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의 천국? 외로워서 ‘늑대’가 되므니다
동네 주민이 피를 많이 흘리며 길에서 죽어가던 여성을 발견해 신고했다. 곧 경찰청 특수반이 출동하고 언론도 남성의 검거과정을 보도하고자 헬리콥터까지 띄워 열띤 취재경쟁을 벌였다. 이 와중에 남성은 여성의 집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피해 여성을 찌른 칼로 자신의 목을 그어 자살했다.
사건 자체도 끔찍했지만 더 충격적인 사실은 잔인한 살인을 하고 자살한 가해자가 팔순 할아버지였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이 노인은 은퇴 전 경찰관으로 근무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일본에서는 이러한 노인들의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일본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상해치사, 살인 등 흉악한 범죄를 포함해 노인이 저지른 범죄가 과거 10년간 일본에서 20배가 넘게 급증했다. 2011년에도 65세 이상의 노인 5만여 명이 형사처벌을 받았다.
노인들이 일으키는 범죄는 가족이나 이웃을 때리는 폭행부터 같은 노인을 상대로 한 사기까지 실로 가지각색이다. 요즘에는 마약을 운반하거나 친지의 개인정보를 팔아넘기는 신종 노인범죄도 등장했다.
노인범죄는 계획적이라기보다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해 우발적으로 저질러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테면 지난 4월 이시가와 현에 사는 97세 남성은 친척집에 보행기에 의지해 걸어서 놀러갔다가 사촌 제수를 칼로 찔러 경상을 입혔다. 할아버지는 살인미수로 체포되었는데 “돈 문제로 다투다가 제수를 찌르게 됐다”고 경찰에 말했다. 제수는 84세 할머니였다.
지난 4월 나라 현에서는 85세 남편이 81세 아내를 아침밥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팡이로 때려 살해한 사건도 일어났다. 그런가하면 올 2월 도쿄 번화가 시부야에서는 74세 여성이 길을 가다가 61세 여성을 칼로 찔러 중상을 입혔다. 이 할머니는 61세 여성이 자신을 자꾸만 째려보는 것 같아 욱한 나머지 갖고 있던 칼로 찔렀다고 한다.
또 지난 5월 미야자키 현의 한 시골 마을에서는 86세 남성이 자신의 자전거에 부딪힌 45세 남성과 다툼을 벌이다가 손에 들고 있던 낫을 휘둘러 머리에 부상을 입혔다. 할아버지는 “죽일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진술했지만 살인미수로 체포되고 말았다.
또 하루 종일 말을 붙일 상대도 없이 혼자 사는 고독한 노인이 많아졌다는 점도 노인범죄 증가의 이유로 꼽힌다. 범죄 특집을 다룬 <주간스파>에 따르면 대인관계가 희박해진 노인은 외로움을 느끼며 살다가 그만 가족이나 친지는 물론 이웃이나 생판 모르는 남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도통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사람만 보면 요구만 늘어놓으며 쉽게 화를 내고 떼를 쓰다가 우발적으로 흉악한 범죄를 일으키는 경우가 잦다.
범죄를 저지른 노인을 취재해 <폭주노인>이란 책을 쓴 저널리스트 후지와라 도모미는 “노인의 사회적 고립을 어떻게 해소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하고 있다. 노인들이 혼자 고립되지 않고 폭넓은 교우관계를 쌓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노인범죄를 줄이는 최선의 대처법이라는 지적이다.
조승미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