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 전문 배우가 차린 ‘액션 백반집’ 그 자체…“제가 너무 강해서 걱정? 저를 믿지 말아보세요”
이름 석 자가 곧 장르가 되는 배우 마동석(53)이 그의 전매특허를 내세운 신작을 들고 대중 앞에 섰다. 대지진 후 무법천지 폐허가 된 세상에서 압도적인 무력을 지닌 겁 없는 사냥꾼이 적들을 마구잡이로 때려눕힌다. 군더더기 없는 스토리 라인 속에서 철저하게 액션 그 자체에만 집중해서 만들어진 그야말로 ‘마동석다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황야’의 이야기다. 그와 오랫동안 동고동락해온 허명행 무술감독의 첫 장편 연출 영화로도 주목받은 이 작품은 넷플릭스 공개 3일 만에 글로벌 TOP(톱) 10 영화 비영어 부문 1위, 전체 부문 2위, 82개국 TOP 10 리스트에 올라 화제를 낳기도 했다.
“허명행 감독에겐 이게 데뷔작인데 글로벌 1위를 한 거잖아요, 축하한다고 메시지를 보내줬죠.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동생이기도 하고 저와 오랫동안 작품을 함께한 동료이기도 해요. 무술 감독이라는 편견 없이 그냥 감독으로만 봐도 이 나라에서 제일 좋은 감독 가운데 한 명이라고 생각해요. 일단 기본적으로 캐릭터도 잘 잡고 이 영화가 뭘 가져가야 하는지도 잘 알죠. 사실 ‘황야’에는 원래 캐릭터들마다 과거사와 드라마가 다 있었는데 그걸 다 넣으려니 러닝타임이 3시간 반이 나오겠더라고요. 기획의도대로 철저히 오락 액션으로 가자, 해서 주저 없이 다 걷어내는데 그런 걸 결정하는 데 있어서 허 감독이 굉장히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황야’에서 마동석은 오직 힘이 지배하는 무법천지 속에서 살아가는 사냥꾼 남산을 연기했다. 대재난 이후 아들뻘인 지완(이준영 분)을 파트너 삼아 흉포한 짐승들을 사냥하며 삶을 꾸려온 남산은 어느 날 그가 딸처럼 아끼던 생존자 수나(노정의 분)가 미치광이 박사 기수(이희준 분)를 신처럼 추앙하는 군인들에게 납치당한 사실을 알고 짐승을 잡는 사냥꾼이 아닌 사람을 잡는 사냥꾼이 되기로 한다.
세상의 멸망과 맞물려 광기에 물든 군인들을 주먹과 무기로 번갈아 가며 응징하는 남산의 모습은 대중들에게 익숙한 마동석 그 자체로 다가오며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또동석(또 똑같은 마동석 캐릭터)이냐”는 불만 어린 시청 평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배경과 약간의 서사만 달라졌을 뿐 액션으로 시작해 액션으로 끝나는 문제 해결 방식에서 마동석의 이전 작품과 같은 기시감을 느낀다는 지적이다. 신작마다 늘 따라붙는 이 비판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마동석은 “저희도 고민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면서 그럼에도 ‘마동석 화(化)’를 회피하려 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사람은 어차피 팔 두 개, 다리 두 개를 가지고 있다 보니 최대한 다른 결을 보여주려고 해도 액션을 잘 모르는 사람 눈엔 다 비슷하게 보여요. 사실 ‘범죄도시’도 2보다 3에서 복싱 기술이 더 많이 쓰였는데 그걸 잘 모르면 그냥 ‘둘 다 싸우고 있네’로 끝나죠(웃음). 액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확 다르게 보이려면 장르 자체가 달라져야 하거든요. 아무래도 또 우리나라에선 제가 영화를, 특히 액션 영화를 많이 찍었다 보니 저를 보시면 느끼는 당연한 기시감 같은 게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걸 피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그냥 또 재미있게 만들면 되니까요.”
대중들이 마동석의 캐릭터와 작품에 비슷한 기시감을 느끼는 이유로는 그가 상상 이상으로 너무 강한 탓도 있을 터다. 마동석이 나오는 작품에선 영화 ‘부산행’(2016) 정도를 제외한다면 대부분 그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주먹으로 세계를 평정하는 식으로 막을 내리기 때문이다. 생존이 확실시되는 세계관 최강자 캐릭터가 한두 번 등장한다면 매력적이지만, 연달아 나온다면 작품의 긴장감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이 분석에 대해 마동석은 “저를 (생존할 것이라고) 믿지 말아 보세요”라는 농담을 던지면서도 캐릭터에 대한 믿음이 곧 배우에 대한 믿음은 아닐 것이라고 짚었다.
“‘황야’를 보시면 분명히 제가 많이 밀리는 장면이 있습니다. 굉장히 큰 데미지를 받는데도 대중들이 보시기에 남산이 멀쩡하다고 믿는 건 그게 마동석이라서가 아니라 주인공이기 때문이에요.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주인공이 살아남고 이기길 원하니까 그런 결말을 자연스럽게 예상하거든요. 그 예상을 바꾸기 위해 주인공을 죽이는 게 과연 새로운 결정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봐요. 그 안에서의 서스펜스와 액션의 다양함만 가져갈 수 있다면 그게 오히려 정답인 거죠. 모든 걸 새롭게 가려 했다면 저는 영화 초반에 악어고기 썰어 팔다가 불한당이 나타났을 때 거기서 죽었어야죠(웃음).”
비슷한 결로 자기 복제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를 딛고도 여전히 액션이란 장르에 매진하는 마동석의 뚝심은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그는 액션 영화야말로 자신의 인생을 뒤바꾼 터닝 포인트였다고 말한다. 스스로에게도 선물 같았던 것이 어느 순간 직업이 되고, 이제는 반대로 대중들에게 자신이 직접 선물로 선사할 수 있다는 게 데뷔 20년이 넘도록 여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고.
“제가 중학생 때 영화 ‘록키’를 보고 복싱을 시작하게 됐는데 그게 지금 마동석의 모든 액션의 베이스가 됐어요. 저는 어릴 때 성격이 다혈질이어서 만일 복싱을 안 했으면 우악스럽게 살았을 건데(웃음), 그 덕에 굉장히 차분해지고 겸손이 뭔지도 배우게 됐죠. 액션 영화는 제게 있어서 삶을 바꿔 준 것이기도 하고, 제가 엔터테이너로서 사람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할 수 있는 선물 같은 것이라고도 생각해요. 백반집에 맛있는 걸 먹으러 갔는데 곱창도 찾고 돈가스도 찾고 다른 음식들을 한 번에 다 찾을 순 없잖아요. 마찬가지로 액션을 할 땐 그 장르에 걸맞은 것을 사람들에게 줘야 하는 거죠.”
그의 말대로 백반집의 익숙한 백반 맛에 여전히 열광하는 대중들도 적지 않다. 한국 영화 시리즈 사상 최초로 총 3000만 관객을 동원한 ‘범죄도시’ 시리즈가 회를 거듭하면서 사랑받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팍팍한 현실을 살아가는 대중들에겐 마동석의 주먹 한 방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스크린 속 세상이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다. 호불호는 갈릴지언정 “장르가 마동석이고, 마동석이 곧 장르”라는 말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어찌 보면 기묘한 ‘마동석 현상’이 그의 작품마다 곳곳에 자리를 잡은 셈이다.
“‘장르가 마동석’이란 말을 제가 만든 건 아니어서요(웃음). 감사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저는 ‘인기는 메뚜기 한철’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걸 다 염두에 두진 않아요. 글로벌 1위 이런 게 아니어도 그냥 사람들이 제 작품을 함께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최대한 많은 분들이 재미있게 보도록 노력해서 만드는 게 제 일이라고도 생각하죠. 저를 장르라고 해주시는 건 제게 관심을 갖고 제 작품을 봐주신다는 거니까요. 감사하며 또 다른 재미있는 걸 만들어서 대중들이 제게 원하는 걸 충족시켜드리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