흐른다.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 땅에서 벌인 비극적인 역사를 바로잡고자 하는 ‘항일의 메시지’다. 감독은 이를 두고 “우리 땅에 있는 역사의 트라우마를 파묘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를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설정이 바로 주인공들의 이름이다. 최민식, 유해진, 김고은, 이도현의 극중 이름인 상덕, 영근, 화림, 봉길은 사실 독립운동가들의 실제 이름이기도 하다. 각각 김상덕, 고영근, 이화림, 윤봉길의 이름을 따와 주인공의 이름을 지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차량의 번호도 의미심장하다. 3·1절을 의미하는 0301부터 광복이 된 해인 1945와 0815의 번호가 달린 차량이 등장한다. 또한 유해진이 극 중 운영하는 장의사의 이름은 ‘의열 장의사’, 영화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하는 공간인 보국사의 주지스님의 법명은 ‘원봉’이다. 독립운동가 김원봉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는 설정이다. 이에 대해 장재현 감독은 “우리나라, 우리 땅에 집중했다”며 “우리 땅을 자세히 들여다봤는데 당하기만 했다. 상처가 곪아 터졌다. 그것이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촬영장에서 일어난 기이한 일들
‘파묘’ 촬영 현장에서 배우들은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을 겪었다. 김고은의 대살굿 장면을 찍을 땐 한 스태프가 굿에 쓰인 음식 소품을 먹고 탈이 난 일이 있었다. 약을 먹어도 낫지 않았다. 그러자 현장에 상주하고 있던 무속인은 ‘굿의 음식은 먹으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관을 보관한 영안실 장면을 촬영할 때의 일이다. 당시 현장에선 유해진, 김고은, 이도현이 모여 이른바 ‘혼 부르기’를 시도하는 촬영이 한창이었다. 갑자기 유해진이 먼저 몸이 으슬으슬하다면서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현장에 있던 촬영 감독 등 다른 스태프들의 몸 상태도 비슷해졌다. 현장에 같이 있던 무속인은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고 촬영 장면이 담긴 모니터 앞으로 갔다. 그러더니 “저리 가!”라고 외쳤다. 그때부터 몸이 아프다는 사람들이 사라졌다고 한다. 기이한 사건을 다루는 영화 현장에서 벌어진, 영화처럼 미스터리한 일들은 영화 흥행과 맞물려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