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위탁생과 제적 위기 학생만 출석…학생·당국 사이 낀 대학은 휴학계 승인 고심 중
#"단일대오로 교양수업까지 거부 중"
“자녀가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짐 챙겨 올라오라고 한 지 꽤 됐다. 요즘 개강했다는 기사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 의대생들은 학교로 돌아간 적 없다.”
지방의 한 국립대 의대생 자녀를 둔 학부모 A 씨는 “학과장이 학생들을 모아놓고 ‘돌아오라’고 설득했으나 아이들은 단일대오로 교양수업까지 거부 중”이라고 말했다.
전국 의대가 수업을 재개했으나 학생들은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일부 학교는 교양 혹은 이론 과목 위주로 비대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온라인 강의에도 출석하지 않는 학생들을 위해 강의 동영상을 올리고 언제든 들을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4월 말까지 접속하면 수업에 참여한 것으로 인정하기로 한 학교도 있다.
그러나 수업을 거부하는 의대생들의 입장은 견고하다. 오히려 개강 전보다 더 강경해진 태도를 보였다. 강원도 소재의 한 의대생은 “4월부터 수업을 전면 거부하는 중”이라며 “정부가 태도를 바꾸기 전까지는 교양수업도 듣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강한 학교의 출석률도 저조하긴 마찬가지다.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의대 등은 이미 3월부터 수업을 해오고 있으나 수업을 듣는 학생은 소수다. 어렵게 일요신문 취재에 응한 의대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수도권 소재의 한 의대의 경우 비대면 강의를 포함해도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이 10명이 채 안 된다. 이 가운데 일부는 한 번 더 유급되면 제적을 당하는 학생이다. 각 학교의 학칙마다 다르지만 통상 의대의 경우 두 번 유급 시 제적을 당하기 때문이다.
제적 위기의 학생을 제외하면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 대부분은 사관학교를 나와 위탁교육을 받고 있는 군 위탁생들이다. 의대 위탁교육은 장기복무 현역 군인을 대상으로 대학 전문교육 및 수련을 통해 군의관 요원을 양성하고 이를 군에서 장기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제도다. 정부는 현역장교 중 일부를 군 위탁생으로 임명해 정원 외 과정으로 의대에 편입시킨 뒤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면 군의관으로 복무하게 한다.
한편 의대생 학부모들은 앞장서서 자녀의 수업 거부를 응원하고 있다. 수도권 의대에 다니는 자녀를 둔 학부모는 일요신문에 “자녀의 수업 거부를 찬성한다. 휴학이 길어지면 아예 군대부터 보낼 생각”이라고 밝혔다. 앞서의 A 씨 역시 “어차피 이런 상황에서는 출석한다고 해도 제대로 된 교육을 못 받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수업 거부에 찬성 의사를 밝혔다. 그러면서 “일부 수업이 온라인으로 열리고 있지만 학생들 대부분은 불참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이에게 물어보니 학생들끼리 온라인으로 수업 거부 인증 사진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결국 휴학계 승인 고심하는 학교
학교는 개강 일정을 거듭 연기하고 있다. 4월 22일 각 대학에 따르면 15일 개강 예정이던 의대 16곳 가운데 절반인 8곳(가톨릭대, 경상국립대, 계명대, 단국대, 대구가톨릭대, 동아대, 부산대, 울산대)만 수업을 재개했다. 가톨릭관동대는 22일로 개강을 늦췄고 성균관대, 원광대, 조선대, 전남대, 건양대, 건국대는 29일로 개강을 연기했다. 중앙대 의대는 5월 1일 개강하겠다고 밝혔고 연세대 미래캠퍼스(원주)는 개강 일정조차 확정하지 못한 상황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40개 의대 가운데 수업 중인 학교는 21일 기준 23곳(57.5%)이다.
학생과 교육부 사이에 낀 학교 측은 난감한 상황이다. 법정 수업일수를 충족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 코앞이기 때문이다. 고등교육법 시행령은 학교 수업일수를 ‘매 학년도 30주 이상’으로 정하고 있어 통상 학기당 15주 이상의 수업시수를 확보해야 한다. 학생들의 유급을 막을 수 있는 데드라인은 4월 말, 아주 늦어도 5월 초라는 계산이 나오지만 학생들은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의대생들의 수업 복귀 가능성이 희미해지자 대학은 휴학계 승인까지도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의대는 학칙상 수업일수의 3분의 1 또는 4분의 1 이상 결석하면 F 학점 처리가 되는데 한 과목이라도 F 학점을 받으면 유급이다. 이에 대해 김현영 강원대 총장은 “도저히 안 되면 휴학을 받아주는 쪽으로도 검토하고 있다”며 “조정된 정원이 정해지면 학생들이 돌아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고 말했다. 이은직 연세대 의대 학장 역시 4월 19일 학교 홈페이지에 “국민의 건강과 사회에 봉사하는 의사를 양성해야 하는 책무를 수행하기 위해 휴학 승인을 포함한 모든 방법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교육부는 ‘동맹 휴학은 정당한 휴학 사유가 될 수 없다’며 휴학계 승인을 보류하라는 방침을 고수하는 한편 승인 시 절차와 요건을 따져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4월 22일 정례브리핑에서 “학사운영 정상화에 제도적으로, 법령적으로 제한되는 부분들이 있다면 유급을 최대한 막을 수 있게 조치하려고 하고 있다”면서도 대학의 휴학계 승인에 대해서는 “어떤 행정적, 재정적 조치가 필요한지는 대학에 파장이 있을 수 있어서 말할 수 없지만 조치는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군 의대 위탁교육’이란? 세금으로 교육 받고도 필수의료 선택 극소수
군 의대 위탁교육은 장기복무 현역 군인을 대상으로 대학 전문교육 및 수련을 통해 군의관 요원을 양성하고 이를 군에서 장기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제도다.
군 위탁생의 경우 신분은 군인이지만 생활은 여타 의대생들과 동일하다. 일반 학생들처럼 방학도 있고 본과 4년을 마치고 나면 수련 병원에서 전공의 생활을 한다. 군 위탁생규정 시행규칙 제7조(경비등의 지급기준)에 따라 입학금 및 등록금, 기타 경비 등을 국가에서 제공한다. 전학·전과 등의 변경은 군 발전과 국가 이익에 현저히 공헌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국방부 장관(부사관의 경우에는 소속군 참모총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런 이유로 일부 의대생과 학부모들은 군 위탁생 신분의 의대생을 약간은 불편한 눈으로 보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의대생 학부모는 군 위탁제도에 대해 “(군 위탁생은) 학비도 내지 않고 학교도 수도권 내에서 어느 정도 골라갈 수 있다. 의사가 되는 방법 중에서 가장 알려지지 않은 방법”이라며 “이들이야말로 국가를 위해서 세금으로 길러지는 의사들인데 정작 필수의료과를 선택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위탁교육을 통해 배출된 의사 장교들의 인기과 선택과 군 이탈률은 여러 번 지적되어 온 바 있다. 2011년 당시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1988년부터 2011년까지 위탁 교육생 총 38명이 전공과목을 선택했는데 총상 등을 치료할 외사 의사는 1명에 불과했다. 반면 피부과는 7명, 치과는 5명이 선택했다. 주승용 당시 민주당 의원은 “총상·화상 등을 수술할 수 있는 군의관을 육성하는 게 제도의 취지인데, 외과와 응급의학과 전공자는 각각 한 명에 불과한 실정”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비슷한 문제는 이듬해인 2012년에도 지적됐다. 김광진 당시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2012년 군 위탁생 100명 가운데 98명이 이른바 SKY 의대를 선택했는데 이 가운데 응급의학과와 외과를 선택한 장교는 단 2명뿐이었다. 2018년 감사원의 군 보건의료체계 운영실태 감사에서는 군위탁생과 의무복무 중인 장기군의관 6명이 심신장애를 이유로 조기전역한 후 의대에 복학해 전문의 과정을 수련하거나 민간병원에 취업한 것으로 조사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