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한복판 불법광고 버젓이
2011년 정부가 ‘낙태에 대한 단속 및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이 수술만을 위한 ‘은밀한’ 중국 패키지여행 상품이 등장할 정도로 국내에선 낙태수술의 자취가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소수 전문의들에 의해 지하에서 성행되던 것으로 알려졌던 낙태수술이 이젠 대학가 및 역세권 일대 유명 대형 산부인과들의 주 수입원으로 자리 잡았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 관계자는 “낙태수술이 산부인과 병원에선 사실상 ‘효자상품’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덧붙였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지난 8월 헌법재판소가 ‘낙태 시술을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토록 한 형법 조항은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던 것이 실로 무색해지는 모습이다. 형법 270조 1항에 의하면 의사가 낙태 시술을 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형을 선고받게 돼 있다.
이처럼 법적 제재가 한층 엄격해졌음에도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 산부인과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낙태 수술에 ‘올인’하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서울 유명 대학교들이 밀집한 2호선 신촌 지하철역 일대에서는 최근 들어 ‘미혼 여성의 임신을 상담해준다’는 기묘한 내용을 담은 붉은색 네온사인들이 부쩍 늘어나 행인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이 네온사인의 출처를 알아보니 한 유명 ‘체인형’ 대형 산부인과의 광고였다.
광고 문구의 내용을 확인해보기 위해 기자는 17일 신촌의 대형 R 산부인과에 직접 찾아가 “‘미혼 여성 임신상담’ 광고를 보고 왔다”고 말해봤다. 담당 의사는 기자가 ‘임신이 된 것 같다’라는 말만 했는데도 진료 먼저 해보자는 얘기도 없이 “임신 6주일 경우 견적이 56만~70만 원 정도가 나온다. 이 정도면 저렴한 비용이다”라며 흥정을 시작했다. 이어 그는 “망설이다 수술을 하지 않고 2~3개월이 지나버리면 그 땐 비용이 100만 원 이상으로 크게 뛰니 서두르는 게 좋을 것”이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강남 L 산부인과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했다. 이곳 전문의 역시 초음파 검사도 하지 않은 채 “임신 초기라서 가격은 저렴하게 해주겠다. 현금으로 60만 원인데 10%를 내고 예약부터 하고 가라”고 말했다. 이어 “수술 날짜를 빨리 잡는 것이 좋겠다. 지체하면 수술비가 크게 올라 간다”는 조언도 뒤따랐다. 담당 전문의에 따르면 ‘미혼여성 임신상담’을 받고자 하는 환자들은 하루에 5~10명 선, 월평균으로만 따지면 100여 명이 넘는 적잖은 수다.
이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간호조무사에게 “처음에 전화로는 ‘낙태 수술은 안 한다’고 해서 실망했는데 직접 찾아오니까 (수술이) 가능하다고 말씀하셔서 안심이 된다”라고 하자 그는 “원래 L 병원이든 R 병원이든 간에 전화로는 절대 낙태해준다는 말 안한다. 요즘 프로포폴 단속에만 혈안이 돼있어서 산부인과 단속은 좀 뜸해졌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조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8일 대전에서는 정형외과 간판을 내건 한 ‘낙태 전문’ 병원이 경찰에 의해 발각되기도 했다. 당시 이 병원 전문의 A 씨는 수술 한 건당 시가(?)보다 저렴한 50여만 원 수준의 수술비를 받고 박리다매 형식의 불법 낙태를 해오다 덜미가 잡혔다.
이와 관련 낙태를 반대하고 있는 한 여의사 모임에서는 “‘비밀보장, 1인회복실’ 조건을 들먹이며 낙태를 종용하고 있는 낙태전문 병원이 생기고 있는 현실에 자괴감을 느낀다. 단란주점 광고도 아니고 네온사인으로 낙태 광고를 하다니 황당할 따름이다. 돈벌이에 눈이 멀다보니 의사라는 직함도 잊어버린 것 같다”며 비판했다.
실제로 단속이 뜸해진 최근의 경우 포털 사이트에서 ‘처녀 임신’, ‘임신수술전문’, ‘학생 임신 전문’, ‘24시간 차로 모셔서’ 등으로 검색하면 너무나도 손 쉽게 불법낙태병원을 알아볼 수 있다. 이 정도로 낙태전문 병원이 판을 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낙태전문 체인형 대형병원이 월마다 벌어들이는 수입은 어느 정도 될까. 의사 1명이 낙태 수술만으로 벌어들이는 월 총매출은 최소 2000여 만 원 이상 이라는 게 업계의 추측이다. 또 다른 산부인과 전문의 김 아무개 씨(40)는 “‘D/C’(낙태를 지칭하는 의학용어) 전문 체인이 한 달에 버는 금액은 상상을 초월한다. 월 2000만 원은 의사 1명이 하루에 70~80명 진료를 봐야지만 벌 수 있는 어마어마한 수치”라면서 “덕분에 소규모 개인병원에서도 알음알음 ‘D/C’를 하기 시작했다. 그거라도 안하면 문을 닫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른바 ‘체인형’ 대형병원에는 원래 환자가 많았는데 ‘D/C’까지 불법적으로 하는 건 양심적인 일부 개인 병원을 죽이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개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산부인과의 경우 대부분 진료 과목에 ‘피부, 미용’을 겸해서 운영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오전 9시부터 밤 11시 야근을 하면서 환자를 받고 피부과에 해당하는 미용 진료도 겸해야 간신히 병원 유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산부인과 전문의들 다수는 “현재 산부인과는 곪을 대로 곪은 상태”라며 “개인 산부인과는 이제 내리막길이다. 수익이 줄자 병원 유지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낙태수술을 선택하는 전문의가 알게 모르게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불법 낙태가 횡행하게 된 배경에는 시대감각이 뒤떨어지는 정부의 갑작스런 제도 변경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유명 여성 커뮤니티 ‘쌍코’에서는 불법낙태 실정을 두고 “정부가 대한민국을 미혼모 양성소로 만들려고 한다”며 비판하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 또 이들은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친부가 양육비를 의무적으로 내야하는 영국 등 일부 선진국처럼 제도적인 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지금처럼 여성의 낙태만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 출산율을 높이다보니 이런 불법전문 낙태병원이 나온 것”이라고 진단했다.
대검찰청 자료에 의하면 현재까지 낙태죄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된 의료인은 78명에 달한다. 그러나 앞으로 대형체인 전문병원을 상대로 한 수사가 진행된다면 낙태죄 위반 전문의의 수가 대폭 늘어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
서울권 여대 커뮤니티 ‘낙태정보’ 공유 봇물
낙태 여대생 얼마나 많으면…
“우리 동네 개인 산부인과는 40만 원만 달래요. 저렴한 편인 것 같아요. 추천.”
서울권 유명 여자대학 커뮤니티에서 ‘낙태전문’ 병원 리스트가 공유되고 있는 정황이 포착됐다. ‘배운 여자’의 상징으로 알려진 서울권 일부 유명 여자대학 커뮤니티 3~4곳에서 ‘낙태’, ‘중절’로 검색하면 병원리스트는 물론 수술비용, 의사 친절도 등 세세한 정보들이 공유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실제로 몇몇 게시판을 직접 검색해보니 ‘의사 성격’은 물론 병원 근처에서 바로 먹을 수 있는 ‘보양식’부터 구체적인 ‘수술 비용’까지 알아볼 수 있었다. 이를테면 “A 산부인과 원장은 성격이 차가워서 상담 받는 동안 상처받을 수 있다. 차라리 그 근처 B 산부인과에 가라. 수술비용은 53만 원부터 시작하는데 형편이 어렵다고 하면 40만 원까지 할인해주기도 한다. 옆에 설렁탕집도 있어서 수술 후 챙겨먹으면 좋다”는 식이다.
가장 많이 공유되는 건 수술 비용에 대한 정보다. 최근 낙태수술 비용 시세는 최소 35만 원에서 최대 300만 이상을 호가하는 실정이다. 체인형 대형 산부인과에서는 ‘부르는 게 값’이다. 기본이 53만 원부터 출발한다.
강간으로 인한 합법 낙태의 경우는 임신 6주에 5만 원이지만 불법 낙태의 경우 값이 크게 뛰기 때문에 지갑이 얇은 여대생들에게 더 큰 짐을 지우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낙태를 원하는 여대생들 중 일부는 가격이 저렴한 병원 정보를 찾아내 지방 원정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 여대생은 이를 두고 “경기도까지 가서 아이를 지우고 돌아오는 길이 마치 구만리 같았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병원 관련 정보 말고도 낙태 수술 후기, 낙태 경험 등 지극히 개인적인 글들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 모임(진오비)’ 대변인 최한나 산부인과 전문의는 “여대 커뮤니티에 올라온 낙태 후기 글들을 읽어보면 현재 불법낙태 실태가 단순히 상업적인 일부 산부인과와 실수로 임신한 여성들의 합작품만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고 평했다.
이에 대해 최 전문의는 “미혼모가 견디기 힘든 사회제도 하에선 낙태가 무조건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결국 ‘낙태금지법안’은 일부 양심 없는 병원의 ‘재테크’로만 이용될 것”이라며 “현재 미국 대선후보인 오바마와 롬니가 낙태를 둘러싸고 설전을 벌이는 것처럼 우리 대선후보 3인도 여성후보까지 나온 마당에 낙태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조속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낙태 여대생 얼마나 많으면…
“우리 동네 개인 산부인과는 40만 원만 달래요. 저렴한 편인 것 같아요. 추천.”
서울권 유명 여자대학 커뮤니티에서 ‘낙태전문’ 병원 리스트가 공유되고 있는 정황이 포착됐다. ‘배운 여자’의 상징으로 알려진 서울권 일부 유명 여자대학 커뮤니티 3~4곳에서 ‘낙태’, ‘중절’로 검색하면 병원리스트는 물론 수술비용, 의사 친절도 등 세세한 정보들이 공유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실제로 몇몇 게시판을 직접 검색해보니 ‘의사 성격’은 물론 병원 근처에서 바로 먹을 수 있는 ‘보양식’부터 구체적인 ‘수술 비용’까지 알아볼 수 있었다. 이를테면 “A 산부인과 원장은 성격이 차가워서 상담 받는 동안 상처받을 수 있다. 차라리 그 근처 B 산부인과에 가라. 수술비용은 53만 원부터 시작하는데 형편이 어렵다고 하면 40만 원까지 할인해주기도 한다. 옆에 설렁탕집도 있어서 수술 후 챙겨먹으면 좋다”는 식이다.
가장 많이 공유되는 건 수술 비용에 대한 정보다. 최근 낙태수술 비용 시세는 최소 35만 원에서 최대 300만 이상을 호가하는 실정이다. 체인형 대형 산부인과에서는 ‘부르는 게 값’이다. 기본이 53만 원부터 출발한다.
강간으로 인한 합법 낙태의 경우는 임신 6주에 5만 원이지만 불법 낙태의 경우 값이 크게 뛰기 때문에 지갑이 얇은 여대생들에게 더 큰 짐을 지우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낙태를 원하는 여대생들 중 일부는 가격이 저렴한 병원 정보를 찾아내 지방 원정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 여대생은 이를 두고 “경기도까지 가서 아이를 지우고 돌아오는 길이 마치 구만리 같았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병원 관련 정보 말고도 낙태 수술 후기, 낙태 경험 등 지극히 개인적인 글들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 모임(진오비)’ 대변인 최한나 산부인과 전문의는 “여대 커뮤니티에 올라온 낙태 후기 글들을 읽어보면 현재 불법낙태 실태가 단순히 상업적인 일부 산부인과와 실수로 임신한 여성들의 합작품만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고 평했다.
이에 대해 최 전문의는 “미혼모가 견디기 힘든 사회제도 하에선 낙태가 무조건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결국 ‘낙태금지법안’은 일부 양심 없는 병원의 ‘재테크’로만 이용될 것”이라며 “현재 미국 대선후보인 오바마와 롬니가 낙태를 둘러싸고 설전을 벌이는 것처럼 우리 대선후보 3인도 여성후보까지 나온 마당에 낙태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조속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