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이사 “절세 위해 계열사 파산” 제안 녹취 확인…관정재단 “전기 요금 인상, 건설경기 침체로 인한 결정”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 원인에 여전히 의문을 제기한다. 악화한 업황 속에서도 꾸준한 매출로 업계 상위권을 지켜온 기업이라 갑자기 문을 닫게 된 구체적인 배경이 더 있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설립자인 고 이종환 전 삼영화학 회장의 채권에도 관심이 모이는데, 박근혜 정부에서 교육부 수장을 지낸 서남수 전 장관 행보가 유독 눈길을 끈다. 서 전 장관은 이 기업 오너일가의 세금 부담을 낮추기 위해 기업을 파산하는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실수요자' 개발사업 해왔는데…
1973년 설립된 삼영산업은 경남 김해시의 타일 제조 기업이다. 서울 강남 및 수도권 신도시 일대의 여러 건설 시공 작업에도 참여했다.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300억∼400억 원대의 매출을 내며 업계 세 손가락 안에 꼽혔다. 생전 '1조 기부왕'으로 불린 고 이종환 전 삼영화학 회장이 대표를 맡아 왔으나, 2023년 9월 타계 후 2024년 2월 2일 자본잠식을 못 벗어나 최종 부도 처리됐다. 현재는 파산을 신청한 상태다.
이 전 회장의 과잉 기부가 부도 원인으로 꼽힌다. 회사의 토지·건물·설비 일체를 자신이 세운 '관정이종환교육재단'(관정재단)에 기부해 적자를 키워온 탓이다. 삼영산업은 관정재단에 임차료를 내며 운영하다 부채가 늘어 자본이 잠식됐고, 돌연 발생한 부도 사태로 전 직원 약 160명은 실업자가 되고 말았다. 이들은 퇴직금마저 간신히 받았다(관련 기사 [단독] '1조 기부왕 설립' 경남 향토기업 삼영산업 전 직원 해고 통보).
특이한 부분은 그동안 삼영산업의 부도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요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삼영산업은 2019년부터 김해시 하계리 산업단지 약 26만㎡(7만 8700평)를 조성하는 사업의 시행사로도 참여했다. 2020년에는 김해시와 1350억 원의 투자협약도 맺었다. 이 사업에는 이 전 회장의 또 다른 기업 '삼영중공업'과 손자 이 아무개 씨의 '일광기공' 등이 공동시행사로 함께했다.
하지만 삼영산업은 이때도 회계상 자본잠식 상태였다. 2020년 감사보고서는 "자본이 잠식돼 존속능력이 불확실하다"고 명시했다. 이런 현실에서도 삼영산업이 시행사업에 나선 데에는 스스로 충분히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해석으로 좁혀진다. 실제 삼영산업은 이 사업을 목적으로 한 별도의 대출도 받지 않은 채, 이 전 회장이 사망한 2023년 9월까지 '대표시행사'로서 사업을 선두에서 이끌었다.
특히 해당 사업은 삼영산업 공장 부지를 포함한 '실수요자 개발' 방식으로 진행됐다. 땅을 매입한 뒤 분양 등으로 수익을 내는 게 아니라, 본인들 사업에 활용할 제반 여건 확충 등을 목적으로 한 사실상의 '투자' 혹은 '지출'에 가까운 형태였다. 부도 위기 기업이 이런 사업을 추진하는 경우 자체가 거의 없는 데다, 삼영산업도 사업 진행 과정에서 아무런 차질을 빚지 않았다.
김해시 관계자는 "삼영산업의 부도 이유는 자세히 모르지만, 적어도 투자협약 및 사업 등은 무탈하게 이뤄져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삼영산업 부도로 현재는 삼영중공업이 대표 시행사를 맡아 토지 매입 등의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며 "실수요자 개발 방식이라 수익 사업으로 보기는 어렵고, 자기 돈을 투입해 부지를 조성하는 작업이므로 지자체로서는 고용유발 효과 등 지역 발전을 기대하는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상속세 부담에 파산…' 삼영중공업 위험했다
또 다른 특이점은 삼영산업 부채를 구성하는 항목들이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2024년 1월 기준 삼영산업의 내부 부채현황 자료를 보면, 회사의 자산은 79억 원, 부채는 248억 원으로 집계됐다. 부채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 항목은 '회장님 가수금'으로 총 89억 5000만 원이었다. 이어 관정재단 임차료가 59억 원이었고, 부도 직전 조성한 직원들 퇴직금도 32억 원으로 적지 않았다.
이 밖에는 은행차입금 22억 원, 외상 27억 원, 미불어음 13억 원으로 경영에 치명적인 항목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결국 '회장님 가수금' 등을 포함한 180억 원가량이 자본잠식의 핵심 원인이었던 셈인데 의문은 더 나온다. 회장님 가수금, 즉 이 전 회장의 채권은 자녀가 상속하면 해결될 문제였기 때문이다. 퇴직금도 부도가 없었다면 안 나갈 돈이었고, 임차료는 관정재단과 해결책을 구상해볼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단연 가장 큰 관심은 이 전 회장 채권에 쏠린다. 2남 4녀 자녀 가운데 유일하게 경영에 참여한 장남 이석준 삼영화학 회장 등이 세금 탓에 채권 상속에 부담을 느껴 회사가 부도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상속세 문제로 기업을 없애는 방안은 이 전 회장 사망 전 관정재단에서 주요하게 논의됐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2023년 8월 15일 관정재단 고위 임원이 이 전 회장에 보고하는 녹취에는 이런 내용이 담겼다.
"회장님, 최근 문제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회장님이 중공업에 갖고 계신 195억 원 채권 있지 않습니까. 이런 말씀 죄송하지만, 회장님이 떠나시면 이 전부가 상속 재산이 됩니다. 상속세가 50% 정도이므로 100억 원 가까이 나오게 됩니다. 포기하셔도 이게 회사 수익으로 잡히다 보니 법인세가 100억 원 정도 나옵니다. (중략) 해결 방법이 꽤 복잡합니다. 예를 들어 회사가 파산 신청을 하든지…."여기서 이 전 회장에 보고하는 인물은 박근혜 정부 내각을 맡은 '서남수 전 교육부 장관'이다. 그는 당시 관정재단 이사였다. 물론 해당 보고는 삼영중공업 관련 사안이다. 그렇지만 현실화했다면 삼영중공업이 오너일가 상속세 때문에 폐업을 할 수도 있었던 셈이다. 관정재단은 이후에도 채권 처리 및 절세 방법을 다각도로 고민했다. 삼영산업의 산업단지 땅도 거론됐다. 아래 역시 같은 날 서 전 장관의 보고다.
"우선 채권 포기는 법인세 때문에 이석준 대표가 수용할 사안이 못됩니다. 따라서 (소유권 분쟁 중인) 김해 산업단지 땅을 억지로 내놓으라고 하기보단 감정평가액으로 사주시는 방식이 깔끔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중략) 이석준 대표 이름으로 돼 있는 땅이 여러 군데 있지 않습니까. 경북 의성 신감리야 어차피 논밭이라 재단으로 등기도 안 되니 내버려 두고, 김해 땅을 감정평가액대로 사주시면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같은 시기 관정재단은 '하계리 산업단지 조성을 위한 정리방향' 등도 검토했다. 이 전 회장이 이석준 회장 명의로 된 김해 산업단지 땅을 무상으로 받으면, 삼영중공업 채권을 포기해 상속세 부담을 덜어준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는 무산됐다. 현행법상 상속 개시일로부터 5년 전까지 제3자에 증여한 재산 역시 상속세 부과 대상이기 때문이다. 관정재단은 '이런 정리 방향의 최대 이익자는 국가'라고도 정의했다.
이에 대해 황연하 세무사(세무회계 시연)는 "현재 제도는 부모가 세상을 떠나는 상황을 예상하고 상속세를 줄이고자 미리 제3자 등에 증여하는 행위를 단속하고 있다"며 "상속인 외에 소급 5년분으로 증여된 부분도 상속 재산에 합산해 누진 과세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이 기간에 제3자에 증여한 데 대한 상속세는 과세가액이 30억 원을 넘을 경우 약 50% 수준이 일반적"이라고 부연했다.
결과적으로 이 전 회장은 채권을 지켰다. 그 후 공교롭게도 삼영산업이 폐업했다. 이 전 회장의 이 회사 채권은 약 89억 원이다. 삼영산업 통상 매출(300억 원대)은 삼영중공업(200억 원대)보다 크지만 재무상태가 약점이었다. 삼영중공업은 2022년 기준 부채(384억 원)와 자산(389억 원)의 차이가 적고 이석준 회장 지분도 36.25%로 높은 편이다. 그의 삼영산업 지분은 2020년 30%에서 2022년 0.8%로 줄어든 바 있다.
삼영산업은 이 전 회장이 사망하고 4개월여 만에 부도가 났다. 이 기간 동안 회사가 회생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우선 서 전 장관은 본인 녹취를 확인한 뒤 “3개월 전 관정재단을 떠났기에 이제 재단과 관련이 없으니 연락하지 말아 달라”며 입을 닫았다. 이석준 회장 역시 ‘상속세 부담에 따른 부도’ 관련 질의에 “바쁘다”며 답을 주지 않았다.
삼영산업 전 직원의 약 25%는 이곳을 ‘평생직장’으로 여기며 20년 넘게 일한 노동자들이다. 삼영산업 노동조합은 곧 서울 종로구 혜화동 관정재단을 찾아 다시 집회를 할지 고심하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관정재단에 기부된 회사 자산을 우리가 피땀으로 쌓아 올렸는데 관정재단도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삼영산업 경영진의 방만 경영과 부당해고 및 고의 부도에 대해서도 결코 그냥 넘기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에 관정재단 관계자는 “김해 시행사업 자금은 관정재단이 지원했다”며 “채권의 경우 90억 원을 상속받아도 실효세율이 40% 정도”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회사가 정상화돼 채권을 회수하면 상속세 납부 뒤에도 50억 원 넘게 확보하게 되는데, 상속세 탓에 부도를 결정했다는 발상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며 “삼영산업 부도는 가스·전기 요금 인상 및 건설경기 침체에 경쟁력 상실에 따른 판단이었다”고 밝혔다.
한기문 삼영산업 대표도 “회사는 2020년부터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 전 회장님이 작고하신 이후 과점 주주가 없는 상황 속에서 제조원가 상승 등에 따른 부채 부담이 심각해 금융권과 방안을 모색했었다”고 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결국 더 이상은 경영을 지속할 수 없다는 판단이 나오게 돼 직원들에 매우 안타까운 심경”이라며 “노사가 함께 자구책을 마련해 2023년 12월 휴업에 돌입한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석준 회장은 올 2월 관정재단 이사장에 취임했다. 관정재단은 시가 추정액 1조 7000억 원가량의 자산을 보유한 아시아 최대 장학재단으로 꼽힌다. 현재 이곳 이사진은 5선 국회의원 및 국회부의장 등을 지낸 이주영 국민의힘 국책자문위원장(64), 광주지방국세청장 출신 임성균 세무법인 다솔 회장(70), 대우건설 임원 출신 양 아무개 씨(65) 등 총 5명으로 구성돼 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