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용에 이종범…완전 야단났슴다”
▲ 은퇴는 친정에서… 한화의 중심타선으로 활약하고 있는 장성호. 그래도 은퇴는 친정팀인 KIA에서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넘쳐났던 후보 감독들
한대화 감독이 시즌 도중 경질되면서 한화는 차기 사령탑 후보군들에 대한 소문이 넘쳐났다. 김성근, 이정훈, 조범현, 김재박 등 전현직 감독들이 물망에 오르며 어떤 사람이 한화 감독에 임명되는지 관심이 집중됐다. 당연히 한화 선수들도 차기 감독에 대한 궁금증이 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선수들도 진짜 궁금해 했어요. 선수들 사이에서 도는 소문도 장난이 아니었죠. 구단 사무실에서 모 감독님과 계약한 서류를 봤다는 선수도 있었고, 대선 후보로 나오신 분과 친분이 있어 한화 감독으로 오게 됐다는 소문도 나돌았어요. 김응용 감독님과 관련된 얘기는 6일부터 들렸어요. 그때도 제가 선수들한테 그랬어요. 한화에는 연고도 없고 8년을 쉬신 분인데, 설마 오시겠느냐고. 그런데 정말 발표가 나더라고요. 진짜 깜짝 놀랐어요.”
이종범이 주루코치에 임명됐다는 소식은 말 그대로 ‘쇼킹’했다고 한다.
“종범이 형에다 (양)준혁이 형까지 이름이 오르내리더라고요. 큰일 났다 싶었어요. 도루 80개 하고 안타 2300개씩 치는 분들이 코치로 오시면 한화 선수들 실력이 성에 차겠어요? 그래도 제가 다 좋아하는 선배님들이라 기분은 좋더라고요. 다시 모여서 야구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그런데 종범이 형이 주루코치하기에는 좀 아깝지 않나요?”
장성호는 후보군에 오른 지도자들 중 딱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상관없었다고 말한다. 만약 자신이 마음 속에서 지운 지도자가 왔었다면 단장을 찾아가 다른 팀으로 보내달라고 했거나 야구를 그만뒀을 것이라는 얘기도 덧붙인다.
▲ 2000안타의 대기록을 세운 뒤 한용덕 감독대행으로 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
장성호한테 김응용 감독은 ‘믿음’과 ‘신뢰’의 지도자로 각인돼 있다. 고교 졸업 후 곧장 해태 유니폼을 입은 그한테 김응용 감독은 꾸준한 출전 기회를 제공하면서 장성호가 스스로 일어설 수 있기를 바랐다.
“이전에도 말한 적이 있는데, 저한테 김 감독님은 은인이세요. 신인 때도 못했고 입단 2년차 때도 마구 헤맸거든요. 2년차 전반기 때 1할9푼으로 마무리를 했는데도 후반기에 계속 내보내주시더라고요. 결국엔 2할9푼을 찍었어요. 그 다음부터 쑥쑥 성장을 했고요. 가능성을 봐주신 것 같아요. 신인 때 김 감독님을 만났다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큰 행운이었어요.”
항상 감사의 마음을 달고 살았던 장성호이지만, 김응용 감독한테 욕도 많이 먹었다고 회상한다.
“광저우로 전지훈련을 갔었는데 연봉협상이 안 돼 제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때 감독님께서 절 따로 불러선 의자 내던지시면서 야구 그만두고 한국 가라고 소리를 지르시더라고요. 시즌 성적이 한창 좋을 때였거든요. 3할4푼에다 홈런 20개, 80타점 정도 올리던 터라 절 보낼 수 없었으면서도 분위기를 잡으셨던 거죠. 그때 속으론 벌벌 떨었어요. 그러면서 저도 (한국) 가겠다고 큰소리쳤어요(웃음).”
1루수를 볼 때 한번은 원바운드 된 볼을 놓쳐서 안타를 만든 적이 있었다고 한다.
“게임 중이었는데도 절 복도로 부르시더라고요. 절 보지는 않으시고 야구장을 쳐다보시며 뒤로 계속 볼을 던지셨어요. 전 뒤에서 원 바운드되는 공을 잡느라 계속 뛰어다니고. 욕도 잘 하시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외모 뒷면에 아버지 같은 정이 있으신 분이에요. 감독님 스타일을 잘 알고 나면 그 분 밑에서 야구하는 게 어렵지 않아요. 오히려 더 편하죠. 그래서 더 잘하고 싶어요. 멋진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것 같아요.”
# 나를 돌아본 ‘기록’들
장성호는 2년 새 두 차례의 어깨 수술을 받으며 3년 연속 스프링캠프에 참가하지 못했다. 그로 인해 체력적인 부담과 한 번 슬럼프에 빠지면 금세 회복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수술 이후 이전의 성적으로 끌어올리기에 힘든 점이 많았다고 한다.
“3000루타-2000안타-1000타점은 시즌 전에 어느 정도 예상했던 기록이에요. 그러나 시즌 전에 세웠던 타율 2할8푼(0.263), 홈런 10개(9개), 60타점(52타점)에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두면서 장성호는 조금 김이 샜다는 얘기를 전한다.
“올 시즌 제대로만 쳤어도 홈런 10개, 60타점 정도는 어렵지 않게 이뤘을 거예요. 그런데 성적이 떨어지니까 의기소침해지는 면이 있더라고요.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내년에도 그 수치에 도달하지 못하면 옷을 벗겠다고 말했어요. 한화에서 부상 없이 치르는 첫 시즌일 수 있기 때문에 승부를 걸고 싶어요. 성적도 안 나면서 미련을 갖는 건 초라해 보일 것 같아요.”
주위에선 양준혁이 세운 2318안타 기록을 깨야 한다고 부추기지만 장성호는 “그 기록을 깨는 것보다는 경쟁력 있는 야구선수로 인정받는 게 더 중요하다”고 단호한 입장을 내비친다.
“내년에는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김태완과 정현석 때문에 더 치열한 자리 다툼이 벌어질 겁니다. 좋게 얘기하면 자극을 받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 ‘×줄’ 타는 거죠. 시합 많이 뛰면서 안타 치는 게 중요하지 그 기록 깨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뛰지 못하면 기회도 없는 거잖아요. 마음을 비웠어요. 욕심 낸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 홈런을 친 뒤 주먹을 불끈 쥐고 기뻐하는 장성호.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
장성호는 지난 시즌 동안 ‘찹 형’ 박찬호가 있어 행복했다고 말한다. 선수들한테 ‘불세출의 진정한 레전드’로 자리 잡고 있는 메이저리그 스타 박찬호와 함께 생활한 부분도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고 덧붙인다.
“찬호 형이 선수들한테 알게 모르게 많은 영향을 미쳤어요. 야구를 대하는 자세, 경기에 임하는 태도, 체력을 유지하는 비법, 훈련 노하우 등 다양한 경험들을 후배들한테 풀어내주셨습니다. 종종 라커룸에서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툭툭 던지곤 하세요. 그럴 땐 우리도 나이 드신 분이 말하는 거라 일부러 웃어줄 때가 많아요(웃음). 그중에는 ‘겁나게’ 유치한 농담도 있어요. 야한 말도 하시고. 그럴 때마다 제가 태클을 걸어요. ‘도대체 그런 얘긴 어디서 배우셨어요? 텍사스에서 배웠어요? 아니면 샌디에이고에서 배우셨어요?’하면서(웃음).”
장성호는 박찬호와 시즌 동안 서너 차례 술자리를 함께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잘 알려진 대로 박찬호는 주량이 세지 않은 편이다. 그런데 후배들과 어울리려고 술자리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
“20여 년을 미국에서 ‘외국인 선수’로 지내며 뼛 속까지 외로움이 자리해 있는 터라 후배들과 얘기하는 걸 정말 행복해 하셨어요. 찬호 형이 다 좋은데 노래방에 가면 좀 ‘안티’가 돼요. 혹시 아세요? 찬호 형이 음치에다 박치라는 사실을. 찬호 형 18번이 딱 세 곡 있거든요. 어딜 가든, 어디에서나 그 노래만 부르세요. 가끔 율동도 하시면서^^.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박찬호라는 선수가 아닌 그냥 인간 박찬호가 물씬 느껴집니다.”
장성호는 박찬호가 한화에서 1년 더 뛰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박찬호의 대답이 영 신통치 않다며 걱정을 내비친다.
“넥센과의 시즌 마지막 게임을 마치고 선수단 회식을 가졌는데 그 자리에서 제가 찬호 형한테 1년만 더 뛰어달라고 부탁했거든요. 그런데 찬호 형 반응이 별로였어요. 굳이 1년을 더 뛸 필요가 있겠냐면서. 지금도 가끔 찬호 형한테 전화해서 의중을 확인하고 있는데, 만약 찬호 형이 여기서 그만 선수 생활을 접는다면 제가 더 아쉬움을 크게 느낄 것 같아요. 밥도 잘 사주는 형인데^^.”
장성호는 인터뷰 말미에 한대화 전 감독을 입에 올렸다. KIA에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총대’를 메고 자신을 한화에 데려온 분이고, 그런 분 밑에서 야구하면서 두 차례의 수술로 성적다운 성적을 올리지 못해 항상 미안한 마음이 앞서 있었던 그였다.
“감독님 경질되시는 날, 무진장 술을 퍼마셨습니다. 감독님이 그렇게 되신 게 다 제 탓 같더라고요. 제가 뭔가 보여드린 것도 없고, 잘한 것도 없고, 아무 것도 해드린 게 없어서 너무 속상했어요. 몇 차례 전화를 드렸는데 안 받으시더라고요. 한 감독님께 큰 빚을 졌어요. 그걸 어떻게 갚아 나가야할지 생각이 많아집니다.”
장성호는 얼마 전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KIA에서 하고 싶다는 얘기를 농담처럼 전한 적이 있었다. 다시 그 얘기를 물었다.
“진짜예요. 은퇴는 친정팀인 KIA에서 하고 싶어요. 그럴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