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준발 대선 재뿌리기 왜?

2007년 박근혜가 한 일을 알고 있다

▲ BBK 사건으로 수감 중인 김경준이 옥중 자서전을 출간했다. 대선을 두 달 앞둔 시점에서 BBK 논란이 재점화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임준선 기자 [e-mail]

 BBK 사건의 ‘키 맨’ 김경준이 돌아왔다. <BBK의 배신>이라는 옥중 자서전을 들고서. 2009년 BBK주가조작 및 횡령으로 징역 8년과 벌금 100억 원을 확정 받은 그는 현재 천안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김 씨는 최근 출간한 자서전 형식의 책을 통해 BBK사건과 관련된 일련의 의혹들에 대해 직접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도 시기가 참 절묘하다. 김 씨는 2007년 대선 직전 귀국해 “BBK의 실소유주는 이명박 후보”라고 폭로해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바 있기 때문이다. 2007년 대선 직전 김 씨로 인해 한바탕 곤욕을 치렀던 여권은 대선을 불과 두 달여 앞두고 또다시 등장한 김 씨로 인해 5년 전의 악몽을 떠올릴 수밖에 없게 됐다. 정치권 역시 한동안 잠잠했던 BBK 논란이 대선정국을 맞아 재점화될지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한번이라도 스 스로 진실을 알리고 싶었다. 나에 대한 오해가 너무 많기에 내가 자란 배경 등에 대한 설명을 통해 조금이라도 오해를 풀고 싶었다.”

김 씨가 밝힌 책 출간 이유다. “구속으로 입이 막히고 수족이 묶인 상태에서 진실이 MB 측, 조중동, 검찰과 보수단체들에 의해 거짓으로 왜곡되는 것을 지켜보자니 정말 피를 토하는 심정이었다”고 밝힌 그는 책 전반에 걸쳐 이명박 대통령을 ‘꼼수의 달인’으로 표현하며 집중 공격하고 있다.

책에는 그간 알려지지 않았거나 언론 등을 통해 보도된 내용과는 다른 얘기들도 담겨있다. ▲BBK 설립 제안을 위해 이 대통령의 측근인 김백준 전 대통령실 총무기획관이 먼저 접근을 해왔다 ▲2007년 경선 직전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조기귀국을 종용했다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는 귀국하지 말 것을 요구하며 거래를 시도했다 ▲당시 민주당이 BBK 동영상의 존재를 알고도 돈이 없어 사지 못했다는 내용들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역시나 기획입국과 BBK 가짜편지에 대한 부분이다. 책을 통해 김 씨는 “BBK의 실소유주는 이명박 대통령” “BBK 가짜편지는 한나라당과 MB대선캠프의 정치공작”이라는 기존의 주장을 재확인했다. 뿐만 아니라 김 씨는 “자동차부품 납품업체인 ‘다스’의 실소유주도 이명박 대통령”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스가 BBK에 190억 원을 투자했지만 (이 대통령의 큰형) 이상은 회장이나 (처남) 김재정 감사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는 것이 김 씨가 내세운 근거다.

주목할 점은 김 씨가 등장한 시점이다. 김 씨의 자서전이 출간될 것이라는 얘기는 올여름부터 있었지만 대선정국에 접어든 현재 ‘때’를 기다렸다는 듯 출간됐다는 점에서 정치권에서는 여러 가지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미 5년 전 대선 정국에서 김 씨의 등장으로 정치판에 한바탕 소용돌이가 휘몰아친 일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책 내용이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현 여권을 공격하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대선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특히 최근 과감한 용인술을 펼치며 대선승리를 위해 달려가고 있는 박근혜 후보한테 불똥이 튈 조짐도 있다. 박 후보 입장에서 가장 껄끄러운 내용은 2007년 경선 당시 박근혜 캠프 측의 김경준 입국 종용 주장 부분이다. 김 씨는 당시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에 나섰던 박근혜 후보 측에서 집요하게 귀국을 종용했다고 주장했다. “이혜훈 전 의원은 나의 가족과 몇 달 동안 수없이 통화하고 나의 조기 입국을 촉구했다. 구체적인 대가와 조건들까지 진지하게 논의했다. 2007년 2~3월쯤부터 박 후보 측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박 후보 측에서 이 대통령의 비리를 조사하면서 유영하 변호사를 내게 보냈다”는 것이다.

김 씨의 주장대로라면 당시 박 후보는 경선 경쟁자였던 이명박 후보를 이기기 위해 박 후보 측근을 동원해 이 후보의 치부를 쥐고 있는 김 씨의 입국을 종용했다는 얘기가 된다. 즉 일종의 정치공작을 벌였다는 것으로 이는 박빙의 대선 레이스를 벌이고 있는 박 후보에게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하지만 이와 관련 유 변호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한마디로 말도 안 된다. 이미 있는 그대로 밝힌 바 있고 더 이상 코멘트할 것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2007년 3월 초와 중순에 미국에 가서 김 씨를 세 번 만났다. 그 당시 이혜훈 의원과는 친분도 없었고 당연히 같이 간 것도 아니다. 김 씨가 굉장히 억울해 한다는 얘기를 선배인 정인봉 변호사로부터 전해 들었고 정 변호사의 사정으로 내가 대신 가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는 BBK와 관련된 어떤 구체적인 얘기도 하지 않았고 어떤 증거도 보여주지 않았다. 진실성이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 유 변호사의 얘기다.

이혜훈 최고위원도 “2008년에 검찰에서 이미 다 끝난 것인데 지금 와서 왜 다시 그러는지 모르겠다. 사기꾼의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자꾸 언론에서 옮기는 것도 문제”라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췄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제대로 ‘독’을 품은 김 씨가 추가 폭로를 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김 씨는 “MB가 권력을 잡고 있기 때문에 이 책에서 못한 얘기들이 너무 많다. MB와 검찰은 나를 괴롭히고 있다. 책을 한 번 더 쓰겠다. 스위스 비밀계좌에 보관하고 있던 돈 140억 원을 다스에 송금한 이유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후에 밝히겠다”며 추가 폭로를 예고했다.

마치 작정한 듯한 자서전 출간을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독기를 품은 김경준의 대선판도 흔들기’로 보는 시각도 적잖다.

실제로 책을 봤다는 한 여권 인사는 “한국말이 서툰 김 씨가 ‘달인’ ‘꼼수’ 등의 최신 표현까지 써가며 이 대통령을 작정하고 힐난하고 있다. 이 대통령의 영어 실력을 콩글리쉬라고 조롱하거나 ‘쇼를 좋아하는 사람’ ‘뻥쟁이’로 매도한 것, 김백준 전 대통령실 총무기획관의 이중인격을 비하하는 등 BBK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노골적인 내용도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볼 때 책 출간 의도에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권 출범 전부터 시작된 김경준과 MB정권 간의 악연은 임기 말에 접어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BBK의 악몽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수향 기자 [e-mail]
민웅기 기자 [e-mail]

김경준 vs 신경화 엇갈린 주장

“감방 동료 아니었다” vs “날 이용한 후안무치한 자”

김 씨는 ‘가짜편지’의 핵심인물인 신경화 씨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공격했다. 김 씨의 감방동료인 신 씨는 기획입국설의 결정적 증거로 제시된 ‘가짜편지’의 작성자로 알려졌던 인물이다. 하지만 김 씨는 “신경화 씨와 감방동료도 아니었으며 절대로 친한 관계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신경화는 동생 신명과 BBK 가짜편지를 날조하고 공모한 당사자”라며 신 씨를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신 씨와의 첫 만남에 대해 “정신이상자처럼 보이는 아시안 남자가 다가왔다. 그때만 해도 그 자가 내 인생을 망쳐놓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면서 “신경화는 교도소 안에서 도박과 노름에 미쳤다” “그는 내게 전혀 필요 없고 위험한 존재였다. 그자와 엮여서 좋을 게 없다는 생각에 내내 피해 다녔다”고 주장했다.

즉 “두 사람이 감방동료로 각별한 사이였고, 따라서 김 씨가 신 씨에게 당시 여권의 기획입국설 얘기를 나눈 것은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라는 내용은 언론과 한나라당, MB캠프, 검찰의 엉터리 시나리오라는 것이 김 씨의 주장이다.

김 씨의 주장대로라면 김 씨가 감방동료인 신 씨에게 당시 여당과 합의한 기획입국설을 떠벌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특히 ‘자네가 ‘큰집’과 무슨 약속을 했건 간에’라는 내용으로 시작되는 가짜편지는 애초부터 존재할 수조차 없는 것이었던 셈이다.

주목할 것은 김 씨와 신 씨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는 것이다. 올 봄 기자가 입수한 서신에서 신 씨는 김 씨와의 ‘악연’에 대해 털어놓으며 그를 “횡령한 돈을 몽땅 거머쥐고선 그걸 노력의 산물이라고 하는 탐욕자,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아무 관계없는 사람으로 하여금 1년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지옥 속에서 보내게 만든 후안무치한 자”라고 표현했다.

신 씨의 동생으로 가짜 편지 실제 작성자인 신명 씨는 1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김경준의 인간성이 그렇다. 모든 게 거짓말이다. 불쌍한 형님을 정신이상자로 몰고 인격적인 모욕을 하다니 너무 분해서 말이 안 나온다. 벼락 맞을 것이다. 감방동료가 아니고 친하게 지내지도 않았다는 사람이 어떻게 형님의 사생활까지 알고 있을까. 특히 그는 누구의 사생활을 거론하거나 헐뜯을 입장이 아니다. 김경준에 대해서는 할 말이 너무 많고 증거들도 갖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