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브, 르세라핌 누르고 음악방송 1위…강서구 가상 캐릭터 ‘새로미’ 등 다방면 활용
#가수·유튜버 이어 공무원까지 등장
유튜브 통계업체 플레이보드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2023년 11월까지 집계된 누적 슈퍼챗(유튜브 실시간 후원금) 수익 상위 10명 가운데 7명이 일본의 버튜버였다. 이들은 많게는 연간 43억 원까지 수익을 올렸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버튜버만 수천 명에 이른다고 한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마켓워치는 2023년에 2조 8000억 원 규모였던 글로벌 버튜버 시장이 2030년에는 17조 원까지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표적으로 버튜버의 원조로 불리는 ‘키즈나 아이’는 2016년 활동을 시작해 유튜브 라이브 방송과 팬미팅, 공연 등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시청자들과 실시간으로 양방향 소통을 주고받으며 시공간을 넘어선 일종의 쇼를 제공한 셈이다. 키즈나 아이는 2022년 무기한 휴식을 선언하며 현재 활동을 멈춘 상태이지만 여전히 구독자 약 300만 명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구독자 수가 100만 명이 넘는 버튜버가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특히 ‘이세계아이돌(이세돌)’이 버튜버 돌풍을 이끌었다. 이세돌은 트위치에서 방송하다가 현재 아프리카TV로 이적한 버추얼 스트리머 ‘우왁굳’이 기획한 6인조 가상 걸그룹이다. 우왁굳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는 167만 명에 달하며, 우왁굳 팬카페는 네이퍼 카페 전체에서 3위로 기록돼있다. 우왁굳과 이세돌의 라이브 방송 평균 시청자 수 단순 합계는 15만 명에 달한다.
이세돌은 2021년 데뷔 앨범인 리와인드(RE:WIND) 발표와 동시에 Z세대와 알파세대(2010년 이후 출생)를 중심으로 커다란 팬덤을 끌어모았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이세돌은 음원사이트 멜론 명예의 전당(24시간 내 누적 스트리밍 수 100만 이상을 달성한 앨범)에 4차례 등극했다. 2번 연속 명예의 전당에 오른 걸그룹은 뉴진스를 제외하면 이세돌이 유일하다. 또한 2023년 8월 18일 발매한 앨범 ‘KIDDING’은 미국 빌보드 차트 K팝 부문 3위를 기록하고 ‘빌보드 글로벌 200’에 진입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세돌과 함께 버추얼 아이돌 ‘3대장’으로 분류되는 ‘스텔라이브’와 ‘플레이브’의 인기도 만만치 않다. 스텔라이브는 구독자 63만 명을 보유한 유명 스트리머 강지가 만든 걸그룹으로 1집 ‘Milky Way’가 유튜브 뮤직 급상승 차트 13위를 기록했다. 버추얼 보이그룹인 ‘플레이브’는 3월 9일 걸그룹 ‘르세라핌’과 가수 비비 등을 제치고 MBC ‘쇼! 음악중심’ 1위를 거머쥐었다. 버추얼 아이돌이 국내 공중파 음악방송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역사상 처음이다. 플레이브는 여느 아이돌처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일상을 공유하고 팬들과 소통하기도 한다.
이들의 인기는 오프라인에서도 이어진다. 최근 여의도 ‘더현대서울’에서 버추얼 아이돌 3대장의 팝업스토어가 열렸다. 소속사들에 따르면, 이 팝업스토어에는 하루 평균 5000명 이상의 팬들이 방문했다고 한다. 현대백화점은 3월 18일 ‘이세돌’ ‘스텔라이브’ ‘플레이브’ 등 버추얼 아이돌 세 팀의 팝업스토어를 운영한 한 달 동안 매출 70억 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같은 기간 일반 패션 팝업스토어에서 통상 일어나는 매출의 7배에 달한다.
이외에도 넷마블이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선보인 2023년 데뷔한 4인조 버추얼 아이돌 ‘메이브’의 ‘판도라’는 유튜브 조회수 2800만 회를 넘어섰으며, 2023년 11월 발표한 신곡 ‘What's My Name’도 조회수 1130만 회를 기록 중이다. 가수 김장훈(61)은 ‘록스타를 꿈꾸는 18세 버추얼 유튜버(버튜버)’라는 콘셉트의 ‘숲튽훈’으로 데뷔해 누리꾼들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버튜버의 역할은 가수만 있는 것이 아니다. 4월 10일 열리는 제22대 국회의원선거 개표방송을 준비 중인 KBS는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버튜버 캐릭터가 진행하는 정치 퀴즈쇼를 열고 시청자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할 예정이다. 또한 최초의 공무원 버튜버인 ‘새로미’는 서울 강서구의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2023년 2월 21일 공개된 새로미는 하루 만에 조회수 14만 회를 기록하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강서구의 구정 홍보용으로 만들어진 새로미는 보다 친숙하게 정보를 전달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30년 넘은 강서구 토박이라고 밝힌 누리꾼은 “강서구 유튜브 채널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새로미 덕에 영상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다”면서 “충주시 유튜브를 가끔 보곤 하는데, 막상 내가 사는 동네로 콘텐츠가 만들어지니 웃긴 것 이상으로 기분이 묘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사생활 걱정 없는 연예인(?)
버튜버의 인기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팬들은 차별화된 콘텐츠를 주된 이유로 꼽는다. 이세돌의 경우 멤버들을 뽑는 오디션 과정부터 팬들이 직접 참여했다. 버튜버와의 유대감을 높이고 팬들과의 일대일 서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또한 실제 연예인과 비교해도 노래나 춤 등의 수준이 크게 부족하지 않다는 점도 강조된다. 외모는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하지만 목소리나 모션은 실제 사람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세돌의 팬이라고 밝힌 한 누리꾼은 “버추얼 아이돌이라서 좋아한 게 아니라, 좋아하고 보니 버추얼 아이돌이었다. 살면서 ‘덕질’은 처음이지만 그래도 행복하다”고 언급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버추얼 캐릭터들의 성공 요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미’다. 현재 활용되는 버튜버들이 재미있고 신선하기 때문에 대중에게 접점이 생긴 것”이라면서 “버튜버와 버추얼 아이돌 등 다양한 개념이 젊은 세대에게 익숙해진 상황 자체도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앞으로도 더욱 가상 개념이 익숙해질 것이며, 상업적으로도 블루오션으로 부상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기존의 연예인들에 비해 버튜버가 갖는 가장 큰 장점은 실제 인간이 아닌 만큼 사생활 노출이 없고 사건·사고 등에 연루돼 탈퇴할 가능성도 없다는 것이다. 특히 각종 제약에서 자유롭다는 점에 착안해 마케팅에 활용되기도 한다. 실제로 플레이브의 경우 버추얼 장비 속에서 캐릭터를 연기하는 실제 사람이 누구인지 아직 밝힌 바 없다.
또한 버튜버는 언어나 문화의 경계를 넘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는 데도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 기존 아이돌은 해외 진출을 하는 데 있어 국내 시장 일부를 포기하는 등 리스크를 안고 진출해야 했지만, 버추얼 아이돌은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리스크는 제로이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전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할 수 있다.
버튜버가 자리잡기 용이한 환경도 주목해야 한다. Z세대와 알파세대는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 디지털문화 속에서 태어나 성장하며, 오프라인 공간에서 친구를 만나거나 뛰어노는 것보다 로블록스·제페토 등 메타버스에서 친구를 만나고 소통하며, 게임·웹툰·유튜브로 일상을 보내는 것이 익숙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역시 이러한 현상을 가속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들에게 버튜버는 이미 자연스러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