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부족 이기려 시작…“일단 맛보면 약도 없다”
▲ 프로포폴에 중독된 의사들이 의외로 많은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한 의사는 “성행위보다 프로포폴이 더 좋았다”고 취재진에 털어놓았다. |
그런데 포폴에 중독된 이들 가운데 의료인도 상당수에 이른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5월 국립수사연구원의 발표에 의하면 2000~2011년 프로포폴 사망자 중 의료계 관계자가 가장 많았다는 게 이를 방증한다.
일례로 지난달 17일 강남 유명 피부과 전문의 김 아무개 씨(41)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김 씨 시신 주변에는 전신마취제 ‘프로포폴’ 약병과 주사기 등이 놓여 있었고 김 씨의 팔에는 주사 흔적이 있었다.
이 충격적인 사건을 두고 정작 의료계 반응은 시큰둥하다. 의료인들 사이에서 ‘포폴 중독’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게 그 이유라고 한다. 과연 사실일까.
“일반적으로는 레지던트 때부터 포폴 중독이 시작돼요. 한번 빠지면 약도 없어요.”
지난해 여름부터 약 1년 간 정신과 치료를 받고나서야 최근 ‘포폴 중독’에서 벗어났다는 한 피부과 전문의 A 씨는 11일 “종합병원 인턴 시절, 과도한 업무로 인해 수면시간이 항상 부족했다. 그런데 포폴을 적당히 맞고 잠들면 그렇게 개운할 수 없었다. 그게 시작이었다”며 포폴에 중독된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그는 “포폴 중독성은 마약 저리 가라 할 수준이다. 성관계하는 것보다 더 좋더라. 사르르 잠들었다 사르르 깨어나는데 그 맛을 알게 되면 포폴 없이는 잠도 못 자고 심지어는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검찰 조사 결과 포폴은 유흥업소를 중심으로 중독자들이 대거 양산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A 씨는 “시간에 쫓겨 잠이 부족하고 하루 생활이 불규칙하다는 점, 스트레스를 자주 받는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의사, 간호사들과 유흥업소 여성들과는 비슷한 점이 많다”며 “텐프로 여성들 같은 경우 포폴 구하기가 어렵겠지만 의사들은 접근성이 좋아서 마음만 먹으면 포폴 주사를 맞을 수 있기 때문에 중독자가 의외로 더 많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포폴을 일반인보다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의료인들이 자신의 의학 지식을 믿고 스스로 주사를 놓다가 점점 이것에 중독되고 만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익명을 요구한 한 마취과 전문의 B 씨는 “의과대학 선후배들 중에서도 이미 5~6명 정도가 (포폴에) 중독된 상태다. 한 선배는 지난 번 내게 포폴을 부탁하면서 ‘내가 대학시절 수재였는데 새우잠을 자고도 성적이 좋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포폴이 있었다’고 고백하시더라. 그런데 이제는 내성이 생겨 8cc 이상을 맞아야 잠이 온다고 하소연을 해와 안쓰러운 나머지 내가 몇 번 놔드린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포폴은 미세한 용량 차이에 따라 무호흡 상태가 올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전문 의료진이 보는 앞에서 주사하는 게 좋다. ‘나홀로 주사’를 하는 일반 의사들의 경우 자기 목숨을 내놓고 도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만큼 포폴 주사는 신중하게 맞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프로포폴이 2011년 2월 향정신의약품(마약)으로 지정되기 전까지만 해도 포폴은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마취제로 의료진들 사이에서 각광받아왔다.
알려진 바와는 다르게 포폴은 수면제가 아니라 ‘정맥 마취제’다. 쉽게 말해 주사 한 방에 정신을 ‘보내버리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정신을 잠깐 잃었다가 아무 생각 없이 깨어나기 좋다는 뜻이다.
마취과 전문의 B 씨는 “포폴은 강력한 마취제에다가 향정신의약품이기 때문에 대학병원에서는 일반 의사 혼자는 못 쓰고 반드시 마취과 전문의가 동석한 공간에서만 허용된다. 반면 일반 개인병원에서는 마취과 전문의 자격이 없는 일반 의사가 마음대로 놓다보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포폴 사용 시 대학병원의 경우 의사, 간호사, 약사 3명에게 사인을 받는 등 절차가 까다롭고 포폴보다는 도미컴 등 부작용이 거의 적은 약품을 주로 많이 쓰는데 반해 개인병원은 의사 마음대로다. 이러다보니 ‘포폴병원’들이 생기고 예고했던 것 처럼 포폴로 죽어나가는 의료진들도 나오기 시작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또한 그는 “의사가 ‘감’으로 주사해서 사고가 생긴다. 의사 게시판에서 검색 한 번 해봐라. ‘여자 환자가 왔는데 나이는 23세, 키는 163, 48kg입니다. 포폴 몇 cc 넣으면 좋을까요?’ 이런 질문들이 수두룩하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몇몇 일반 의사들이 의사 전용 커뮤니티에 질문을 올린 후 동료 의사들이 조언해준 댓글에 따라 포폴 주사 용량을 결정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
포폴뿐만 아니라 수면제인 미다졸람에 중독되는 의사들도 문제다. 포폴처럼 ‘환상적인’ 체험을 하긴 어렵지만 죽음에 이르는 부작용은 없기 때문에 일부 의사들 사이에서 애용되고 있다.
마약성 진통제인 ‘데메롤’도 마찬가지다. 주로 암 말기 환자에게 투약되는 이 약품은 마약 성분이 높아 포폴보다 접근하기 더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의 C 씨는 “데메롤에 중독된 환자들이 병원에 찾아와서 아프다며 (주사를) 놓아 달라고 난리치는 것을 종종 보는데, 중독성으로만 따지면 데메롤이 포폴의 몇 배 이상의 위력을 갖고 있다. 개인병원 파산 후 우울증에 빠진 몇몇 의사들이 데메롤이나 포폴에 빠졌다는 후문은 업계에서도 끊이지 않고 나도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C 씨는 “지각 있는 의사들은 이번에 죽은 피부과 여의사처럼 혼자서 포폴 주사를 놓는 미친 짓은 안한다. 대부분 친한 동료들끼리 돌아가면서 놔주고 문제시 응급처치를 해주기 때문에 음지에서 성행하는 의료인들의 포폴 세태를 찾아내고 금지시키는 건 대단히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