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경험 오래 쌓은 군의관 필요”…의과 장교 육성해 군·민간 의료 보완할까
의대 증원 이슈를 두고 윤석열 정부와 의료계 입장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의대 증원 규모를 2000명으로 못 박았고, 의료계는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을 비우면서 그 공백 일부를 메우는 건 군의관 몫이 됐다. 4월 1일 인성환 국가안보실 2차장은 국군수도병원과 중앙보훈병원을 돌며 의료 공백을 메우고 있는 군 병원 관계자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국군수도병원은 최근 수술할 곳을 찾지 못하던 국민 30여 명 수술을 시행한 바 있다. 중앙보훈병원은 3월 20일부터 응급실 개방을 통해 국민 1000여 명을 진료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 대란이 벌어지면서 군 병원들이 그 공백을 메우려 나섰지만, 현장에선 군의관 수도 꾸준히 부족했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4월 1일 윤석열 대통령도 대국민담화를 통해 군 의료체계 취약성을 우려했다. 윤 대통령은 “군은 총상, 화상 같은 외상과 화생방에 의한 호흡기 진료 등 일반 의료와 전혀 다른 특수성이 있어 군 경험을 오래 쌓은 의사가 필요하다”면서 “그런데 우리 군의관 2500여 명 가운데, 92%인 2300명은 3년 단기 복무 군의관으로 해마다 전체 군의관 30%인 750명이 신규 의사로 교체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군 병력이 48만 명인데 군 의료체계에서 장기 군의관은 130명밖에 되지 않고, 장기 군의관들도 의무 복무 기간만 마치면 군을 떠나고 있다”면서 “과거 국방부가 미국 국방의과대학과 일본 방위의과대학처럼 의무사관학교와 유사한 국방의학원 설립을 추진했지만 의료계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고 했다.
군에서는 윤 대통령이 직접 과거 ‘국방의학원 설립 추진’ 이력을 언급한 것을 눈 여겨 보고 있다고 전해진다. 한 군 관계자는 “요즘은 군인들도 군 병원보다 외진을 선호한다”면서 “이제 막 의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단기복무를 시작한 군의관에게 진료받는 대신 민간 현장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의사들에게 진료 및 수술 받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군에서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군의관을 육성해 군 의료체계를 민간 의료체계와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인프라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면서 “장기복무 군의관을 육성하기 시작하면 군 의료체계 발전 모멘텀뿐 아니라 격오지 의료 현장에서 대민 의료 서비스를 진행할 수 있는 ‘민군 하이브리드’ 군 의료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직 군 고위급 관계자는 “군 병원 권위가 우리나라처럼 낮은 케이스는 전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드물다”면서 “미국을 비롯한 다른 주요 국가에선 군 병원이 상당한 권위를 가지고 있고, 민간인들을 진료하기도 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단기복무 군의관 ‘동기부여 부재’로 인해 꾸준히 군 의료체계 불신이라는 과제를 극복하지 못해 왔다”면서 “간호사관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것처럼 의사를 육성하는 사관학교를 군에서 직접 만들 당위성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국립군의관의과대학을 운영하며 소위로 임관한 장교 중 인원을 선발해 의사를 육성하고 있다. 국립군의관의과대학은 미국에서 상당한 권위를 자랑하며 대통령 주치의를 단골로 배출해내고 있다. 학비는 무료고 재학 중인 장교는 월급을 수령하며 의과대학 과정을 밟게 된다. 장기복무라는 페널티에 따른 어드밴티지로 무상교육 및 급여 지급 등이 이뤄지는 셈이다.
일본도 방위성 산하 군의관 양성 국립교육 기관을 보유하고 있다. 1973년 설립된 방위의과대학교다. 중국은 인민해방군 제1~5군의대학을 각각 운영하고 있다. 이 중 광저우 소재 제1군의대학은 1979년 전국중점대학으로 확정돼 남방의과대학으로 간판을 바꿔달기도 했다.
한 안보 전문가는 “국방의대 창설론은 문재인 정부가 내세웠던 공공의대와는 또 다른 결을 가졌다”면서 “공공의대는 사실상 의대 육성 과정서 그 교육비를 국가가 부담하는 차원 담론이지만, 국방의대는 육성한 의사들이 자연스럽게 국가 소속으로 귀속돼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 의사 배치 균형감을 가져갈 수 있다는 측면이 장점으로 꼽힐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공공의대에서 육성한 의사들이 모두 수도권으로 몰려들면, ‘자유 의지’를 막을 수 없다”면서 “국방의대는 육성한 의사들을 국방부나 정부 소속으로 둬 전국적으로 효율적인 인력 안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민간 의료계와 이해관계가 충돌하지 않는 선에서 운용을 해나갈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의대 증원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는 비수도권 의사에 대한 수요 대비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것 때문”이라면서 “의대 정원이 늘더라도 정부가 전국적으로 의사 수급에 대한 균형감을 맞춰가려면 정부에서 관리하는 의사 인력 풀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나라에서도 군이 직접 군의관을 육성하는 제도가 있다. 바로 위탁교육제도다. 군에서 위탁교육생을 선발해 민간 의과대학에서 의사 교육 과정을 거치는 구조다. 위탁교육생 교육비는 국가에서 부담하며, 교육 과정 중에도 급여를 수령한다. 총 의무복무 기간은 19년이다. 본과 4년,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 등 교육과정 9년과 기존 장기 군의관 의무복무기간 10년을 합산하게 된다.
2023년 기준 군 의료기관 내 2400여 명 군의관 가운데 장기 군의관 비율은 7.7% 수준이다. 장기복무자 비율이 낮은 데다, 장기복무자도 의무복무 기한을 마치면 개원을 원하며 군을 떠나는 사례가 많다. 군 내부에선 의과교육 자체를 민간에서 받다보니 군에 대한 소속감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안보단체 관계자는 “군은 현재 ‘지속 가능한’ 군의관 인력이 필요한데, 현행 위탁교육 제도로는 군의관 수요를 충족하기 어렵다”면서 “정부와 의료계가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존 민간 의료진과 이해관계 충돌 여지가 적은 군의관을 정부가 직접 육성하는 방안이 갈등을 완화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 같은 스타 의사가 군에서 헌신하고 있지 않느냐”면서 “이런 시기를 말미암아 군 의료체계 및 인력 육성 인프라를 확대하는 초석을 다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