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사, 사실상 은퇴 선언 담은 편지 공개…4월 인천 송도 시작으로 하반기까지 공연 이어져
2월 27일 나훈아의 소속사 예아라 예소리가 공개한 나훈아의 편지 내용의 일부다. 오는 4월부터 시작되는 전국투어 콘서트 ‘2024 고마웠습니다-LAST CONCERT(라스트 콘서트)’에 대한 보도자료인데 나훈아는 편지를 통해 사실상 은퇴를 선언했다. 이렇게 ‘가왕 나훈아의 시대’도 서서히 종착점을 향하고 있다.
“자신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괜찮다 해도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제 가슴에 꿈이 없으면 못합니다. 제가 못합니다, 제가 힘듭니다. 이 가슴으론 못합니다.”
2008년 1월 25일 오전 11시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나훈아가 했던 말이다. 기자회견 도중 일어서 바지 지퍼를 반쯤 내리며 “직접 5분간 보여주면 믿겠느냐”고 소리친 장면이 두고두고 화제가 된 기자회견이었지만 이날 발언의 핵심은 마지막의 한두 가지였다. 앞서 언급한 “제 가슴에 꿈이 없으면 못한다”는 사실상의 은퇴 선언과 “김혜수, 김선아 바로잡아 주십시오. 나는 멋대로 하십시오”라는 간곡한 부탁이었다.
2007년에 수개월 동안 나훈아를 둘러싼 괴담이 나돌았고 확인되지 않은 괴담이 계속 확대되던 상황에서 자청한 기자회견이었다. 나훈아는 “어차피 (나는) 엉망진창됐습니다. 오늘 들으신 내용도 여러분이 쓰고 싶으신 대로 쓰십시오. 하지만 김혜수, 김선아는 바로잡아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자신을 둘러싼 괴담으로 후배 여배우들까지 힘겨워 하는 상황은 막아야 해 기자회견을 자청했다는 그는 그렇게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
가요계를 떠났던 나훈아는 11년 만인 2017년 컴백했다. 2017년 7월 새 앨범 ‘드림 어게인’을 발표한 뒤 그해 11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1년 넘게 전국투어로 ‘나훈아 DREAM 콘서트’를 진행했다.
2019년 5월부터 12월까지는 ‘2019 나훈아 청춘어게인’ 전국투어를 진행했고, 2021년 7월부터 12월까지는 ‘나훈아 AGAIN 테스형’ 전국투어를 이어갔다. 데뷔 55주년을 맞은 2022년에는 ‘Dream 55 나훈아 콘서트’를 6월부터 12월까지 진행했다. 이처럼 매년 1년의 절반가량을 전국투어 콘서트 무대에서 관객들을 만나는 강행군을 이어가면서도 나훈아는 꾸준히 새 음반을 발표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공연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했던 2020년에는 오랜만에 방송에 출연해 팬들을 만났다. 2020년 9월 방송된 KBS2 특집 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방송이었는데 이 무대에서 신곡 ‘테스형!’을 발표했다. ‘테스형!’은 공전의 히트를 치며 또 다시 한국 사회에 나훈아 신드롬을 일으켰다.
다시 2008년 1월 기자회견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나훈아는 ‘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콘서트를) 두 시간 이상을 혼자 끌어나가기에는 이 꿈이 없으면 힘듭니다” “꿈을 팔려면 제가 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꿈 얘기 중요합니다. 꿈을 어디서 충족을 하느냐” 등등의 표현으로.
2007년 괴담이 증폭된 계기는 나훈아가 갑자기 공연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나훈아는 “공연이 끝나고 1∼2월에는 가슴에 꿈을 채우기 위해 외국에 가서 좋은 공연도 보고 좋은 풍경을 보면서, 가슴 찡 하는 것도 보면서 그렇게 가슴에 꿈을 담는 겁니다. 꿈을 가슴에 담아야 좋은 가사 좋은 곡이 나온다는 걸 언제부턴가 알게 되었던 거죠. 그래서 꿈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라며 “작년에 왜 쉬게 되었느냐? 무슨 획기적 변화가 있어야지 ‘늘 보는 게 그게 그건데, 조금 지겨우려고 한다’는 소리가 나오면 이미 늦은 것입니다. 그런 소리 나오기 전에 꿈을 키워야 합니다. 획기적으로 뭔가 바꿔 공연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것을 하기 위해 한국 깊은 산골짜기를 찾아가기로 한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전남 남원에서 뱀사골을 거쳐 경상도까지, 다시 옛 선비들이 서울을 오가던 길로 서울 근처까지 걸어가며 가슴에 꿈을 담아가고 있는 동안 괴담이 확산됐다는 설명이었다.
마지막으로 한 “제 가슴에 꿈이 없으면 못한다”는 말이 은퇴 선언으로 받아들여진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게 11년 동안 나훈아는 가요계를 떠나 있었다. 이 기간 동안 인도와 티베트 등에서 거의 도사의 모습으로 다니는 나훈아를 봤다는 목격담이 들려오기도 했다. 11년의 시간 동안 나훈아는 본인의 말처럼 다시 가슴에 꿈을 담기 위해 애를 쓴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다시 가슴에 꿈을 채워서 돌아온 나훈아는 2017년부터 현재까지 7년여를 무대에 섰다.
이번 은퇴 선언에서 나훈아는 ‘박수칠 때 떠나라는 쉽고 간단한 말의 깊은 진리의 뜻을 따르고자 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다행히 가슴에 채워진 꿈이 모두 소진됐기 때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남겨진 꿈을 팬들에게 모두 쏟아내기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나훈아는 현재 ‘2024 고마웠습니다-LAST CONCERT(라스트 콘서트)’를 준비 중이다. 4월 27일 인천 송도컨벤시아를 시작으로 5월 청주·울산, 6월 창원·천안·원주, 7월 전주로 이어지는 상반기 전국투어 일정을 발표했다. 그의 라스트콘서트는 하반기에도 이어지는데 아직 공연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다.
나훈아는 편지를 통해 “세월의 숫자만큼이나 가슴에 쌓인 많은 이야기들을 다 할 수 없기에 ‘고마웠습니다!’라는 마지막 인사말에 저의 진심과 사랑 그리고 감사함을 모두 담았습니다”라고 이번 공연을 소개했다.
편지에는 팬들에 대한 감사함도 가득 담겼다. 나훈아는 “긴 세월 저를 아끼고 응원해 주셨던 분들의 박수와 갈채는 저에게 자신감을 더하게 해 주셨고, 이유가 있고 없고 저를 미워하고 나무라고 꾸짖어 주셨던 분들은 오히려 오만과 자만에 빠질 뻔한 저에게 회초리가 되어 다시금 겸손과 분발을 일깨워주셨습니다”라며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크고 높은 소리로 외쳐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고마웠습니다!”라고 적었다.
지금까지도 늘 최고의 공연을 선보여 온 나훈아지만 이번 공연은 더욱 기대감이 크다. 마이크를 내려놓을 용기를 낸 나훈아가 가슴에 남아 있는 모든 꿈을 팬들에게 쏟아내는 혼신의 무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