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총수들 ‘판사 이겨라’ 이심전심
▲ 정몽구, 구본무, 이건희 회장(왼쪽부터). 검찰의 주시를 받고 있는 재벌가 총수들은 검찰과 법원의 갈등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 ||
검찰-법원 갈등은 비단 서초동 법조타운의 이야깃거리로 그치지는 않을 전망이다. 검찰-법원과 이해관계에 놓여있는 재벌 총수들 또한 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과 법원 사이에 벌어지는 감정다툼의 향방에 따라 이들 재벌총수들의 운신의 폭에 변화가 생기는 까닭에서다. 물론 이들이 바라는 결과는 론스타 영장기각 사태에서 그랬듯 수사권을 지닌 검찰의 위세를 판결권을 지닌 법원이 눌러주는 상황일 것이다.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은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요즘 들어 그만의 겨울잠을 털어버린 듯하다. 박 전 회장은 두산그룹 총수일가 ‘형제의 난’ 이후 회사 공금 횡령 혐의 등으로 지난 2월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80억 원을 선고받았고 지난 7월 항소심에서도 1심 선고를 그대로 적용받았다.
그룹 경영에서 물러나 은인자중하던 박 전 회장은 체육계 활동을 통해 기지개를 펴고 있다. 사법처리로 인해 박 전 회장은 IOC 위원 자격 정지를 당한 상태지만 국제유도연맹(IJF) 회장으로서 IOC 위원들과 만나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힘을 쏟겠다는 것이다. 얼마 전엔 태릉선수촌을 방문해 카타르 도하 아시아경기대회에 참가하는 국가대표 선수단에게 훈련 지원금 1억 원을 전달하면서 자연스레 언론에 자신을 노출하기도 했다.
동계올림픽 유치를 염원하는 강원도 지역사회의 후방 지원이 박 전 회장의 행보를 거들고 있다. 지난 10월 김진선 강원도지사가 청와대 보고 때 박 전 회장 사면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올렸으며 한승수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과 강원도 의회, 평창군 의회 등에서도 탄원서를 냈다는 후문이다. IOC 자격을 다시 얻어 IOC 위원들을 만나 동계올림픽 유치 운동을 하려면 일단 사법부의 사면이 우선돼야 한다는 논리다.
박 전 회장 입장에선 최근 검찰-법원 갈등이 법원 쪽에 힘의 추가 기우는 쪽으로 바랄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박 전 회장 재판과정에서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불거졌기 때문에 이건희 삼성 회장을 포함한 재벌총수들에 대한 강경대응 입장을 밝혀온 검찰의 위세가 수그러들기만을 바랄 것으로 보인다.
박 전 회장과 마찬가지로 IOC 위원인 이건희 삼성 회장도 검찰-법원 기싸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법하다. 검찰이 이건희 회장 소환 방침을 굽히지 않는 상태에서 론스타 영장기각 사태로 불거진 검찰-법원 신경전의 결과에 이 회장 측이 법원을 향한 물밑 응원전을 펼칠 것이란 관측이 대체적이다.
연말쯤 1심 재판결과를 받아들 것으로 예상되는 정몽구 현대차 회장 역시 검찰-법원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삼성그룹 못지않게 현대차그룹의 대외업무 라인 또한 검찰과 법원의 내부 사정을 파악하는 데 주력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정 회장 처벌문제와 비교잣대가 될 수 있는 이건희 회장 처리 문제나 론스타 수사 관련 시시콜콜한 정보들이 현대차 내부에서 ‘대접받는’ 정보들로 꼽혀왔다는 후문이다.
그밖에 구본무 LG그룹 회장도 검찰-법원을 향해 주의를 기울이고 있을 법하다. 얼마 전 LG 계열사 서브원의 핵심 간부가 검찰조사를 받았는데 서브원이 진행 중인 곤지암 리조트 사업이 이미 검찰의 불법 로비 관련 내사를 받은 전력이 있어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LG 계열사인 LG-CNS가 외환은행 장비 사업에 참여한 전력을 들어 LG로부터 외환은행 관련 정보를 캐내려는 검찰의 수사기법일 것이란 관측이 우세한 상태다. 서브원의 공동대표이사인 구 회장 측 또한 수사권을 가진 검찰의 예봉이 영장 발급권을 지닌 법원의 위세에 눌리길 바라고 있을 법 하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