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편 어렵다며 통큰 투자 납득이 안돼 납득이!
▲ 고려대학교는 김재호 이사장이 회장으로 있는 채널A에만 25억 원을 투자했다가 논란이 일자 최근 전액 회수했다. 일요신문 DB |
“우리도 죽을 맛이다.” 살인적인 대학등록금으로 인해 학생들을 사지로 내몬다는 사회적 비난이 일자 대학 측에서는 재단의 재정난을 들먹이며 앓는 소리를 냈다. 지난해부터 정부가 나서 물가안정 대책 일환으로 대학등록금 동결을 권고했으나 이마저도 반짝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을 뿐이었다. 겉으로는 인상률을 억제하는 척하면서 학생들에게 돌아갈 장학금 혜택을 축소하는 등 꼼수를 부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곡소리를 내던 일부 대학에서 수익 창출이 불분명한 종합편성채널(종편)에 수억 원을 투자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 게다가 종편에 투자한 대다수의 대학은 교직원의 연금 및 의료보험 법정부담금도 제대로 납부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학교법인으로서 최소한의 역할도 하지 않은 채 무리한 투자를 감행한 것이다. 사립대학의 종편 투자 실태를 파헤쳐봤다.
전국 사립대학 및 전문대학을 대상으로 종편 투자 실태를 조사한 결과 적지 않은 금액이 종편에 흘러들어간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21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유은혜 민주통합당 의원은 13개의 대학에서 총 129억 원을 종편에 투자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는 올해 2월을 기준으로 각 대학별 홈페이지 및 공익법인 공시시스템을 참고해 도출된 결과다.
▲ 수원대학교(사진)와 한양대학교는 종편에 각각 50억 원과 6억 원을 투자했다. |
▲ 수원대학교와 한양대학교(사진)는 종편에 각각 50억 원과 6억 원을 투자했다. |
물론 사립대학이 종편에 주식투자를 했다고 해서 법적으로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2007년 ‘대학 경쟁력 강화 방안’의 일환으로 사립대에서도 적립금의 일정 한도에서 주식이나 펀드 투자를 허용했기 때문이다.
본래 사립대학은 손실 위험이 따르는 주식과 같은 분야에 대해서는 적립금을 이용한 투자가 법적으로 금지돼 있었다. 주요 수입원인 대학등록금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주식투자가 허용되기 이전에도 일부 대학에서는 주식을 보유하고 있긴 했으나 대부분 재단이 출연한 수익용 자산이거나 기부금 명목으로 기증받은 것들뿐이었다.
하지만 은행예금과 같은 위험 부담이 낮은 투자처의 경우 수익률이 좋지 못했고 이에 대학 측에서는 학교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자금을 확보해야 한다며 주식투자 허용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자칫 학생들의 등록금을 공중에 날릴 수도 있는 위험성 탓에 반대의 여론도 만만치 않았으나 정부도 등록금에 의존하는 사립대의 재정구조를 개선하겠다며 적립금 투자를 허용했다.
그러나 우려했던 바는 현실이 됐다. 주식 및 펀드 투자 허용이 된 다음해 12개의 대학에서 총 1922여억 원을 투자해 357억 원 상당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액의 손실을 입은 대학들은 하나같이 “실패를 예상하지 못했다”며 “앞으로 투자에 있어서 더욱 신중을 기하겠다”는 말로 사태를 잠재우려 했을 뿐이었다.
이처럼 주식투자로 인해 천문학적인 손실을 입어도 법적으로 책임을 물을 순 없지만 그렇다고 도의적 책임까지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번 종편 투자도 마찬가지다. 법인회계 및 교비회계까지 동원해 종편에 투자해놓고 재정난을 이유로 과도하게 등록금을 인상시켰으며 법정부담금도 제대로 충당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기본적으로 투자의 기본은 수익 창출인데 누가 봐도 가치가 불투명한 종편에 투자했다는 사실에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우선 회계별 투자 현황을 살펴보면 대부분은 법인회계에서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법인회계는 대학 지원이 일차적 목적으로 투자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이뤄진다. 종편 투자 역시 총 9대 대학(고려대, 극동대, 단국대, 동서대, 성신여대, 세종대, 수원대, 영산대, 우송대)이 법인회계에서 102억 원을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산학협력을 통해 학생들의 실험ㆍ실습과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목적인 산학협력단회계에서도 총 3개 대학(고려대, 이화여대, 한양대)이 15억 원을 투자했으며 교비회계에서 투자를 한 곳도 있었다. 교비회계는 학생들의 교육활동에 직접 지출되는 비용으로 가장 엄격하게 관리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4개 대학(단국대, 우송대, 한국외대, 영진전문대)이 모두 13억 원을 투자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대학은 2개 이상의 회계에서 투자를 하기도 했다.
권명자 회계학 박사는 “사립대학의 주식 투자는 전적으로 학교 측의 판단에 달려있다. ‘특정회계에서 어떤 경우에만 투자를 해야 한다’는 법적규정은 없다. 교비회계도 이곳에 속하는 수입은 다른 회계에 전출하거나 대여할 수 없게 돼 있지만 여기서 발생한 적립금을 투자하는 것까지 막고 있진 않다”며 “사립대학이 법적 허술함을 교묘히 이용해 함부로 주식투자에 손을 대고 있다. 만약 개인의 돈이거나 일반 기업체였다면 이처럼 함부로 투자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성신여대의 경우 지난해 23억 원에 달하는 법정부담금 중 단 0.4%만 부담했고 극동대와 단국대도 채 10%도 부담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교비회계에서 수십억대의 금액이 지출됐다. 나머지 대학도 평균 20~30%의 부담률을 기록했으며 그나마 영산대가 전액을, 우송대가 80.5%의 부담률을 기록해 양호한 편에 속했다.
법정부담금을 교비회계에서 충당했을뿐더러 전국 평균보다 높은 등록금인상률을 기록한 대학도 있었다. 2010년 대비 2011년 등록금 인상률을 살펴본 결과 종편에 투자한 13개 대학 중 총 8개 대학이 전국 평균인 2.1%보다 높은 비율로 등록금을 인상한 것으로 드러났다. 세종대가 4.3%로 가장 높은 인상률을 보였으며 단국대도 4%를 인상해 전국평균보다 2배 가까이 높았다.
이에 대해 유은혜 의원은 “종편에 투자한 대부분의 대학은 예산이 있어도 법적으로 부여된 최소한의 역할도 하지 않았다. 법정부담금도 내지 못할 정도로 재정이 어려워 등록금을 인상해놓고선 당장 수익을 올릴 수도 없는 종편에 앞다퉈 투자한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라며 “특정 언론에 대한 배려와 관심을 보이듯이 학생들의 어려운 사정을 헤아리는 것이 교육기관의 본분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종편 투자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자 해당 대학들은 나름의 입장을 표명했다. 물론 대답은 한결같았다. “투자 당시 종편의 가치를 높게 샀고 향후 수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또한 이사회 및 의결기구를 통해 충분한 논의를 거친 끝에 적법한 절차를 거쳐 주식을 취득했기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특히 채널A에 25억 원을 투자했던 고려대는 취재 결과 이미 종편에 투자한 금액을 회수한 것으로 밝혀졌다. 고려대 관계자는 “자금에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종편에 투자를 할 수 있었다. 채널A를 선택한 것은 수익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지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며 “지난해부터 계속 논란이 돼서 우리는 종편에 투자한 금액을 전액 회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예산에 여유가 있음에도 법정부담금을 제대로 부담하지 못한 점이나 등록금 인상에 대해서는 답변을 피했다.
교비회계에서 투자를 했던 한국외대는 “재무교칙에 의거해 교비회계에서도 투자금을 마련할 수 있어 법적으로 문제될 부분은 없다. 수익성이 없는 종편을 선택한 것에 대해서도 말이 많은데 투자 당시에는 상황이 달랐다”며 “그때는 종편 출범과 대선이 맞물리는 등 언론투자에 대한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는 분위기였다. 펀드 같은 금융상품보다 실체가 있는 종편에 투자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어쨌든 현재는 종편 상황이 좋지 않으니 일단 지켜보는 입장이다”라고 설명했다.
종편 투자 사실을 숨기고 있다는 의혹을 받은 한양대도 “잘못 알려진 사실”이라고 해명했다. 한양대는 산학협력단회계에서 종편에 투자를 하고도 대학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산학협력단 결산서의 부속명세서에 이 사실을 명시하지 않아 은폐 의혹을 받아왔다.
이에 한양대 관계자는 “산학협력단체는 학교법인과 별개로 운영되기 때문에 일일이 체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를 하지 않았을 뿐 공시 사이트에는 투자 사실을 알렸기에 숨기려 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반박했다.
이 같은 사립대학의 종편 투자 논란에 대해 한국대학교육연구소 김재삼 연구원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내세웠다.
“종편 사태도 애초 투자 시점부터 가치가 없었는데 무리하게 투자를 한 것 아니냐. 이러한 문제가 생겨도 불법이라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없어 더 문제다. 학교법인도 상시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규제가 필요하다. 법적으로 학교 법인의 투자 자체를 금지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사회 회의록 및 회계 공개로 투명하게 적립금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