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시세 희귀 포토카드에 고급 아파트 별명 붙어…물질만능주의 비판 속 글로벌 K팝 시장 확대 목소리도
#한 장 가격에 ‘입이 떡’
포카란 통상적으로 가수의 음반을 사면 랜덤으로 1장씩 들어있는 한정판 굿즈를 말한다. 이외에도 팬 관련 행사 등을 통해 포카를 얻을 수 있으며 아이돌 팬덤은 이를 ‘특전’이라고 부른다. 몇 년 사이 인기 아이돌 멤버가 잘 나온 셀카가 담긴 포카를 웃돈 주고 사고파는 문화가 생겼으며 이를 중개하는 플랫폼도 등장했다. 또한 아이돌 그룹 내에서 인기가 많은 멤버의 포토카드나 특정한 콘셉트의 사진이 들어간 포토카드는 고가에 거래되기 때문에 이를 내로라하는 고급 아파트에 빗대는 문화마저 생겨났다.
팬들은 음반과 특전에서 얻을 수 있는 높은 시세의 포카를 빗대어 ‘반포자이 포카’ ‘트리마제 포카’라고 부른다. 포카의 인기와 가격이 그만큼 높다는 의미다. 높은 시세 덕에 일부 팬들은 포카를 되파는 방식으로 일명 ‘포테크(포토카드+재테크)’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앨범을 1만~2만 원대에 구입한 뒤 포토카드를 팔면 수십만 원의 차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단, 팬 행사의 경우 희소한 포카를 얻을 가능성은 높지만 참여 비용이 커 재태크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한다.
희소한 포카는 실제로 적게는 수십 만 원, 많게는 100만 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된다. 몬스타엑스 민혁의 갬블러 포토카드는 50만 원대에 거래 글이 올라왔으며, 제로베이스원의 중국 국적 멤버 장하오의 친필 사인 포카는 번개장터에서 190만 원에 거래돼 화제된 바 있다. 지난 2월에는 같은 플랫폼에 몬스타엑스 멤버 민혁의 포토카드를 51만 원에 판매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해당 판매글에는 ‘몬스타엑스 민혁 댕포자이 반포자이 포카 양도해요’라는 문구가 적혔다.
포카 거래 시 주의해야 할 사항도 있다. 바로 빛 비춤 인증이다. 형광등 아래에 카드를 돌려가며 스크래치 유무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후 아주 미세한 스크래치도 없는 것을 확인하면 거래가 성사된다. 이렇듯 비싼 포카일수록 명품과 비슷한 수준의 엄격한 하자 확인 과정을 거친다. 또한, 택배 거래 시 포카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완충재를 사용하면서도 심미성까지 확보한 포장 방법이 보급됐다. 아이돌그룹 아이브의 포토카드를 포장하는 브이로그 영상은 조회수 15만 회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에 더해 자신이 모은 포카를 꾸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는 ‘포꾸(포토카드 꾸미기)’도 인기다. 색깔 펜이나 스티커를 활용해 포카를 꾸미고 완성본을 찍어 SNS에 공유하는 방식이다. 인스타그램에 ‘포꾸’를 검색하면 약 4만 6000개의 게시물이 나온다. 예쁘게 꾸민 포카를 모아둔 ‘포꾸’ 전용 계정도 있다. 이렇게 꾸며진 포카에 대한 수요도 만만치 않아 포카 거래 시장의 다변화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포카가 가치를 가지려면 결국 희소성이 있어야 한다. 연예기획사는 아이돌 멤버들의 포토카드를 그냥 판매하는 게 아니라, 앨범이나 팬 관련 행사를 통해서만 유통을 하다 보니 공급량이 조절돼 희소가치가 생겨나게 되고, 희소한 포토카드에 프리미엄을 붙여 판매하는 현상이 가능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물질주의에 사로잡힌 10대?
여기서 주목할 점은 10대들이 ‘반포자이’ ‘한남더힐’ ‘트리마제’와 같은 값비싼 고급 아파트의 의미를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거주지는 물론 자동차, 의류 등에 대한 지식이 해박한 청소년들이 많아지면서 이를 통해 계급을 나누는 사회 풍조 역시 점점 더 확장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어릴 때부터 물질을 중심으로 집단을 구분 짓는 세태가 사회 갈등 문제를 심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0대들이 사용하는 포카 전용 은어는 어른들이 부동산 시장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모습과 똑 닮았다. SNS 상에는 초등학생들이 외모가 수려한 아이돌의 사진에 대해 “이거 포카였으면 트리마제다”고 평하는가 하면, 중고거래 사이트에 “반포자이 양도합니다”와 같은 글을 올리기도 한다. 또 구하기 힘든 포토카드의 경우엔 부동산처럼 “매물이 없다”는 표현도 쓴다.
두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나도 학창시절에 HOT, 특히 강타의 팬이었다. 그 나이 때 아이들이 아이돌을 좋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하지만 아이돌 굿즈에 반포자이나 한남더힐 등 아파트 이름이 붙는 건 조금 어색하다. 너무 되바라진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다른 학부모는 “최근 초등생들 사이에서 휴거(휴먼시아 거지), 엘사(LH 사는 거지) 등 (주거지를) 비하하는 용어를 사용한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있다. 어른들이 사용하는 물질적인 계급 구분이 아이들에게 전파된 것 같아 속상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청소년들이 빌라에 사는 친구를 ‘빌거지’라고 부르거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급한 임대주택에 사는 친구에게 ‘휴거’ ‘엘사’ 등의 별명을 붙인다는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안긴 바 있다.
김헌식 평론가는 “어른 세대가 계급과 계층을 구분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용어들을 자녀 세대가 무분별하게 따라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아파트가 삶과 휴식의 공간이 아닌 환금성이 우선이 되는 문제에 기인한다”면서 “포카를 통해 충족해야 할 만족감보다는 재테크라는 관점이 더 앞서다 보니 아파트 브랜드가 등장하는 기성세대의 오류들이 답습되는 것 같다. ‘반포자이 포카’ 현상을 지적하려면 어른들부터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헌식 평론가는 해외에서 지적하고 있는 K팝 아이돌의 음반 판매량의 실체에 대해서도 언급하면서 “미국이나 영국 언론은 K팝 시장에서 포토카드가 인기를 끌고 있는 현상 자체를 비판한다. 포토카드를 얻기 위해 많은 앨범을 구매하게 되고, 이게 빌보드 같은 공신력 있는 차트에서 음반 판매량 수치로 나타나니 한국 아이돌의 음악 자체가 정말 사랑받고 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쉽게 말해 현재의 K팝 음반 판매량은 ‘배(음반)보다 배꼽(동봉 포토카드)이 더 큰 상태’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포카 거래 시장이 해외에서 갖는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기도 한다. 실제로 포카 등 K팝 아이돌 굿즈를 구매하려는 해외 소비자들이 한국 제품을 온라인으로 직접 구매하는 ‘역직구’ 시장도 급성장 중이다. 역직구는 해외 직구의 반대 개념으로 해외에서 온라인으로 국내 제품을 구매하는 걸 말한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역직구 거래 건수는 4364만 건, 거래액은 20억 3300만 달러(약 2조 6490억 원)로 2019년 대비 3배 이상으로 늘었다.
포카를 자주 거래하는 한 X(옛 트위터) 유저는 “X에서 거래하는 95%가 해외 팬이다. 이들의 특징은 한번에 포카를 대량으로 구매한다는 점이다. 보통 SNS 게시물을 보고 DM(다이렉트 메시지)으로 연락이 오는데, 사겠다는 수요층이 많아도 한 포카당 한 사람만 대답해주는 편이다. 해외 팬들은 답장이 온 순간 자신과 거래가 성립됐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