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서 임상 2상 준비중…‘사기꾼’ 비난에도 40년 넘게 연구 “노벨상이 꿈”
#30년 동안 무허가 상태
천지산의 검증 과정은 꽤나 다사다난하다. 1996년 1월 출시된 천지산이 일부 말기 암 환자를 살려냈다는 소문이 퍼졌다. 검찰은 당시 무면허로 약을 판매하고 있던 배일주 씨를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위반 혐의로 구속 수사했다. 약 보름 만에 불구속 수사로 전환되면서 석방된 배 씨는 “경찰에게 납치당했으며, 얼굴과 옆구리 등을 수차례 구타당했다”고 주장했다.
언론도 검증에 가세했다. 1996년 2월 7일자 조선일보에서는 천지산의 정체와 배일주 씨의 석방 과정에 대해 다뤘다. 천지산이 효능이 없었다면 배 씨를 석방하라는 환자 13명의 탄원서도 없었을 것이라는 내용의 주장이 담겼다. 1996년 10월 21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천지산에 대한 여론의 움직임을 소개하면서 천지산의 원료가 비소였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무면허 한의사가 만든 약이 말기 암 환자를 치료했다는 증언들이 전해지면서 일부 의사들과 의학 전문가들이 임상 등 실험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의료계는 천지산의 원료가 독성 물질인 비소이며, 절망에 빠진 암 환자들을 속여 무허가 약품을 판매한다며 반발했다. 심지어 근래까지도 의료계와 천지산의 날선 공방은 이어지고 있다. 의사들이 주축이 된 매체 청년의사는 1996년 6월 임상분석 사례를 근거로 ‘천지산은 가짜 항암제’라는 주장을 펼쳤다. 약 20년이 지난 2016년, 청년의사 측은 천지산에 대한 회고 기사를 게재했는데 주식회사 천지산의 후신인 주식회사 케마스가 이에 대해 소송을 제기해 법원의 결정에 따라 청년의사 측은 반론보도 조치를 이행했다. 다만 법원은 “천지산이 항암제라거나 항암효과가 있는지 여부 등에 관해 판단한 것이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주식회사 천지산은 천지산의 주성분인 육산화사비소(As4O6, 약명 테트라스캅셀)에 독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천지산은 약명을 테트라스로 바꾸고 서울아산병원의 제1상 임상시험을 통과했다. 2005년 시행된 임상1상 이후 천지산 측은 “15명의 말기 암 환자 가운데 10명의 암 진행이 멈추거나 현저히 늦어지는 등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를 얻었다”고 발표했다.
테트라스의 독성에 대해 개발자인 배일주 씨는 확신에 찬 모습을 보였다. 4월 25일 만난 배 씨는 기자 앞에서 천지산 한 알을 꿀꺽 삼키며 “천지산은 항암 치료에도 탁월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먹어도 면역 체계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이렇게 챙겨 먹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2005년 곧바로 신청한 임상2상은 진전이 없었다. 당시 임상2상 과정이 지지부진했던 까닭에 대해 배일주 씨는 “우리나라에는 테트라스를 개발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해외로 눈을 돌린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케마스는 독일에서 임상2상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까지 테트라스는 식약처 허가를 받지 못한 상태다.
천지산의 기전으로 알려진 파이롭토시스 역시 국내 학계에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이롭토시스는 쉽게 말해 정상 세포를 놔두고 암 세포만을 타기팅해 사멸시키는 기전을 말한다. 배 씨는 약 30년 전부터 파이롭토시스의 가능성을 주장하고 있으며, 실제로 서울대학교 차세대융합기술 연구원 정밀의학센터 김성진·양경민 박사와 공동 연구를 진행해 2021년 2월에는 ‘CellDeath & Disease’라는 학술지에 파이롭토시스 관련 내용을 국내 최초로 논문으로 등재하기도 했다. 당시 배 씨는 교신저자로 해당 논문에 이름을 올렸다.
#의사·검사도 간증 참여?
현재 배일주 씨가 만든 테트라스를 직접 구매하거나 투약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배 씨에게는 의료 면허가 없고, 테트라스 역시 허가받지 않은 약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 천지산으로 항암효과를 봤다는 수많은 증언이 배일주 씨가 쓴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배 씨는 ‘암을 치료하는 세포사멸기전 파이롭토시스’를 통해 전직 의대 교수 모친, 의과대학 학과장 출신 의사의 6살짜리 아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전 검사장의 아내, 장관 출신 정치인의 아버지 등이 천지산을 먹고 치료가 됐다고 기술했다. 책에는 천지산을 먹고 치료됐다는 일부 환자의 의무기록사본과 CT 촬영 기록 등이 같이 수록됐다.
이외에도 배 씨는 케마스의 주주 명부 일부를 공개하며 유력 정치인 가족이나 법조인, 의사들이 케마스의 주주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대개 천지산의 효능을 직접 느끼고 항암제 개발을 위해 적게는 수백만 원부터 많게는 수천만 원을 투자하고 있다고 한다.
시판되지 못하는 약을 판매했다고 주장하면 책에 등장하는 이들로부터 명예훼손 고발을 당할 수도 있지 않겠냐는 질문에 배 씨는 “그들과 통화한 내용 등을 모두 증거로 남겨 놓았다. 어떻게 타인의 의무기록이나 CT 등 자료를 구할 수 있겠느냐. 그분들이 천지산의 효험을 겪고 연구를 위해 활용해 달라며 전해준 자료들”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케마스 측은 코로나19 바이러스 치료제에 대한 특허를 세계 최초로 받았다고 주장한다. 코로나19 치료제 연구 결과를 문재인 대통령과 질병관리청장에게 보냈으나 답을 받지 못했고, 연구과제로 5번 신청했지만 모두 선정되지 못했다고 한다. 배일주 씨는 바이오산업 전반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하며 “앞으로 정부가 국책과제로 바이오산업을 지원해, 제2의 반도체로 키워냈으면 좋겠다. 바이오산업에 묵묵히 기여하면서 나중에 노벨상까지 받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