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한 번에 수백만원, 부담 크지만 단순노출 효과 무시 못해…오발송 사례도 적잖아, 시민들은 불편 호소
정치인이 보내는 문자가 일상 속에 스며들고 있다. 처음 보는 번호, 누구인지 알 수도 없는 정치인이 보낸 메시지가 대부분이다. 살고 있는 지역과 무관한 다른 지역의 정치인이 문자를 보내는 경우도 빈번하다. 많은 시민들은 정치인들의 문자를 ‘스팸’으로 생각하고 있다. 정치인들 입장은 다르다. 유세 문자 발송은 핵심 홍보 전략이다. 수도권 지역구 선거캠프에서 활동 중인 여권 관계자 말이다.
“문자메시지 발송을 통해 핵심적인 지지층 관심을 증폭시키고, 아직 어느 쪽으로 투표할지 미지수인 중도 무당층에겐 후보자 인지도를 각인시킬 수 있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지역구 전반에 걸쳐 후보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는 측면에서 문자 발송은 빠질 수 없는 전략이다.”
수도권 지역구 선거캠프에서 활동하는 한 야권 관계자는 “시민 한 분 한 분을 만나 뵙고 인사를 드리는 데엔 시간과 공간의 한계가 있는 만큼, 문자메시지를 통해 최대한 많은 분께 인사를 드릴 수 있다”면서 “지역을 위한 공약이라든지 정권 심판 필요성에 대한 부분을 정제해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많은 분께 홍보하려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평시에 정치인 문자메시지는 연말연시, 명절, 국정감사 시즌 등에 활발히 발송된다. 현역 의원과 지역 당협위원장 등이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통상적인 인사말이나 국정성과를 홍보하기 위한 목적이다.
선거철이라는 전시가 다가오면 메시지는 ‘유세 문자’로 바뀐다. 평시에 비해서 문자를 보내는 빈도도 높아진다. 지역구 출마를 노리는 정치인들은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고, 각인시키려는 목적으로 문자를 주기적으로 발송한다.
문제는 비용이다. 텍스트만 포함된 문자를 보낼 경우에도 한 번에 수백만 원이 소요된다. 유세 문자는 통상적으로 예비후보 등록 이후부터 발송하기 시작한다. 한 차례 유세 문자를 발송하는 데 500만 원이 든다고 가정하면, 문자메시지 10번 보내면 5000만 원이 드는 셈이다.
사진 등이 포함된 멀티미디어 문자메시지(MMS)를 보낼 경우엔 비용이 곱절이 된다. 얼마나 많은 전화번호를 확보하고 있는지에 따라 다르지만, 한 번 보낼 때 지출 규모가 1000만 원대가 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공천을 받기 전부터 지역 내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문자메시지 비용으로 지출되는 규모가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요신문 취재에 따르면 문자를 보내는 데엔 세 가지 옵션이 있다. 90자 미만 ‘단문’, 90자 이상 ‘장문’, 사진 포함 ‘포토’ 등 세 가지다. 두 개 업체 시세를 알아봤다. A 사는 단문 10원, 장문 31원, 포토 71.5원이었다. B 사는 단문 9.3원, 장문 28원, 포토 61원이었다. 옵션 가격에 발송대상자 수를 곱하면 문자메시지 한 차례당 단가가 나온다.
통상 지역 정치권에선 확보한 ‘명부’ 규모에 따라 조직력을 가늠할 수 있다. 각 후보마다 편차가 있지만 수만 명에서 수십만 명에 달하는 명부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정치권 명부는 업데이트를 하기 어려운 구조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부산 사람에게 서울 정치인 문자가 발송된다든지, 순천 사람에게 대전 정치인 문자가 발송된다든지 하는 오발송 사례가 잇따라 시민들이 불편함을 느끼는 사례가 늘고 있다.
거대 양당 공천이 한창이던 2월 비수도권 정치 신인 선거 캠프 관계자는 “문자를 보내는 게 상당한 부담”이라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남들이 다 문자로 홍보를 하니, 하지 않을 수도 없다”면서 “그러나 홍보에 쓸 수 있는 비용이 후보마다 천차만별이다 보니 어떤 방식과 빈도로 문자를 보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상당히 깊다”고 했다.
그는 “현역 의원이나 베테랑 정치인들이야 후원금을 기반으로 비용을 지출하면 되지만, 정치 신인들 같은 경우 공천 경쟁 과정에서부터 문자 발송에 상당한 힘을 주며 인지도 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선거철 각 캠프에선 유세 문자 발송과 관련해 전략적인 고민을 깊게 한다. 하지만 수신자인 시민들은 불편함을 호소한다. 서울에 거주하는 40대 남성 박 아무개 씨는 “휴대폰 알림이 오면 요즘은 거의 정치인들이 보내는 문자”라면서 “체감상 스팸 문자로 여겨진다”고 했다. 박 씨는 “내 전화번호가 어떻게 유출됐는지 걱정될 뿐 아니라, 내 지역구도 아닌데 왜 자꾸 문자를 보내는지도 궁금한 상황”이라고 불만을 표출했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50대 여성 정 아무개 씨는 “전화가 오면 여론조사고, 문자가 오면 정치인”이라면서 “거리에도 서로를 비방하는 정당현수막이 난무해 정치 피로감이 높아지는데, 개인 전화와 문자로도 정치가 침투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정 씨는 “선거 때 현수막과 문자에 돈을 그렇게 많이 쓰면 뭐하느냐”면서 “선거가 끝나고 나면 체감되는 변화가 없기 때문에 정치 관련 홍보활동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느껴진다. 문자를 차단하고 싶다”고 했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유세 문자를 멈추기 어렵다. 선거 컨설턴트로 활동했던 정치권 한 관계자는 “전국단위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람이지만, 지역구 국지전 국면에선 후보 개인의 인지도도 상당히 중요하다”면서 “인지도라는 측면은 노출 빈도에 따라 결정되는 측면이 강하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이른바 단순노출 효과인데, 노출이 되면 될수록 친숙함이 높아진다는 것”이라면서 “자주 시민들에게 본인 이름을 각인시키며 친숙함과 호감을 높이는 홍보 전략 일환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재명 대표나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아니고서야 입체적인 평가가 나오기 어려운 것이 지역 정치인들의 상황”이라면서 “거리 인사, 선거 공보물, 유세 문자 등을 제외하면 사실상 단순노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문자를 보내는 것을 멈출 수 없는 것”이라고 바라봤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