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400억 ‘광우상사’ 등 별풍선 상위권 점령…극단 선택 부른 치열한 경쟁, 돈세탁 의혹 등 논란
국내 유명 라이브 스트리밍 플랫폼 아프리카TV에서 현재 가장 인기 있는 방송 유형은 ‘엑셀 방송’이다. 엑셀 방송은 일반적으로 유명 남성 BJ가 주축이 돼 여러 여성 BJ를 출연자로 섭외해 일종의 크루(팀)로 뭉쳐 진행된다. 시청자가 BJ에게 후원하면 지목된 BJ는 앞에 나와 춤을 추는 걸로 리액션을 한다.
방송은 대략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후원금을 보내면서 한 BJ를 지목하면 해당 BJ 이름으로 별풍선이 적립되고 실시간으로 순위에 반영된다. 해당 BJ는 무대 가운데로 나와 액수에 따라 해당하는 춤을 춘다. 이를 본 다른 BJ를 응원하는 팬이, 자기가 응원하는 BJ를 지목해 후원하고 무대로 불러낸다. 후원 경쟁이 치열해지면 불리지 않은 다른 BJ들은 '놀러 왔냐'며 욕을 먹기 시작한다. 그러면 욕을 먹는 BJ를 응원하는 팬들도 후원금을 쏴서 이들도 무대로 불러낸다. 중간 중간 이벤트나 다양한 상황들을 도입해 진행하지만 기본 얼개는 이렇다.
엑셀이란 이름이 붙은 건 한쪽에 후원금이 각 BJ 별로 별풍선 숫자로 정렬돼서 나오기 때문이다. BJ마다 후원된 별풍선을 실시간으로 체크해 많이 받으면 위로 올라가고, 적게 받으면 내려간다. 보통 순위에 따라 부장, 차장 등 직급을 정하고 보상은 직급 별로 차등으로 해준다. 최저 후원을 받게 되면 해당 엑셀 방송에서 퇴출당한다.
2023년 아프리카TV 매출은 3476억 원이다. 대략 아프리카TV에서 활동하는 엑셀 방송은 10개 정도로 알려져 있다. 아프리카TV에는 수없이 많은 BJ가 활동 중이지만 매출에선 엑셀 방송 비중이 상당히 높다. 엑셀 방송 업계 ‘탑 티어’로 꼽히는 ‘커맨더지코’는 광우상사라는 엑셀 방송을 운영 중이다. 2023년 커맨더지코 방송에서 터진 별풍선(후원금)은 약 400억 원으로 알려졌다.
별풍선 계산 사이트인 ‘풍투데이’에 따르면 커맨더지코의 2024년 3월 별풍선은 대략 4300만 개, 약 43억 원 후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케이는 더케이(케크루)라는 엑셀 방송 크루를 운영 중인데, 2024년 3월 약 2379만 개 정도를 받아 23억 원 이상 매출을 올렸다. ‘이노레이블’이라는 엑셀 방송을 운영 중인 김인호는 3월 약 2334만 개 별풍선을 받았다. 2024년 3월 ‘정선컴퍼니’라는 엑셀 방송을 운영 중인 박퍼니는 약 2120만 개 별풍선을 받았다. 현재 별풍선 후원 순위 상위권은 사실상 엑셀 방송이 점령 중이다. 엑셀 방송 상위 10개 크루가 아프리카 매출 절반 가까이 책임진다는 말이 나오는 게 과언이 아닌 셈이다.
엄청난 별풍선 숫자와 별개로 시청자 숫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경우가 꽤 있다. 수억 원을 버는 엑셀 방송 중 시청자 300명에서 500명 정도인 경우도 있었다. 한 엑셀 방송에 출연한 BJ 매니저 등으로 일했던 관계자 B 씨는 “시청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경쟁이 중요하다. 10명 안 되는 시청자임에도 한 달에 별풍선 40만~50만 개(약 5000만 원)는 우습게 받는 경우가 많다”면서 “대부분 뷰봇(가짜 시청자로 시청자 수를 올리는 프로그램)으로 300명을 채울 뿐, 실제 시청자는 100명 정도인 방송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엑셀 방송은 일종의 유사 유흥업소 같은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에 메이저 유명 BJ들은 엑셀 방송 크루를 만드는 데 거부감이 있다는 얘기도 있었다. 대체로 엑셀 방송은 음지 지향이기 때문에 해당 BJ 이미지 소모가 크기 때문이다. B 씨는 “박퍼니의 정선컴퍼니 정도가 양지 지향이고, 이를 제외하면 대부분 엑셀 방송은 음지 지향이다. 양지 지향과 음지 지향은 명확하게 구분하긴 어렵지만 ‘유튜브에서 대중적으로 봤을 때 반응이 나쁘지 않은 정도’면 양지 지향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이제는 메이저 BJ들마저 너도나도 엑셀 방송에 뛰어들게 된 건 버는 수익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잘 버는 남자 BJ들에게도 상상을 초월하는 후원금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셈이다. 게임, 캠방 등 다른 콘텐츠가 주력이었던 인기 BJ들도 엑셀 방송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BJ 김인호는 2023년 8월, 박가린·BJ 케이는 2023년 11월, BJ 철구는 2024년 1월부터 엑셀 방송을 주최하고 있다. 물론 이 돈을 다 가져가는 건 아니다. 이 돈을 방송에 출연한 출연진들 직급에 따라 일정 비율로 나눈다.
예를 들어 광우상사 같은 경우 한 시즌 후원금을 많이 받은 BJ에 따라 직급을 부여한다. 위에서부터 부장 13%, 비서실장 11%, 차장 9%, 과장 7%, 대리 5%, 계장 4%, 주임 3%, 선임사원 2.2%, 사원 1.7%, 인턴장 1.4% 등으로 비율을 정하고 전체 후원금을 나눠 갖는다. 크루를 만든 메이저 BJ가 가져가는 금액은 경비를 떼고 약 50% 정도인 것으로 전해진다. 관계자 B 씨는 “각 엑셀 방송 크루마다 다르긴 하지만 표면적으로 보이는 비율보다는 작게 분배된다. 전체 액수에서 경비 등을 제외하고 나눠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엑셀 방송에 모이는 금액이 워낙 큰 만큼 10%만 받더라도 한 달에 몇억 원씩 받을 수 있게 된다. 직급 하나 차이가 꽤 큰 수익 차이를 만들어내는 만큼 셀프 후원처럼 스스로 쏘는 별풍선도 많다는 얘기도 있다. 관계자 B 씨는 “직급 한 단계만 올라가면 몇 퍼센트를 확보할 수 있기도 하고, 열혈(별풍선을 많이 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끼리 경쟁시키기 위해 내 돈으로 엑셀 방송에 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큰돈을 정산 받았음에도 돈이 없다는 BJ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엑셀 방송은 BJ에게 큰돈을 벌 수 있는 길인 데다, 메이저 BJ 방송에 참여해 인지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수익이 엄청나진 만큼 폐해도 만만치 않다. 엑셀 방송이라는 이름처럼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방송 시간 자체가 길다. 엑셀 방송은 보통 시즌제로 운영되는데, 각 방송마다 별풍선 개수가 누적되다 시즌 마지막 날에 직급이 최종적으로 결정된다.
직급이 결정되는 날을 흔히 직급전이라고 부르는데, 이날은 후원금 누적을 2배로 시켜주는 등 특별한 이벤트를 건다. 보통 일반적인 엑셀 방송 시간이 약 12시간에서 15시간 정도인 데다, 직급전 날에는 25시간에서 30시간 가까이 진행된다. 방송 중에 조는 사람도 나올 정도다.
BJ들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엑셀 방송에 자신을 위해 후원해 준 팬들을 위해, 방송이 끝난 이후에 각자 개인 방송을 다시 켜서 ‘감사하다’ 등의 말을 해야 소위 ‘민심’ 관리가 된다. 시즌마다 가장 적은 후원을 받은 BJ 몇 명은 퇴출당하기 때문에 민심 관리에 소홀할 수가 없다. 이 때문에 BJ마다 스트레스가 엄청나다는 후문이다. 관계자 B 씨는 “엑셀 방송을 보면 BJ들이 휴대전화에서 손을 못 떼는 걸 볼 수 있다. 다들 메신저로 후원금을 보낼 만한 사람들에게 ‘후원금 좀 달라’고 조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2023년 6월 인터넷 방송인 임지혜 씨는 부천 지역 엑셀 방송에 참여하다 과도한 경쟁으로 다툼이 벌어졌다. ‘머니투데이’에 따르면 해당 방송은 자극적 경쟁을 유도한 방식으로 진행됐고, 후원금 5만 원을 내면 BJ가 술을 마시는 규칙이 있었다고 한다. 가장 많은 후원금을 받은 A 씨가 임 씨에게 모욕적인 말을 했고, 이에 임 씨가 극단적 선택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BJ들이 퇴출당하지 않기 위해 ‘엑셀 방송’에서 자신을 위해 후원금을 보내달라며 ‘공약’을 거는데 이 공약 때문에 BJ와 팬들이 충돌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한 BJ는 ‘직급전에 몇 십만 개 이상 보내면 스웨디시 마사지를 해주겠다’는 등 성적인 무언가를 암시하는 공약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공약은 지켜지지 않았고, 해당 BJ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관계자는 B 씨는 “인방갤(DC인사이드 인터넷 방송 갤러리)에는 한 달에 몇 번씩 공약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글들이 올라온다. BJ들도 다급하다 보니 이런 공약을 올리지만, 사실 지켜지는 경우도 있겠지만 안 지켜지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면서 “어쩌면 이런 공약 사기가 사기일 수도 있지만, 공약으로 ‘1박 2일 여행+하트’ 써놓고 사실 하트는 진심 어린 수제 과자 증정이었다고 말하면 그만 아닌가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엑셀 방송을 운영하는 방송인도 큰손(고액 후원자)들이 중요한 만큼 따로 관리를 한다고 한다. B 씨는 “엑셀 크루 대표가 따로 큰손들을 모아 룸살롱이나 클럽 같은 곳에서 접대한다. 큰손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기 때문에, 큰손 하나가 떠나면 타격이 크다. 큰손 중 한 명이 유흥업소 여러 곳을 운영해서, 그가 운영하는 유흥업소 중 한 곳에서 곧잘 모인다고 들었다”고 설명했다.
워낙 큰돈이 몰리는 만큼 엑셀 방송을 두고 ‘돈세탁 의혹’도 나오고 있다. 불법적으로 번 돈을 엑셀 방송에 쏜 다음, 이를 환전해주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2023년 소위 ‘롤스로이스남’ 사건으로 불리는 신 아무개 씨 사건을 조사하면서 경찰이 범죄 수익을 ‘별풍선 깡’을 통해 세탁했다는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인터넷 방송을 하는 아프리카 여성 BJ와 짜고 한 번에 5억 원어치 별풍선을 후원한 뒤 나눠 갖는 식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엑셀 방송에서는 돈세탁 가능성이 작다고 보고 있다. BJ로 방송을 진행하는 C 씨는 “별풍선이 입금되면 BJ 등급에 따라 20%에서 40%를 떼고 입금된다. 최고 등급이라고 하더라도 20%를 뗀 뒤, 여기에 세금 등을 처리하면 반 정도가 날아간다. 더군다나 개인 방송이면 몰라도 엑셀 방송은 나눠줄 사람도 많다. 이 돈을 세탁해서 결국 남는 게 있어야 하는데 남는 게 없기 때문에 엑셀 방송은 별풍선 깡에 적합하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엑셀 방송의 폐해를 막기 위해서는 결국 아프리카TV가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대리결제 업체를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A 씨 동생은 “아프리카TV가 논란이 되면서 하루 충전을 1만 개(100만 원)로 규제했는데, 아무도 이를 지키지 않는다. 대리 충전 업체, 상품권 업체 등을 이용하면 하루 29만 개(2900만 원)까지 충전이 가능하다. 여기에 아이디를 여럿 사용하면 하루 1억 후원도 가능하다. 이걸 제대로 막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일요신문은 아프리카TV 측에 엑셀 방송 관련 질의를 했지만, 어떠한 답변도 오지 않았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