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에 불량에…들통 나면 업자 탓
▲ 그래픽=송유진 기자 eujin0117@ilyo.co.kr |
기존 유통채널에 한계를 느낀 유통업계의 온라인 몰 열풍이 거세다. 올해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대대적인 온라인 몰 리모델링 및 특성화를 통해 업계 1위 달성을 목표로 내세웠으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역시 업계 최초로 프리미엄 온라인 쇼핑몰 ‘엘롯데’를 론칭해 맞불을 놨다. 현대백화점, AK플라자, 갤러리아백화점 등 다른 백화점들도 앞다퉈 온라인 몰 공들이기 작전에 동참했다. 이들은 ‘믿고 살 수 있다’는 백화점의 이미지를 십분 이용해 손쉽게 세력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너도나도 급격히 몸집을 불린 탓인지 여기저기서 잡음이 생겨났다. 특히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해 끌어들인 병행수입 판매로 인한 소비자 불만은 극에 달할 지경이다. 백화점 매장에서 판매하던 제품이 주를 이뤘던 것과 달리 최근엔 개인사업자를 통한 병행수입품 판매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끊임없이 문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백화점 온라인 몰에서 판매하고 있는 병행수입 제품은 카메라, 의류, 가방, 화장품 등 중저가 상품에서부터 명품까지 다양하다. 백화점처럼 복잡한 유통과정을 거치지 않아 시중가보다 평균 30~40%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어 인기도 높다. 그러나 백화점 이름을 걸고 판매함에도 제품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소비자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올해 접수된 한국소비자원 등 각종 소비자고발센터에도 이러한 불만이 넘쳐난다. A 씨(여·30대)는 지난 2월 한 백화점 온라인 몰에서 100만 원 상당의 명품가방을 구입했다. 처음엔 별다른 문제없이 가방을 이용했으나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부속품이 떨어졌고 바로 구입했던 백화점 고객센터에 수선의뢰를 했다. A 씨가 상황을 설명하자 백화점에서도 자사에서 구입한 물건이기 때문에 당연히 무상으로 수리를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러나 막상 물건을 보내자 백화점은 입장을 바꿨다. 30만 원의 수리비가 발생하며 이마저도 병행수입품이라 본사에서 제공하는 정식 수리는 해줄 수 없다는 반응을 내보였다. 백화점 매장에서 구입했다면 떨어진 장식품을 본사에서 받아 수리를 해주겠지만 병행수입품은 국내 명품수리업체를 통해 똑같은 장식품을 만들어 달아준다는 어이없는 설명도 이어졌다. A 씨는 “가방을 구입할 때 수리는 백화점 고객센터를 통해 하라는 설명을 보고 구입했는데 알고 보니 ‘접수만’ 백화점을 통해 하는 것이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황당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8월 B 씨(여·30대)는 ‘정품이 아닐시 환불을 보장한다’는 설명을 보고 한 백화점 온라인 몰에서 중저가 가방을 구입했다. 워낙 가품이 많은 브랜드라 망설여졌지만 백화점에서 가품을 판매할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받아본 제품은 누가 봐도 가품. 상표도 제대로 부착되어 있지 않았으며 디자인도 정품과는 차이를 보였다. B 씨는 곧장 백화점에 전화를 걸어 따졌는데 웬일인지 자세한 설명도 듣지 않고 환불을 해주겠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찝찝함을 느낀 B 씨는 다시 전화를 걸어 추궁한 끝에 정황을 알게 됐다. B 씨는 “백화점에 입점한 개인사업자가 여러 온라인 몰에서 제품을 판매하는데 배송착오가 있었다며 사과를 하더라. 즉 같은 사업자가 다른 사이트에서는 가품을 팔고 있었다는 얘기다. 백화점에서도 슬쩍 가품을 끼워 팔고 이를 눈치 채는 사람들에겐 환불해주고 모르는 사람은 그냥 속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병행수입품을 믿지 못해 구입 직후 중고 명품 감정사를 찾는 웃지 못할 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서울 중구 명동의 유명 명품감정사 직원은 “본래 이곳을 찾는 손님들 대부분은 선물받은 제품을 가지고 오거나 물건을 팔기 위해 방문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자신이 구매한 병행수입품을 감정해달라는 손님이 꽤 있다. 내가 본 제품들은 모두 진품이긴 했으나 문제가 많은 상품들이었다. 한번은 중년여성이 200만 원짜리 명품 가방을 들고 왔더라. 언뜻 보기에는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제품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으나 자세히 보니 바느질도 엉망이었고 군데군데 접착 본드가 가죽까지 새어나온 자국도 보였다. 정식 수입업체를 통했으면 불량품으로 판정받았을 상품”이라며 “같은 제품이라도 생산국이나 로고 부착 방식에 따라 가격차이가 나는데 이를 모르는 고객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병행수입업자들도 제대로 검품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백화점 온라인 몰에서 고가 카메라를 병행수입·판매하는 한 관계자는 “백화점은 수수료만 받을 뿐 판매까진 관리하지 않는다. 병행수입업자들도 백화점의 브랜드 파워나 신뢰를 이용해 손쉽게 판매할 수 있어 입점을 선호한다”며 “수입신고필증으로 정품을 검증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이 역시도 사실이 아니다. 동남아에서 만든 가품도 유럽으로 역수출해 다시 들여오면 얼마든지 수입신고필증을 그럴 듯하게 만들 수 있다. 사후관리 등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으려면 정식 루트를 통해 물건을 구입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과거 병행수입업에 종사했던 관계자 역시 “작정하고 속이면 백화점이고 병행수입업자들도 당할 수밖에 없다. 수입품을 들여오는 경로는 수십 가지에 이르는데 이 과정에서 장물이 섞이기도 하고 하품이나 가품이 섞이기도 한다”며 “현실적으로 아무런 문제없이 병행수입을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백화점 온라인 몰 측도 병행수입품의 제대로 제품관리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은 인정했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통관검증서나 제품필증은 확실히 확인하나 제품에 대한 최종 검수는 입점업체가 전적으로 해 종종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며 “그래도 병행수입품 역시 만드는 곳(본사)이 다르지 않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제품에 불안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