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변경 놓고 주주들 멱살잡이
▲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의 중심지가 될 용산역 철도정비창. |
그런데 코레일이 자신의 주장을 굽히고 사업에 협조하겠다고 전해졌으니 롯데관광의 미래 전망을 밝게 보고 다시 투자자가 몰린 것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다. 코레일은 26일 아침 해명자료를 냈다. 알려진 것과 달리 변함없이 서부이촌동을 제외하고 사업성 있는 다른 곳부터 먼저 개발하자는 ‘단계적 개발’로의 사업계획 변경을 추진하고, 현재 1조 4000억 원의 자본금을 3조 원으로 증자하겠다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했다.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이 난항을 겪는 것은 지난 2월 코레일 정창영 사장이 취임한 이후 기존 사업계획을 반대하면서부터다. 정 사장은 현재 진행하는 통합개발방식(서부이촌동과 철도정비창 통합개발)으로 사업을 계속하면 실패한다고 판단한다. 부동산 경기가 악화돼 짧은 기간에 이렇게 대규모로 분양하면 실패가 빤하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단계적 개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분양 자금 마련이 여의치 않을 경우를 대비해 기존 출자사가 자본금을 더 내야 하고 외부 투자자를 영입하는 등 자본금을 3조 원까지 늘리자고 요구한다.
최근 몇 년간 부동산시장 침체가 심각한 상황에서 코레일의 이런 판단은 이해할 만하다. 해봐야 알겠지만 개발사업 환경이 계속 악화되고 있어 실제로 내년 분양이 제대로 이뤄질지 미지수다. 내년 대내외 경기 전망도 너무 좋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규모가 큰 만큼 사업 계획을 변경하기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롯데관광을 포함한 대부분 출자사들이 코레일의 사업변경 요구에 화들짝 놀란 것은 이 때문이다. 통합개발 방식은 2007년 코레일이 입찰공고문을 내고 8조 원이나 되는 높은 가격으로 땅을 팔 때도, 3년에 가까운 서부이촌동 주민 설득을 통해 56%의 동의를 받을 때도, 현재 30개 출자사들을 모아 1조 원 이상 자본금을 마련할 때도 전제가 됐다.
▲ 개발 조감도. |
인천 송도신도시 등 국내외에서 단계적 개발을 할 때는 보통 땅도 단계적으로 판다. 먼저 개발한 땅에서 나온 수익으로 다음 부지를 사서 순차적으로 개발한다. 당장 개발하지 않을 땅까지 한꺼번에 사 일부만 먼저 개발하고 나머지 땅에 대한 이자를 수년간 무는 것처럼 손해 보는 일은 하지 않는다.
단계적 개발로 변경하면 사업은 4년 정도 지연된다. 원천적 조건의 변화이므로 서부이촌동 주민 동의서를 다시 받아야 할 가능성이 크다. 서부이촌동 주민들은 이주대책기준일인 2007년 8월 30일부터 현재까지 주택거래에 제한을 받고 있다. 이 지역 주민 절반 이상이 집값이 뛰었다고 보상기대감으로 대출을 늘렸다. 서부이촌동 전체 2298가구 중 1250가구가 평균 3억 4000만 원을 대출받아 가구당 월평균 143만 원의 이자를 내고 있다. 보상이 늦어지면서 경매로 처분되는 주택이 벌써 30건이 넘었다. 이 지역 거주자인 어정희 씨(60)는 “4년 동안 더 기다리라는 것은 죽으라는 소리”라며 흥분했다.
3조 원 자본금 증자도 쉽지 않다. 출자사 가운데 재무적 투자자인 KB자산운용, 푸르덴셜, 미래에셋자산운용은 더 이상 자금을 받지 않는 ‘클로즈드 펀드(Closed Fund)’ 형태로 투자가 이뤄졌다. 당초 기대 수익률을 지켜주기 위한 것이다. 만약 3조 원으로 증자되면 이들 출자사의 지분율은 3분의 1로 줄어들어 그만큼 수익률도 감소한다. 다른 출자사도 현재 경기 상황에서 출자가 어렵다. 한 출자사 관계자는 “지금 코레일 스스로가 사업이 어렵다고 하는 마당에 누가 더 돈을 집어넣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런 이유로 이미 지난 9월 열린 30개 출자사 총회에서 증자안은 21개 회사의 반대로 부결됐다.
그럼에도 코레일은 사업계획 변경을 밀어붙이고 있다. 코레일은 최근 롯데관광이 보유하고 있는 용산역세권개발(AMC·드림허브를 대신해 사업을 추진하는 시행사)의 지분 45.1%를 인수해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을 주도하겠다고 밝히면서 단계적 개발과 자본금 증자를 패키지로 주총에서 승인받겠다고 나선 것이다. 송득범 코레일 사업개발본부장은 “AMC 지분 인수의 목적이 용산국제업무지구의 사업계획을 단계적 개발로 바꾸고 자본금을 늘리는 것인 만큼 한꺼번에 처리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며 “하나라도 부결될 경우 사업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코레일은 이 안건을 지난 19일 예정됐던 드림허브 이사회에 제출했지만 이사회는 정족수 미달로 무산됐다. 드림허브 이사회는 물론 주총에서 이 안건이 통과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드림허브 출자사 대부분의 생각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안건 하나하나가 모두 각자 주주들의 손익이 달려 있고 난관이 많아서다.
이런 상황에서 정창영 사장은 주요 출자사 주주들과 의사소통도 하지 않고 있다. 정 사장은 2월 취임 이후 AMC 박해춘 회장은 물론 2대 주주인 롯데관광 김기병 회장 등을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사업 성패에 따라서 코레일에 엄청난 수익, 혹은 피해를 줄 수 있는 30조 원 프로젝트의 1대주주의 책임자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는 대목이다.
드림허브 출자사인 한 건설사 관계자는 “코레일이 현실적으로 주총 승인을 받기 어려운 사업계획 변경을 고집하는 것은 사업성이 불투명하다고 판단해 일단 사업을 지연시키기 위한 것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정 사장이 자신의 임기 때 나중에 문제가 될 일을 처리하지 않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는 관계자도 있다. 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업이라는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박일한 중앙일보 조인스랜드 기자 jumpcut@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