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집승 사나이’ 박정환 등 한국 4명 8강 진출…돌풍의 ‘해머 소녀’ 우에노 결국 구쯔하오에 패배
이날 가장 주목받은 것은 한국랭킹 5위인 베테랑 강동윤 9단과 중국랭킹 1위 커제 9단의 대결이었다. 강동윤은 초반부터 줄곧 앞서나가다가 중반 이후 역전을 허용해 패색이 짙어졌다. 그러나 종반 상변 전투에서 상대의 방심을 틈타 상대 진영을 초토화시키며 짜릿한 역전승을 이끌어냈다.
#박정환 세계대회 3연속 반집승 진기록
커제 9단이 한물간 기사라고는 하지만 최근 컨디션이 올라오면서 다시 중국랭킹 1위 자리를 되찾았고, 나이가 여덟 살이나 차이 나기 때문에(강동윤 1989년생, 커제 1997년생) 전전(戰前)의 예상은 커제의 우세를 점치는 쪽이 많았다. 그러나 ‘버티기 장인’ 강동윤 9단의 끈적끈적한 기풍이 중국 1위를 잡아냈다.
중국 바둑팬들은 커제의 패배에 충격을 받은 모양이지만 사실 강동윤은 30대 중반이라 해도 호락호락한 기사가 절대 아니다. 강동윤을 길러낸 고 권갑룡 9단은 일찍이 “이세돌을 잡아낼 기사는 강동윤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 적이 있고, 실제 강동윤은 2009년 박카스배 천원전 결승에서 이세돌에게 승리한 바 있다. 후지쯔배와 LG배 우승으로 전성기를 보낸 강동윤의 승리가 전혀 이변이 아니라는 얘기다.
강동윤에 이어서는 박정환 9단의 분전도 눈길을 끌었다. 란커배에 앞서 열린 응씨배 본선 진출전에서 일본의 여자 강자 우에노 아사미 5단을 상대로 반집 역전승을 거뒀던 박정환은 란커배에서도 어려운 승부를 이어갔다.
한국랭킹 3위와 중국랭킹 3위의 정면충돌로 관심을 끌었던 32강전 리쉬안하오 9단과의 대국에서 박정환은 마지막 끝내기 단계에서 뒷심을 발휘, 반집 역전승을 거뒀다. 박정환의 악전고투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어렵게 16강에 오른 박정환은 중국 15위 셰커 9단을 상대로도 다시 반집승을 거둬 세계대회에서 백으로 3연속 반집승을 거두는 진기한 기록을 남겼다.
이 밖에 2024년 세계대회 전관왕에 도전하는 신진서는 첫 판에서 자오천위 9단에게 진땀승을 거뒀지만, 16강전 장타오 8단에게는 완승을 거두며 컨디션에 이상이 없음을 알렸고 변상일은 미위팅 9단, 장치룬 8단을 연파하고 8강에 올랐다.
그러나 함께 출전했던 신민준, 김명훈, 설현준, 최명훈 9단은 각각 중국 딩하오 9단, 장치룬 8단, 커제, 판팅위 9단에게 패하며 16강행이 좌절됐다.
#‘해머 소녀’의 돌풍
이번 취저우 란커배에서는 일본의 여자기사 우에노 아사미 5단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우에노의 활약은 앞서 열렸던 응씨배 본선에서 예고돼 있었다. 한국의 박정환 9단을 만난 우에노 아사미는 종반 승리 확률 99%를 찍으며 거의 그로기 상태로 몰아넣었다가 막판 잇단 실수로 반집패를 당했다.
이번 란커배 본선에 다시 출전한 그는 첫 판에서 한국의 박민규 9단(한국랭킹 11위)을 반집으로 꺾은 데 이어 32강전에서는 지난해 삼성화재배 준우승자이자 농심배 7연승의 주역 중국 세얼하오 9단마저 침몰시키며 16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일본 여자기사가 세계대회 본선 16강에 오른 것은 우에노 아사미가 처음이며 이번에 참가한 4명의 여기사 가운데 유일하게 생존에 성공했다.
올해 23세인 우에노 아사미 5단은 2022년 센코컵 월드바둑여자최강전과 일본 신인왕전 등의 기전에서 13번의 우승 경력이 있다. 신인왕전은 일본의 남녀기사가 모두 참가하는 대회인데 여자기사가 우승한 것은 일본기원 역사상 처음이다. 동생 우에노 리사 4단과 함께 자매기사로도 유명한 우에노 아사미는 170cm의 큰 키에 강렬하면서도 파이팅 넘치는 공격바둑을 두는 것으로 유명하다. 별명도 그에 걸맞게 ‘해머 소녀’다.
하지만 ‘해머 소녀’의 돌풍은 더 이상 이어지진 않았다. 다음 상대가 실력은 정상급이면서도 최정 9단이나 김은지 9단 등 여자기사들에게 일격을 허용했던 구쯔하오 9단이었기에 다시 한 번 이변을 기대했지만 정신을 차린 구쯔하오는 역시 강했다.
한편 16강전이 끝나고 곧장 이어진 8강 대진추첨 결과 신진서 9단과 양딩신 9단의 대결이 성사됐다. 박정환 9단은 구쯔하오 9단과, 강동윤 9단은 딩하오 9단과 한·중전을 벌인다. 또 변상일 9단은 이야마 유타 9단과 한일전을 치른다.
8강전과 4강전은 6월 중국 신장에서 속개될 예정이며, 3번기로 치러지는 결승전은 8월 취저우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제2회 취저우 란커배 세계바둑오픈전의 우승 상금은 180만 위안(약 3억 4000만 원)이며, 준우승 상금은 60만 위안(약 1억 1300만 원)이다. 중국 바둑룰을 적용해 덤은 7집 반이며, 제한 시간은 각자 2시간에 1분 초읽기 5회씩이 주어진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