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불법 도박장 배경, 사이버 수사도 다뤄…“백창기와 제대로 붙었으면 마석도 죽었을 것”
“프랜차이즈 시리즈를 하고 싶단 막연한 생각은 14년 전 골방에서 ‘범죄도시’를 기획할 때 저 혼자 ‘이걸로 프랜차이즈를 만들어야지’ 하며 떠올렸던 거예요. 아무한테도 얘기 안 하다가 1편을 찍고 나서 제작진에게 처음 얘기했죠. 다들 ‘이게 잘 돼야 만들든지 말든지 하지’하면서 아무도 안 믿어줬거든요(웃음). 그런데 이렇게 다행히 제작해서 대중 앞에 보여드릴 수 있게 된 거죠. 제가 이런 걸 만들어 놓으면 누군가는 그걸 보고 용기 내서 또 다른 장르의 프랜차이즈를 만들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 시리즈들이 우리나라에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익숙한 맛’ 마동석은 ‘범죄도시4’에서도 여전한 일당백 무력을 자랑하는 형사 마석도를 연기한다. 2018년 필리핀을 근거지로 한 불법 온라인 도박 사이트와 그 운영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마석도는 이 작품에서 처음으로 ‘사이버 수사’에 살짝 발을 담근다. USB(컴퓨터용 이동식 연결 장치)와 SUV(스포츠 유틸리티 차량)를 헷갈리는 지식을 가지고도 사이버 수사에 뛰어든 그가 공개되면서 기존 ‘물리형 수사’ 비중이 줄어드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변함없는 ‘원펀치 형사’로 남아있어 시리즈 팬덤을 안심시켰다.
“강력계나 폭력계에서 오래 일하신 분들은 지능적인 수사보단 감과 촉이 더 발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시더라고요. 마석도도 그쪽으로 발달한 사람이죠. 제 생각에 1편보다 마석도가 능수능란하고 노련해진 게 자기는 그대로 형사로서 일을 하면서 동시에 사이버수사대를 투입 시키며 작전을 짠 부분에서 알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마 그전엔 그런 생각도 못했을걸요(웃음). 마석도의 지능수사는 프로파일러 권일용 교수님께 검증 받은 부분인데, 교수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마석도는 이렇게까지 똑똑하지 않을 것 같다’(웃음). 그래서 교수님과 논의를 통해서 마석도에게 어울리는 형사의 모습을 하나씩 조립해서 만들어나갔죠.”
‘범죄도시4’에서 등장하는 새 빌런 백창기(김무열 분)는 시리즈 최강의 무력을 지녔다는 점에서 이목을 끌었다. 필리핀 현지에서 불법 도박장을 직접 운영하며 작게는 돈세탁부터 크게는 살인까지 마다하지 않는 그는 특수부대 용병 출신이다. 상대가 몇이든 작은 단검 하나만으로 농락하듯이 손쉽게 죽여버리는 백창기를 두고 마동석은 “만일 백창기가 만전 상태로 마석도와 제대로 붙었다면, 마석도는 아마 죽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맨주먹으론 백창기가 복싱에 능숙한 마석도에게 지겠죠. 그런데 칼만 들면 몸 전체가 흉기가 되는 인물이에요. 칼이 없는 신에선 마석도에게 밀리지만 칼과 비슷한 것을 잡는 순간 마석도는 계속해서 당할 수밖에 없어요. 만일 백창기가 조금만 더 오래 칼을 잡고 있었다면 마석도는 아마 졌을 거예요. 그냥 그대로 놔뒀으면 마석도는 죽고 ‘범죄도시’ 시리즈도 앞으로 더 못 만들었겠죠(웃음). 정말 강한 빌런을 통해 ‘마석도도 간신히 이겨낸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사실 제가 3편에서도 진짜 많이 맞으면서 이긴 건데 사람들이 인정을 안 해주시더라고요(웃음).”
마석도를 아슬아슬한 지경까지 몰아붙이는 무력을 보여줘야 하다 보니 그를 연기할 배우를 찾는 것도 고민이 클 수밖에 없었다. 액션을 느리게 연기하는 방식으로 촬영한 뒤 편집 과정에서 배속을 거는 게 아니라 아예 실제 촬영에서 ‘리얼하게’ 때려야 한다는 ‘범죄도시 시리즈’ 현장의 특성상, 마동석과 맞붙어도 그 합을 제대로 맞춰야 할 배우가 필요했다. 오랜 고민과 논의 끝에 마동석과 2019년 영화 ‘악인전’에서 함께 했던 김무열이 낙점됐다.
“김무열 씨는 훌륭한 연기력에 훌륭한 인성을 갖춘 배우예요(웃음). 사실 이 정도 고난이도 액션과 연기를 하려면 영화를 준비하는 3개월만으론 힘들거든요. 이전에도 운동을 굉장히 많이 해봤거나 평소 몸을 잘 쓰는 사람이어야 했죠. 1편과 2편의 빌런은 막싸움에 능한 잔인하고 사나운 빌런인 반면 4편의 백창기는 전투력과 그 감각이 굉장히 뛰어나야만 했어요. 시리즈 빌런 가운데 가장 전투력이 세고 기술을 발휘할 정도로 싸우는 사람이 필요했는데 (김)무열이가 너무 잘해줬죠. 정말 감사했습니다(웃음).”
‘범죄도시 시리즈’의 모든 빌런이 모두 그렇듯, 김무열이 이처럼 극악무도한 빌런으로 묵직한 존재감을 주고 있는 동안 그 반대편엔 한없이 가벼운 인물이 등장한다. 1편 이후 시리즈의 ‘감초’처럼 활약하고 있는, 전직 빌런이자 현직 마석도의 악우(惡友)인 조선족 폭력조직의 두목 장이수(박지환 분)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거의 모든 코믹한 신과 개그 대사가 장이수 한 명에게만 몰아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마석도와 시리즈 최초로 완전한 ‘형사 콤비’로 활약하는 그에 대해 마동석은 “장이수에게만 개그 코드를 몰아준 것은 100% 계산된 설정”이라고 귀띔했다.
“장이수는 1편에 나왔던 굉장히 극악무도한 캐릭터인데 의외의 유머 코드가 있어서 마석도와의 티키타카를 통해 그 유머가 발생하게 되죠. 제가 아는 암흑가(?)에 계시던 분이 세월이 지나서 보니 예전처럼 날이 선 모습이 아니라 말랑말랑하게 변하셨더라고요. 장이수도 그렇게 변할 것 같았어요. 본질적으론 여전히 살짝 나쁜 짓을 하지만요(웃음). 특히 이번엔 마석도가 피해자 유족들에게 깊은 감정을 가지게 되다 보니 유머스럽게 행동하면 안 되는 지점들이 생겨요. 그래서 그걸 다 장이수에게 몰아줬는데 박지환 씨가 굉장히 부담스러워 하더라고요(웃음). 그런데 정말 너무나도 훌륭하게 해주셨죠.”
장이수가 가벼움을 모두 가져가고, 빌런 백창기와 형사 마석도에게 무겁고 어두운 부분이 크게 주어지면서 ‘범죄도시4’는 다소 밝은 분위기였던 3편에 비해 분위기가 사뭇 가라앉은 듯한 느낌을 준다. 이는 시리즈 첫 천만 관객을 달성했던 ‘범죄도시2’와 비슷한 결로 느껴진다. 바로 직전 작품이었던 ‘범죄도시3’도 천만을 기록하긴 했지만 ‘범죄도시 시리즈’ 팬덤의 기대치에는 미치지 못했던 만큼, 다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간 이 작품이 세 번째 천만을 기록하며 한국 영화 시리즈 역사상 최초의 ‘트리플 천만 영화’ 타이틀을 받게 될 것인지에 관심이 모인다.
“‘천만 영화’라는 걸 많이 생각 안 하려고 해요. 저희들끼리 항상 이야기하는 게 뭐냐면 ‘시리즈가 계속 되는 것만으로 우리에겐 역사적인 일이다’라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손익분기점만 넘어서도 ‘야 다행이다, 다음 편 또 만들 수 있겠다’ 하게 되죠(웃음). 사실 요즘 영화가 너무 재미있고 작품적으로 좋아도 흥행하지 못하는 영화들이 많아졌잖아요. 아직 영화 시장이 부흥기가 온 것도 아니라서 2편과 3편이 개봉할 때 불안정한 상황이었는데도 저희로선 너무 운이 좋았던 거죠. 저희가 뭔가를 한다고 해서 흥행이 결정되는 게 아니란 걸 알기 때문에 저희는 그냥 해야 할 일만 열심히 하려고요(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