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지적에도 가만있던 검찰, 김호중 사건 터지자 ‘후행음주’ 입법 건의
5월 17일 MBN은 '김호중이 사고 이후 집이 아닌 경기도 구리의 한 호텔로 향했을 무렵인 5월 10일 새벽 1시 50분쯤 호텔 인근 편의점에서 매니저와 함께 캔맥주 4캔과 음료 2개, 과자 하나 등을 구입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CC(폐쇄회로)TV 영상을 공개한 MBN은 경찰이 당시 김호중의 편의점 행적이 담긴 CCTV 영상과 영수증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캔맥주 구입 사실이 알려진 직후 분위기는 심각한 공황이라더니 사고 직후에 캔맥주를 구입하는 모습이 의아하다는 쪽이었다.
다음 날인 18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감정 결과가 보도됐다. ‘음주 판단 기준 이상 음주대사체가 검출돼 사고 전 음주가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는 국과수 소견이 알려지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소속사의 당시 해명처럼 김호중이 사고 전에 음주를 하지 않았을지라도 사고 이후 호텔에서 마신 캔맥주 때문에 음주대사체가 음주 판단 기준 이상으로 나왔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고 발생 시간은 5월 9일 오후 11시 40분, 캔맥주 구입 시점은 10일 새벽 1시 50분, 그리고 10일 오후 4시 30분 경찰서에 출두해 음주측정을 했다. 캔맥주 구입으로 국과수 소견의 증거 능력이 흔들릴 수도 있는 상황이 됐다.
바로 김호중의 캔맥주 구입은 ‘정확한 음주 측정을 방해하기 위한 수법’이 아니냐는 의혹으로 연결됐다. 이미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후행 음주’ 관련 논란이다.
2022년 9월 6일 오전 7시 27분 즈음 강원 원주시의 한 편도 2차선 도로 비보호 좌회전 구간에서 A 씨가 몰던 승용차가 좌회전하다 직진하던 승용차와 충돌했다. A 씨는 사고 13분 뒤인 7시 40분 즈음 돌연 인근 식당에 들어가 소주를 마셨다. 경찰과 보험사 직원이 도착할 때까지 짧은 시간 동안 술을 마시는 후행 음주를 한 것. 후행 음주 이유에 대해 A 씨는 공황장애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사고 1시간여 뒤 이뤄진 음주 측정에서 A 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12%였다. 위드마크 공식을 적용할 때 ‘후행 음주로 인한 혈중알코올농도 증가분’을 가장 높게 계산한다. 결국 재판부는 A 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12%에서 후행 음주로 인한 혈중알코올농도 증가분 0.0668%를 뺀 수치인 0.0452%를 사고 당시 음주 수치로 판단했다. 이는 음주운전 단속 기준인 0.03%를 넘는 수치다.
이에 재판부는 “식당 CCTV의 피고인 모습을 보면 사고 수습보다 음주가 더 시급할 만큼 공황장애가 심각해 보이지 않는다”며 “음주운전 사실을 감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고 후 술을 마신 것으로 보인다”고 밝히며 A 씨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2019년에는 전북 정읍시에서 화물차량이 맞은편 승용차를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런데 화물차량 운전자 B 씨는 18분 뒤 사고 현장을 이탈해 소주 1병과 복숭아 음료 1캔을 섞어 마셨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게 B 씨는 “사고로 심란해서 술을 마셨다”고 말했다. 음주측정 결과 혈중알코올농도 측정치는 0.169%였다.
이에 경찰은 사고발생 2개월 뒤 같은 조건으로 음주측정을 실시해 나온 음주측정 결과인 0.115%를 후행 음주로 인한 혈중알코올농도 증가분으로 판단해 기존 0.169%에서 이 수치를 뺀 0.054%를 사고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로 판단해 기소했다. 이를 바탕으로 1심에서 유죄가 나왔지만 2심에서 무죄로 판결이 뒤집혔다.
1심과 달리 2심 재판부는 ‘체내흡수율 0.9’를 적용한 위드마크 공식을 활용했는데 이렇게 계산하면 후행 음주로 인한 혈중알코올농도 증가분이 0.141%로 올라가 사고 당시 혈중알코올농도가 0.028%가 된다. 이는 음주운전 단속 기준 0.03%보다 낮은 수치다.
대법원에서도 무죄가 나왔다. 2024년 1월 14일 대법원은 “형사처벌을 모면하기 위해 의도적인 추가 음주를 하는 행위가 드물지 않게 발생하는데 죄증을 인멸하기 위한 의도적인 추가 음주행위를 통해 정당한 형사처벌을 회피하게 되는 결과를 그대로 용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현재의 상황에서는 죄형법정주의와 검사의 엄격한 증명책임이라는 형사법의 대원칙을 존중하여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의도적인 법질서교란행위에 대한 정당한 처벌이 이루어질 수 있는 방향으로 추가음주 사안의 현황과 문제점을 체계적으로 파악하여 이를 해결하기 위한 입법적 조치 등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는 점도 대법원은 분명하게 지적했다. 그렇지만 4개월가량 별다른 입법적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고, 최근 김호중 사건이 터졌다.
이제야 후행 음주에 대한 사법당국의 대처가 시작되려 하고 있다. 5월 20일 대검찰청은 음주운전 사고를 일으킨 뒤 처벌을 모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술을 마시는 ‘사고 후 고의 음주(후행 음주)’에 대해 도로교통법상 1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상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형사처벌 규정을 마련해달라고 법무부에 건의했다.
음주측정 거부죄와 동일한 형량으로 대검은 “의도적인 추가 음주 행위는 음주 측정을 무력화하는 시도로, 사실상 음주 측정 거부”라는 입장을 보였다. 언론에선 이를 ‘김호중 방지법’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또한 이원석 검찰총장은 일선 검찰청에 사법방해 행위에 엄정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이 총장은 “수사 단계부터 경찰과 협력해 사법방해에 대한 관련 처벌 규정을 적극 적용하고 형사소송법상 구속 사유 판단에 반영해야 한다”며 “공판단계에서는 양형의 가중요소로 구형에 반영하고 판결이 이에 미치지 못할 경우 상소 등으로 적극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여기서 언급된 사법방해 행위는 △사고 후 고의 음주 △운전자 바꿔치기 △적극적·조직적·계획적 허위진술 △증거조작·인멸·폐기 등이다. 이런 흐름 속에 경찰은 김호중에 대해 구속영장 신청을 검토 중이다.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