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해도 결과 통보 않는 등 국세청 내부 이관 과정 실수 남발…“조사 인력·역량 모두 보강해야”
탈세 제보자들이 국세청의 안일한 제보 처리 관행에 한숨을 내쉬고 있다. 접수된 제보의 내부 이관 처리나 조사 작업이 원활히 가동되지 않아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지난해 국세청 홈페이지를 통해 한 업체의 탈세 의혹을 제보한 A 씨(30·남)는 자신의 제보 내용이 일선 세무서로 이관된 소식을 수개월간 제대로 듣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A 씨는 제보 직후 국세청 관계자에게 해당 제보 건이 지역세무서로 이관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실제 이관은 되지 않았다. 이후 해당 제보 건은 복수의 세무서로 옮겨졌는데 A 씨는 이 역시 관련 통보를 받지 못했다.
A 씨는 “지난해 11월 B 지역 세무서로 이관됐다는 내용을 들었는데 ‘이관됐다’는 문자 하나 오지 않아서 연락해 문의했더니 C 지역 세무서로 이관됐다는 답을 들었다. 그런데 C 지역 세무서에선 이관받은 제보 건이 없다고 했다”며 “다시 연락 주겠다는 것을 기다렸고, 이번 달에 D 지역 세무서로 이관된 사실을 (내가) 직접 연락해 파악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관 여부만 듣는 데 4개월이 걸렸고, 그것도 직접 통화해서 (알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제보 접수가 처리됐는지, 조사가 이뤄지는지, 이관됐다면 어디로 이관됐는지 정도는 전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국회의원이 제보해도 이런 식으로 처리하나”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제보 처리 과정에서 신고 대상 업체명이 바뀐 황당 사례도 있다. B 씨(38·남)는 “지난 2월 접수한 제보 건이 타 지역 세무서로 이관되면서 해당 업체명이 다른 이름으로 바뀌었다”며 “이관됐다는 연락이 오지 않아 세무서에 연락했는데 제보자명은 나였지만, 신고한 업체명이 처음 들어보는 이름으로 바뀌어 있어 당황했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내가 첨부한 자료상의 업체명과 이관 접수된 업체명이 달라 (담당자가) 접수가 잘못됐다고 판단하면 조사 자체가 시작되지 않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국세청 관계자는 "신고된 사람의 사업자등록번호가 바뀌었거나 다른 사업자등록번호까지 함께 등록됐을 경우 종종 발생하는 일"이라며 "신고된 업체명이 제출된 자료와 다르다는 이유로 탈세 조사를 하지 않는 일은 없고, 자세히 확인해 조사가 필요한 부분은 조사를 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현재 국세청은 인터넷이나 서면, 전화 등을 통해 탈세 제보를 받고 있다. 제보가 접수되면 제보처리팀이 먼저 내용을 파악한 뒤 조사팀으로 넘긴다. 조사가 시작되면 제보자들은 구체적인 조사 내용을 공유할 수 없어 답답해 한다. 국세청 관계자는 “피제보자에 대한 추징세액 등 구체적인 제보 처리 내용은 개별 납세자의 과세정보이기에 제보자에게 제공할 수 없다”며 “다만 제보서가 오면 접수통지, 중간회신, 처리결과를 제보자에게 통지해 처리 진행 상황을 알린다”고 설명했다.
제보 처리 기간이 길어지면 국세청은 이에 대해서도 제보자에게 알릴 의무가 있다. 국세청의 ‘탈세제보자료 관리규정’ 제12조에는 ‘제6조 관할 세무서장 또는 지방국세청장은 처리 기간이 탈세 제보 접수안내 통지일로부터 60일 이상 소요될 경우 처리에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수 있음을 서면이나 전화, 전자우편 등으로 제보자에게 중간 회신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처리 결과 통지가 누락되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국세통계포털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접수된 탈세 제보는 △2019년 3만 339건 △2020년 2만 8276건 △2021년 3만 153건 △2022년 2만 5833건 △2023년 2만 5693건 등으로 매년 2만~3만 건이 접수된다. 이 가운데 실제 처리 조치된 제보는 △2019년 2만 3210건 △2020년 1만 8921건 △2021년 2만 297건 △2022년 1만 9903건 △2023년 2만 34건으로 집계됐다.
국세청 내부에서는 제보 이관 처리나 중간 공지 등에 실수가 발생하는 이유로 인력 부족 문제를 꺼낸다. 국세청 한 직원은 “현재 인력 수로는 접수되는 탈세 제보를 다 처리하는 데 무리가 있어 제보 처리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국세청 내 탈세제보 조사팀의 정확한 인원 수는 공개되지 않지만 전담팀을 신설하거나 인력을 늘려야 한다는 요구는 국세청 안팎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제보 건을 이관받아 실제 처리하는 지방국세청에 인력 증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업무 부담을 이유로 제보 자체를 숨기거나 누락시키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실제 지난해 10월 대전지방국세청과 청주세무서에서 탈세 제보 축소·은폐 의혹이 나와 감사원의 조사가 이뤄진 바 있다.
국세청 직원들 사이에선 제보 내용의 진위나 동기를 엄밀히 확인하는 과정에서 처리 실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 내부 관계자는 “누군가를 비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탈세 제보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보니 여러 제보 건을 거르고 파악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발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법전문가들은 탈세 제보가 사적 복수(공격)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종종 있지만 이 때문에 전체 탈세 제보 의미가 훼손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국세청은 세금 부과·징수를 하는 국가기관”이라며 “제보 의미가 시답지 않게 보이더라도 세법에 어긋나는 행위가 있는지 철저히 조사할 의무가 있다”고 짚었다.
국세청이 제보 내용의 신뢰도나 공익적 성격을 신속, 정확히 판단하는 역량을 스스로 높여야 한다는 주문도 있다.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국세청에 들어가는 탈세 제보 중 공익에 기여하는 제보가 있을 수 있어 이런 점을 판단해 빠르게 처리해야 한다”며 “제보 처리 업무의 체계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국세청에서 관련 절차를 총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