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 첫날 불법 다운로드 9만 건 넘어…문화대혁명 장면 “역사 부정적 묘사” 비난 확산
넷플릭스가 3월 21일 전 세계에 동시 공개한 오리지널 시리즈 ‘삼체’를 향해 중국의 누리꾼들이 연일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중국에는 넷플릭스가 정식으로 서비스되지 않고 있지만 불법 다운로드 방식으로 드라마를 확인한 누리꾼을 중심으로 작품을 향한 비난의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중국에서도, 글로벌에서도 ‘삼체’가 화제다. 넷플릭스가 사상 최고 제작비를 투입한 ‘삼체’는 중국의 동명 소설을 극화한 SF 장르의 드라마다. 극도로 발달한 외계 문명을 지구로 불러들인 천재 과학자의 선택이 인류에 거대한 비극을 몰고 온다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공개 첫 주 넷플릭스 집계 ‘글로벌 톱10’ 순위에서 TV쇼 부문(영어) 2위로 출발한 ‘삼체’는 2주째에 글로벌 1위로 등극했다.
#‘삼체’ 왜 중국에서 반발하나
‘삼체’(원제 3 Body Problem)는 중국의 류츠신 작가가 집필한 3부작 소설이 원작이다. 류 작가의 원작은 2015년 ‘SF 소설의 노벨문학상’으로 불리는 휴고상을 수상했다. 아시아 작품으로는 최초의 수상이다. 이에 힘입어 ‘삼체’는 전 세계에서 900만 부 이상이 팔렸고, 작품에 심취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삼체’를 읽는 동안만큼은 백악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사소하게 느껴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삼체’를 드라마와 영화로 옮기는 시도는 중국에서 먼저 시작됐다. 텐센트가 제작한 중국 드라마가 이미 2023년에 공개됐다. 원작에 충실한 중국 버전과 달리 이번 넷플릭스 시리즈는 극의 무대를 중국을 넘어 영국으로 넓히고,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교차하는 구성의 8부작 드라마로 완성했다.
‘삼체’가 주목받은 이유는 두 가지 사실 때문이다. 먼저 넷플릭스 사상 최대 제작비를 투입한 블록버스터라는 점에서 공개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미국 경제매체 포브스에 따르면 ‘삼체’의 편당 제작비는 2000만 달러(약 270억 원)다. 총 8편에 들어간 제작비가 1억 6000만 달러(2150억 원)에 달한다. 그동안 ‘기묘한 이야기’부터 ‘종이의 집’까지 전 세계 히트 시리즈를 꾸준히 내놓았던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을 투입한 작품이다.
넷플릭스가 이처럼 제작비를 아끼지 않은 데는 ‘삼체’를 기획한 제작진을 향한 기대와 신뢰가 작용했다. 공개 전부터 주목받은 또 다른 이유다. ‘삼체’는 미국 드라마의 전설로 꼽히는 HBO 오리지널 시리즈 ‘왕좌의 게임’을 만든 제작진이 내놓은 신작이다. ‘왕좌의 게임’을 집필한 데이비드 베니오프와 D. B. 와이스가 2020년부터 기획에 돌입하면서 ‘왕좌의 게임 SF 버전’으로 불리기도 했다.
기대 속에 출발한 ‘삼체’가 공개된 직후 가장 먼저 반응을 내놓은 곳은 중국 시청자들이다. 극 초반 집중적으로 다뤄지는 1960년대 중후반의 문화대혁명과 관련한 이야기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이 주를 이룬다. 중국의 역사를 부정적으로 그렸다는 지적과 함께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삼체’는 문화대혁명이 막 시작한 1966년, 중국의 한 명문대학교에서 벌어진 비난 집회 장면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어린 홍위병들에게 맞아 목숨을 잃는 물리학과 교수의 모습이 등장한다. 교수의 아내는 홍위병들의 편에 서서 남편을 고발하기까지 한다. 현장에서 부친이 죽어가는 모습과 모친의 배신을 목격한 딸은 큰 충격에 빠진다.
마오쩌둥에 의해 시작된 문화대혁명 당시의 상황을 그린 이런 내용은 중국 시청자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중국 내에서는 ‘삼체’ 공개 직후 ‘중국을 나쁘게 묘사하게 위해 드라마를 만들었다’ ‘서구 영웅주의의 시선으로 만든 작품’ 등의 비판이 이어진다. 중국 시청자들의 이런 반응은 영국 매체 가디언과 미국 CNN 등을 통해 집중적으로 다뤄지기도 했다.
부친이 홍위병에 맞아 죽는 비극을 목격한 딸은 내몽골의 벌목장으로 끌려가 고된 노동에 시달린다. 비극을 겪으면서 세상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가치관을 쌓아가고, 이후 참여한 정부의 비밀 천문 실험에서 우주인이 보낸 신호에 몰래 응답해 지구에 또 다른 비극을 초래한다.
#중국에서 볼 수 없는 넷플릭스
‘삼체’는 글로벌 인기 드라마로 떠올랐지만 정작 중국에서는 공개되지 않았다. 넷플릭스가 중국에서 정식으로 서비스되지 않고 있기 때이다. 그런데도 중국 시청자들이 ‘삼체’가 다룬 내용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데는 ‘불법’으로 드라마를 확인한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홍콩의 유력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삼체’ 공개 첫날인 3월 21일 중국 내 P2P 등 파일 공유 방식으로 이뤄진 다운로드가 9만여 건으로 나타났다. 다음 날인 3월 22일에도 불법 다운로드가 7만 건을 넘었다. 중국 현지 시청자들에게도 궁금한 작품이지만 볼 방법이 없어 ‘불법’을 택했다는 의미다. 이를 두고 ‘도둑 시청’이라는 지적도 일고 있다.
‘삼체’는 총 4명의 감독이 참여해 8편의 드라마를 나눠 연출했다. 중국인들의 ‘역사 왜곡’ 지적이 집중된 문화대혁명과 그 후의 중국 상황의 이야기는 초반 1·2부에 주로 담겼다. 이를 연출한 인물은 중국의 증국상(청궈샹) 감독으로 현재 젊은 중국 영화의 흐름을 이끄는 대표적인 연출자다. 한국에서도 리메이크된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와 ‘소년시절의 너’로도 유명하다. 1200만 관객을 동원한 최동훈 감독의 영화 ‘도둑들’에서 홍콩 도둑 무리의 일원인 조니 역을 맡아 한국 관객에게도 친숙한 배우이기도 하다.
제작진은 중국어에 능통하고 1960년대 이후 중국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깊은 증국상 감독에게 초반 부분의 연출을 맡겼다. 홍콩에서 태어나 캐나다에서 자란 증국상 감독은 중국어는 물론 영어도 능통해 ‘삼체를 연출할 적임자로 꼽혔다.
비록 중국 시청자의 심기를 거슬렸지만 ‘삼체’가 일으킨 글로벌 화제, 중국에서 제기되는 비판 여론, 한국 시청자까지 사로잡은 흥미진진한 SF 이야기는 곧 시즌2를 향한 기대감으로 이어진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